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수서발 KTX를 별도의 운영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기로 결정하자 철도노조가 “민영화”라며 거세게 반발, 총파업에 들어갔다. 정부는 민간 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여지를 원천 차단했다고 평가하지만 민영화 반대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철도 민영화를 진행한 후 실패해 국유화를 진행한 외국의 사례를 짚어보았다. 한편, 이 민영화 실패 사례에 등장하는 나라의 철도노조 수뇌부들이 직접 방한, 우려의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효율성·서비스 개선’, 영국 민영화 명분과 같아
영국, 보조금도 오르고 가격도 오르고…이중고
뉴질랜드, 민영화 두 배 가격 치르고 재국유화
지난 6월 정부는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하면서 철도공사를 △‘지주회사+자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코레일이 아닌 별도의 운영 회사를 설립해 수서발 KTX를 운영하는 한편 △2015년 이후 개통하는 4개의 신규 일반 노선과 기존 적자 노선의 운영을 민간 사업자에게 개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명분은 서비스 수준과 효율성 개선이었다. 그러나 이 명분은 철도 민영화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히는 영국이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주장했던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영국의 민영화 실패
영국은 1993년 1월 존 메이저 수상이 이끌던 보수당 정부가 영국철도청이 보유했던 자산 매각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키면서 민영화를 추진했다.
영국의 국영 철도회사는 민영화 이후 100여개의 기업으로 분할 매각됐고 선로와 신호체계 등 철도 시설 인프라를 담당하는 시설회사 ‘레일트렉’이 설립됐다.
그러나 레일트랙은 민간 회사로서 5년 밖에 버티지 못했다. 잠깐 전성기를 맞이한 후 자산 투자에 급급해 시설 투자를 외면하면서 하향일로를 걷다가, 해트필드 열차사고를 기점으로 5억 파운드의 손실을 입는다. 이후 정부에 의한 파산 보호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는 ‘네트워크 레일’을 주주 없이 설립해 모든 이익을 재투자했고, 1990년대 말까지 네트워크 레일은 정부 부채가 500억 파운드에 이르러 사실상 재국유화됐다.
영국은 철도가 민영화 이후 정부 부담을 줄이면서 보다 효율적인 구조로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외려 공적자금 지원이 늘어나 해마다 2조원 가량이 투입됐다.
결국 정부의 보조금은 영국 철도 시절에는 연간 15억 파운드였던 것이 60억 파운드로 정점을 찍고 현재 40억 파운드로 유지되고 있다. 요금 역시 지난 11년간 매년 물가 인상률보다 1% 높게 인상되었다. 민영화로 인해 국가도, 국민도 큰 부담을 지게 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준으로 서울역에서 수원역 사이보다 짧은 거리인 리버풀-맨체스터를 출퇴근하는 영국 시민의 경우, 그 비용이 1년에 2800파운드가 든다. 한화로 따지면 약 480만 원으로, 현재 서울역과 수원역을 오가는 요금인 1년 80여만 원에 비교하면 큰 차이가 난다.
철도 역사학자 크리스티안 월머 저널리스트는 8월 한 매체를 통해 “여전히 남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무도 철도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며 “정부는 민영화된 여객 운송 회사들과 다른 회사들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의 눈에는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영화는 관리자들에게 별 이익 없이 막대한 어려움을 가져다준 값비싸고도 복잡한 과정이었으며, 대다수는 민영화가 실수였다고 여긴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결국 재국유화
민영화를 시도했다 재국유화에 이른 외국 사례는 또 있다. 바로 뉴질랜드다.
뉴질랜드는 1993년에 민간회사에 철도를 팔아넘긴다. 이 민간회사는 1995년에 트란즈 레일이라고 이름을 바꾸게 된다.
1994년 열차의 전망칸에서 6살 아이가 기대고 있던 난간이 떨어져나가, 아이가 열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시 뉴질랜드 언론은 분노를 표했고, 이후 2002년 뉴질랜드 정부는 오클랜드 일대의 근교 철도망을 재매입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호주의 톨 홀딩즈라는 대형 운송회사가 트란즈 레일을 매수하고, 이후 인프라 부문을 정부에 1달러에 팔겠다는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정부는 다시 인프라를 확보한 이후 ‘온 트랙’이라는 뉴질랜드 철도 공사를 통해 200만 달러의 세금을 들여 다시 선로의 정상화에 매진했다.
그리고 2010년 들어, 뉴질랜드 정부가 향후 4년 동안 열차와 선로에 총 1억3000만 달러를 투자해 철도에 관련된 제반사항을 모두 국유화할 것을 결정했다.
당시 마이클 컬렌 재무장관은 “이번 거래로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민영화 중 하나가 종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자들 “민영화 안 돼”
철도 민영화로 피해를 입은 국가의 철도 노조 수뇌부들도 한국을 찾아 자국의 사례를 들며 철도 민영화를 반대했다.
12일 외스타인 아슬락센 국제운수노련 의장은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분할된 회사가 공공소유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분리된 것 자체가 민영화 직전 단계 조치라는 걸 말해줄 뿐”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칼슨 링우드 영국 철도노조 중앙집행위원은 “만일 민영화가 원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려면 영국을 보면 된다”고 말했다.
칼슨 위원은 “철도는 이윤이 아니라 국민에게 이롭게 이용돼야 하는데 영국의 철도민영화는 철도노동자들의 보건과 안정에 악영향을 줬고 요금 인상 등의 부작용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웨인 벗슨 뉴질랜드 철도노조(RMTU) 사무총장도 “뉴질랜드에서는 철도민영화 이후 재국유화했는데 철도를 매각할 때 정부가 받은 돈보다 2배 이상 들어갔다”며 “현재 한국의 철도 시스템은 굉장히 훌륭하고 효율적이다. 한국 정부가 뉴질랜드의 민영화 경험을 되풀이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독일이 롤모델이라는데…
한편, 지난 6월 정부는 ‘철도 산업 발전 방안’을 발표하면서 롤 모델로 ‘독일’을 꼽았다. 영국 방식의 급격한 시장개방 모델보다는 공공성과 효율성이 조화된 독일식 모델이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현재 독일은 ‘독일철도지주회사’ 산하에 4개의 자회사 및 6개의 손자회사를 두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독일 역시 철도 민영화 시도로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정부의 효율화 시도가 오히려 민영화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지난 8월 28일 ‘한국 철도의 미래를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독일의 철도 전문가 베르너 레 박사는 2006년에 시작했던 철도 민영화 논쟁을 거론하며 “당시 투자 은행에 의해서 철도를 포함해 공공 부문 민영화와 관련된 몇 가지 (민영화) 옵션이 개발됐다”며 “그러나 2008년에 세계 금융 위기 때문에 민영화 시도가 아예 폐기됐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철도의 민영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것을 “행복한 실패”라고 평하면서도, 언제든 철도 민영화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불안을 전했다.
그는 “현재 독일 철도는 법적인 차원에서 보면 민영화가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언제든지 재시작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특히 “자회사인 물류, 시설 등의 부분은 '관리 감독위원회' 같은 것을 만든다는 전제로 다시 (민영화를) 시작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