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안녕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안녕하십니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걷잡을 수 없는 나비효과, 젊은 세대 중심 反정부 정서 확산

지난 1년간 박근혜 정권을 향해 야당이 제기해온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의혹 공세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反정부 성격의 에너지가 응축되고 있다. 2013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들이 스스로 안녕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각을 하기 시작한 것. 처음 한 대학에 붙은 대자보에서부터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 바람은 급속도로 확산되며 우리 사회를 움찔움찔 거리게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에서부터 시작된 사회 참여 목소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반 시민들이 먼저 분노를 표출했고 이에 정치권도 가세하고 있는 모습이다. 87년 호헌철폐를 관철시켰을 때도, 2008년 쇠고기 촛불집회 때도 모두 민중이 먼저 일어섰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정치권이 선봉에 섰던 이슈들보다 파급력은 훨씬 더 컸다.

▲ 지난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 씨가 올린 대자보 글이 나비효과가 되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사회적으로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들이 이를 계기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사진 / 뉴시스

한 마리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 ‘나비효과’, 작지만 간절하고 진실 된 목소리에 지금 대한민국은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날갯짓은 지난 10일 고려대학교 한 학생에 의해 시작됐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함에 따라 근래에는 대학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대자보가 학내 게시판에 나붙었다. 고대 경영학과 08학번이라고 밝힌 주현우(27) 씨가 올린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였다.

평범한 인사말 제목이었지만, 대자보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또박또박 대자보에 적힌 활자들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아픔을 송곳처럼 후벼 팠고,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던 대중의 감성을 자극했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연일 앵무새처럼 쏟아내던 말들이었다. 하지만, 주 씨의 대자보는 그 어떤 권력보다 강한 여론의 공감을 얻으며 무서운 바람을 일으켰다. 정치인들의 발언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이 생겨난 것이었다.

◆폭발적 반응, 잠든 분노를 깨우다
대자보 글은 SNS 등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페이지는 개설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수십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는가 하면, 각 대학에서도 ‘안녕들 하십니까’에 응답하면서 바람에 바람을 덧대었다. 뿐만 아니라,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부 중학생들까지도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에 동참했다. 그렇다면, 대자보에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일까?

내용은 이랬다.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모른 채 하기 불편했던 사회 문제들
사실, 주 씨의 대자보 내용은 사회적 공분이 폭발할 만큼 자극적인 이슈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이미 정치권과 투쟁의 현장에서 오랜 시간 분출해왔던 이슈였지,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처럼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 씨 자신을 포함해 ‘알면서도 모르고자 했던’ 또래 세대의 비겁함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더 이상 모른 채 하고 있기 불편하지만, 어떤 계기성을 찾지 못해 여전히 소극적이었던 젊은 세대에 하나의 분출구가 돼주었던 것이다.

터져 나오기 시작한 젊은 세대들의 목소리는 사뭇 진지했다. 주요 대학들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주 씨의 물음에 답하는 대자보들이 산발적으로 나붙기 시작했다. 대부분 ‘안녕하지 못합니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리고 주 씨가 대자보를 붙이고 나흘 뒤인 14일, 고대 정경대 후문에는 주 씨를 비롯한 대학생들이 무려 300여명이나 모였다.

이들은 한 시간가량 성토대회를 마치고 밀양지역 송전탑 경과지 마을 주민 고 유한숙 씨의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뒤, 서울역에서 열리는 철도민영화 반대 촛불 집회에도 합류했다가 해산했다. 특히,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학생들의 참여에 ‘학생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자필 대자보를 고대 정경대 후문에 붙여 응답하는 뭉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은 대학가와 노동계에서만 그치지 않고 더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지난 16일에는 전북 군산여자고등학교 학내 게시판에 ‘안녕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어 눈길을 끌었다. 글쓴이는 자신을 “저는 이제 막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 놀면서 SNS나 하고 시간을 보내던 1학년”이라고 소개했고, 대자보에는 “저는 차타고 15분도 안 걸리는 롯데마트 앞에서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선거에 개입한 정황들이 속속들이 드러나 촛불집회가 일어났을 때도 안녕했고, 그것이 직무중 개인 일탈이며 그 수가 천만 건이라는 소식이 들릴 때도 전 안녕했다”고 말했다.

학생은 그러나 “3.1운동도 광주 학생운동도 모두 학생이 주체가 되었다. 우리도 일어서야 되지 않겠나?”라며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민주주의를 지켜야한다”고 더 이상 안녕하고 있을 수 없음을 강조했다.

특히, 학생은 “이 행동이 훗날 저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 저는 참으로 두렵다. 무섭다”면서도 “그래서 저는 외친다. 꼭 바꿔야 한다고. 민주주의를 지키자 말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래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을의 버스정류장이나 전봇대 등에도 ‘안녕들 하십니까’ 제목의 글들이 나붙고 있는 상황이다. 글쓴이들은 대부분 자신을 고등학생이라 밝히고 있으며, 모두 그동안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음과 안녕하지 못한 삶을 이제야 자각하게 됐음을 고백하는 글들이었다.

▲ 대학생 등 일반 시민들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안녕들 하십니까’ 바람이 정치권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일부 보수세력들은 이 같은 현상까지도 종북 프레임으로 가두며 맞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진 / 뉴시스

◆대자보 확산, 공감 53% vs 비공감 23.7%
이처럼 폭발적 이슈가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권도 가세하게 됐다. 야당 의원들은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으로 힘을 실어주었고, 여당 의원들과 보수진영에서는 강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국회의원으로서 대자보를 직접 붙여 학생들의 물음에 응답한 것은 민주당 원혜영 의원과 유은혜 의원이 대표적이다. 원혜영 의원은 17일 국회 의원회관 8층 게시판에 같은 제목의 자필 대자보를 붙여 “저 역시 안녕하지 못함을 고백한다”며 “이 시대가 만든 성공의 잣대를 따라 개인의 안녕만을 추구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따져보는 물음 앞에, 지금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온 힘을 다해 박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이어,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저 역시 다시 뛰겠다”며 “고맙다. 이 나라의 진짜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어 고맙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강조했다.

유은혜 의원도 18일 국회 의원사무실 옆 벽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묻는 아들딸들에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여 “미안하다. 부끄럽다”며 “지금 나는 안녕하냐고 묻는 우리 자식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고작 이런 세상밖에 주지 못하는 것인지 가슴이 먹먹하다”고 아파했다. 유 의원은 그러면서 “곳곳에서 안녕하지 못하다는 신음과 절규가 터져 나오는 걸 돌이켜 보면 우리의 책임이 크다”며 “지난 1년 우리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했을까”라고 박근혜 정권을 탓하기에 앞서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유 의원은 자신 스스로도 안녕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너무 멀지 않은 때, 우리 함께 ‘안녕하시지요?’라고 인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여러분의 용기에 나도 다시 힘을 낸다”고 젊은이들의 물음에 응답했다.

한편, 이 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과 관련해 여론은 공감한다는 의견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JTBC <뉴스9>이 지난 17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대학 너머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과반 이상인 53%는 ‘공감한다’는 의견이었다. ‘공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은 23.7%에 그쳤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23.3%였다.

대자보 확산에 공감하는 응답자들은 ‘대자보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대학생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참여로 미래가 나아질 것이다’ 등의 의견을 보였다. 반면, 공감하기 어렵다는 응답자들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 ‘대자보 확산은 무지에 의해 선동 당한 것’,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등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JTBC와 현대리서치·트리움 이 지난 17일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유선(50%)·휴대전화(50%) RDD 전화면접조사를 한 것이며 표집오차는 95% 신뢰수준 ±3.7%p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강창화 2013-12-21 15:06:21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이
서툰 백묵 글씨로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작은 시작이 큰 물결을 이루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 젊은이들은 나설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