최근 동물원 관리 부실에 따른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동물들이 우리를 탈출해 관람객 및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지난달에는 사육사가 우리 안에 있던 호랑이에게 물려 결국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동물원 관리 부실 및 안전 불감증이 극에 달해 있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문제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단순 사고가 아닌, 명백한 인재 사고라는 것이 관계기관 및 전문가들의 공통된 판단이기 때문이다. 시설 관리부족은 물론이고, 동물 개체별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아울러, 사육사의 자격기준 및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전문교육 등도 도마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집중 포격을 당하고 있는 곳은 바로 과천에 위치한 서울대공원이다. 지난 1984년 개장한 서울대공원은 총 면적 913만2690㎡에 동·식물원, 자연캠프장, 종합관리시설, 자연녹지 등이 갖춰져 있으며, 이곳에는 370여 종 39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보호·관리되고 있다. 규모만 놓고 보면, 국내 최고 수준인 셈이다.
하지만 개장한 지 30여년이나 되다보니, 상당수 시설들이 노후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동물 개체별 사육사 부족도 문제다. 3900여 마리나 되는 동물들을 71명의 사육사가 관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육사 1명당 55마리를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맹수들을 관리하는 사육사는 5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런 사육사들조차 현행법상 자격법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전문성이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즉, 한 번 사고가 나면 사육사는 물론 관람객까지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맹수들에 대한 관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인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서울대공원의 경우 서류전형과 면접전형만으로 사육사를 채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험 등의 전형이 없어, 전문성을 고려치 않는 채용 기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채용된 이후에도 동물원 내부적으로 별도의 안전관리 매뉴얼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체계적인 안전교육과정 없이 기존의 선배 사육사로부터 현장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한 언론에 “현재 법적으로 인정되는 사육사 전문 자격증이 없으며 동물관련 학과가 생긴 것도 7~8년에 불과하다”며 “동물별 전문 인력보다는 포괄적으로 동물에 대해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제라도 터질 수 있었던 사고가 결국에는 터져버렸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는 이유다.
세심하다는 이유만으로 맹수사에
여론을 들끓게 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지난달 24일이었다. 휴일이었던 이날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우리를 탈출하려던 호랑이가 사육사를 물어 중태에 빠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시와 과천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10분께 수켓 시베리아호랑이 로스토프(3)가 실내 방사장 문을 열고 나와 관리자 통로에서 사료를 놓고 있던 사육사 심모(52) 씨의 목을 물었다.
10시 20분께 근처를 지나던 매점 주인이 호랑이에 물려 쓰러져 있는 심 씨를 발견해 보고했고, 심 씨는 사고 즉시 부근의 한림대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보름만인 지난 8일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심 씨의 사망 소식은 관계기관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까지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특히, 그가 지난 1987년 서울대공원에 입사한 이후, 최근까지 줄곧 곤충관에서 근무했었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 크게 일고 있다. 곤충들을 다뤄왔던 심 씨가 올 1월 1일부로 인사이동을 해 맹수사로 일해 왔던 것이다. 순환근무라고는 하지만, 전문성 등을 전혀 고려치 않은 인사이동 조치에 대해 논란이 불붙은 것이다.
고인은 지난 1월, 자신의 인사이동 소식을 접하고 다이어리에 “맹수사로 발령받음. 갑작스레 충격, 날벼락”이라는 당혹스런 심경을 남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가족 역시 언론에 “26년 동안 곤충관에서만 근무한줄 알았는데, 이번 사고 보도를 보고 동생이 1월부터 맹수사육사로 옮긴 걸 알게 됐다”며 “순환보직이라는 건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만지는 자리처럼 한 자리에 오래 있으면 생길 수 있는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하는 것 아닌가. 동물원은 그야말로 전문성이 중요한 곳인데, 그저 순환보직이라고 설명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특히, 심 씨의 가족은 “동생이 곤충사에서 다른 곳으로 가기 싫어서 면담까지 했다는데 왜 끝까지 그렇게 밀어붙여서 저렇게 만들어놨는지 알 수 없다”고 애통함을 금치 못하기도 했다. 실제, 심 씨가 생전에 남긴 메모 등에서는 동물원 인사 문제에 대해 ‘끼워넣기’, ‘짜맞추기’, ‘밀어내기’ 등의 비판의 글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같은 인사이동 논란과 관련해 서울대공원 측은 지난달 25일 기자설명회를 열고 “심 사육사가 지난해까지 곤충관에서 근무하며 곤충에 대해 세심하게 관리를 잘 해왔다”면서 “이번에 호랑이사를 리모델링하면서 호랑이사에 가면 세심하게 관리할 수 있겠다 판단해 인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세심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전문적 지식도 없고 경험도 없었던 심 씨를 맹수사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정치권까지 설전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사고의 초점도 인사 문제로 모여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곧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인디밴드 출신 비전문가를 서울대공원에 앉혔기 때문”이라며 “박원순 서울시장의 보은인사가 부른 참사”라고 포문을 열었다.
홍 사무총장은 그러면서 “25년을 곤충관에서 근무하다 올초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맹수사로 갔다고 한다”며 “안일하기 짝이 없는 태도고, 박 시장의 보은 인사가 사육사는 물론 시민을 호랑이 굴로 내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자 이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일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사육사의 재배치는 이미 제가 임명한 대공원장 이전에 벌써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라며 “팩트를 잘 알고 말씀하시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정치권까지 개입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자, 서울시는 8일 보도자료를 내고 “철저한 원인 규명과 조사를 하고 있으며, 조사 결과에 따라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을 하겠다”며 “30년간 누적돼 온 구조적인 문제”라는 문제인식을 드러냈다. 심 씨가 숨을 거둔 날이었다.
서울시는 그러면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종합적인 안전진단을 실시하겠다”며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하다면 임시 휴관까지도 고려한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안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덧붙여 “서울시와 민간 전문가, 그리고 동물을 사랑하는 시민들까지 포함한 (가칭)서울대공원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인력, 관리, 시설 등 모든 부분에서 뿌리부터 혁신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서울시가 이 같은 공식적 입장을 표명했지만, 논란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은 9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사건 발생 직후에는 고인의 개인적인 실수로만 치부하더니 하나둘 안전규정을 어긴 서울대공원 측의 책임이 드러나자 이제는 30년간 누적된 구조적인 문제라고 한다”며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지적한대로 서울대공원의 호랑이 우리를 새로 짓는 동안 시베리아 호랑이를 임시로 여우 우리에 넣어 둔 잘못을 30년간 누적된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고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일 심 사육사에 대한 장례가 서울대공원장으로 치러졌다. 11일 고인의 빈소를 찾은 박원순 시장은 조문 후 유족과 만난 자리에서 “고인이 억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고는 이처럼 전문성을 고려치 않은 인사이동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장금장치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인의 형에 따르면, 고인은 생전에 (우리의) 장금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건의사항 등이 적힌 메모를 남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설의 노후는 물론, 관리 허술까지 드러난 셈이다.
사실, 서울대공원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소식은 그동안 한둘이 아니었다. 최근 불과 1~2개월 사이에도 관리 부실 사례가 빈번했다. 지난 5일에는 화재가 발생해 동물원이 한때 정전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3시 40분께 서울대공원 측에서 운영하는 ‘스카이리프트’ 승강장 인근 지하 2m 깊이의 지하구에서 불이 났다. 이 불로 인해 지하구에 매립된 통신케이블과 전력선 등을 각 15m가량씩 태우고 진화됐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낡은 시설물에 대한 이용객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게 됐다.
또, 지난해 8월에는 동물원 내 흰코뿔소가 우리를 벗어나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사고도 발생했던 것으로 최근에서야 알려졌다. 우리를 벗어난 흰코뿔소는 건물 벽과 공구들을 머리로 들이받는 등 극도로 흥분된 상태를 보였고, 이를 막기 위한 사육사들은 코뿔소에 대형 선풍기를 돌리며 지름 19㎜ 호스로 물을 뿌렸다. 그런데, 차가운 물을 맞고 난 코뿔소는 이날 밤 돌연 심장마비 증세로 숨을 멈추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대공원 측이 흰코뿔소에 대한 사후 처리 과정이었다. 대공원 측은 흰코뿔소의 사체를 10여 조각으로 해체해 땅에 묻은 뒤 환경부 등에는 소각처리 한 것으로 허위 보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서울시에는 아예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흰코뿔소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 협약에 따라 국제기구에 보고하게 돼 있었지만, 대공원 측은 이 조차 무시했던 것이다.
지난달 10일에는 개코원숭이 한 마리가 우리를 탈출해 관람객들 사이를 비집고 뛰어다는 사실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개코원숭이는 긴 송곳니를 가지고 있으며 사납기로도 유명해 자칫 큰 인명 피해가 있을 수 있는 사고였던 것이다. 우리에서 탈출한 개코원숭이는 관람객들이 지나다니는 길 등에서 무려 30여분이나 넘게 뛰어다니며 활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공원의 동물 관리에 심각한 문제가 노정돼 있음을 드러내는 사고들인 것이다.
한편, 이 같은 안전사고가 서울대공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경기 고양시의 사설 동물원인 ‘테마동물원 쥬쥬’에서는 물개가 탈출해 인근 마을에서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우리의 문이 제대로 잠기지 않아 탈출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근 초등학교 옆 소하천에서 길을 지나던 행인에 발견돼 동물원으로 돌아가게 됐다.
대전의 대표적인 동물원인 오월드의 늑대 사파리에서는 러시아 야생늑대가 폐사하거나 서로 물어뜯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오월드는 지난 2008년 러시아에서 야생늑대를 들여와 5년째 한국늑대 복원을 추진하고 있지만, 올초 새끼늑대 5마리가 태어나 두 달 만에 모두 죽었다.
지난 2010년에도 6마리의 새끼늑대가 폐사됐던 바 있어, 씁쓸함이 더하고 있다. 앞서, 올초엔 젊은 늑대 한 무리가 경계 철망을 뚫고 어미 무리를 공격해 2마리가 죽는 일이 벌어졌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오월드 측은 관람객들이 던지는 이물질 등의 원인으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생각이 다르다. 김종률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늑대가 살 수 있는 서식환경이 갖춰져야만 증식-복원의 의미가 있다”며 “단순하게 개체를 짝지어 늘리는 것은 나름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