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문제가 재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상여금은 통상임금이지만,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린 이유 때문이다. 재판부의 이 같은 판결에 경영자 측은 강도 높게 반발하고 있고, 노동계는 떨떠름함을 표현하면서도 그나마 다행스런 판결이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계와 노동계가 법원의 판결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영자 측은 임금 상승에 따라 기업 부담이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으며 인력 감축도 불가피하다는 입장까지 피력하고 있다. 기업들이 통상임금을 이유로 경기회복 조짐에 찬물 끼얹을 태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상임금을 둘러싼 문제는 무엇이며, 경영계와 노동계의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이는 무엇인지 짚어봤다.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급여금액을 말한다. 이 같은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 및 유급휴가 수당, 퇴직금 등의 수준을 결정짓는 바탕이 되기 때문에 근로자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즉, 고정 상여금 및 교통보조비, 식대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면 근로자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수준의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기본급만을 통상임금으로 규정하고, 상여금이나 휴가비, 교통보조비, 식대 등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고 있다. 실제로, 제조업 노동자들의 경우 기본급은 낮지만 각종 수당과 복리후생비가 많은 경우들이 있다. 제조업은 기본급이 전체급여의 40%, 공무원은 53%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들 대부분은 다양한 수당들을 통해 부족한 급여를 채우는 경우가 많다. 즉, 근로자들이 야간이나 휴일 등 초과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가 되는 것이다.
◆대법 “정기상여금 통상임금에 해당”
지난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자동차 부품 회사 갑을오토텍 노동자와 퇴직자 296명이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또는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정기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재직자에게만 지급되는 생일 축하금, 휴가비, 김장보너스 등의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통상임금은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금품”이라며 “이를 기준으로 판단해야지 명칭이나 지급주기 등 형식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근로의 대가로 1개월을 초과하는 일정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면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합의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복리후생비와 관련해서는 “근로의 대가인지와는 상관없이 지급일 등 특정 시점에 재직 중인 근로자에게만 지급하기로 한 임금은 근로의 대가성이 없다”며 “연장-야간-휴일 제공 시점에 재직 중이라는 지급조건이 성립될지 여부가 불분명해 고정성도 결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두고 경영계와 노동계가 정면충돌하고 있다. 우선, 노동계는 통상임금의 범위가 넓어지면 연장근로나 휴일근로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생산성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청년고용 등도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경영자 측은 고정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 다시 수당을 계산하게 되면 산업계 전체가 근로자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 규모가 무려 38조원에 달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영계는 결국 기업은 인력 채용을 줄이고 투자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경영계 vs 노동계 정면충돌
이처럼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 차는 뚜렷했다. 특히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상임금에 정기 상여금이 포함될 경우 첫 해에는 1년간 13조7509억 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이며, 두 번째 해부터는 매년 8조8663억 원의 부담이 늘어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로 인해 8만5000~9만6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이번 판결로 노동비용이 급증하면서 투자와 고용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며 “이에 따른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변 실장은 또, “기업들이 소송에 대비한 충당금 확보로 즉각적인 투자 위축이 예상된다”며 “장기적으로 기업들은 자동화와 해외 이전 등에 나설 것이며 외국인의 국내 투자도 함께 위축될 것을 판단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반면, 노동계는 일단 환영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판결취지는 정부와 사용자의 억지에 의해 시간끌기만 해왔던 통상임금 논란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노총은 그러면서 “통상임금 문제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적 임금체계가 그 본질”이라며 “사용자들은 임금수준을 낮추기 위해 통상임금 범위를 계속 낮춰왔고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초과노동을 강요당해 왔다”고 설명했다.
민노총은 나아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부는 모든 혼란의 진원지였던 잘못된 행정지침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면서 “정치권은 이미 상정돼 있는 통상임금 관련 법안을 빠르게 정비해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한국노총은 오히려 이번 판결에 대해 분개했다. 이들은 이번 판결에서 휴가비 등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데 대해 “‘모든 임금은 노동의 대가’라는 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후퇴한 것”이라며 “복리후생비를 제외하고 추가임금 청구를 허용하지 않은 정치-경제적 판단이 고려된 판결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한편, 지난 5월 미국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미 상공회의소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CEO라운드테이블 및 오찬에서 다니엘 에커슨 GM회장과 만나 “통상임금 문제를 꼭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혀 사회적 통상임금 논란에 불을 붙였던 바 있다. GM의 80억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약속이었지만, 앞선 4월 대법원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었다. 이 때문에 투자유치를 위해 대법원의 판결까지 뒤집겠다는 것이냐는 노동계의 강한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