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그룹이 중국에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밝히면서 르노삼성 부산공장 물량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최대 주주인 르노그룹이 한국에서 사업을 그만 둘 것인지, 혹시 아니더라도 르노삼성은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라는 우려가 업계 전반에서 커지고 있다.
“르노그룹, 부산공장 수출 물량 전체 중국에 넘길 가능성”
르노삼성 “부산공장 생산력 키울 입장…물량 축소 없다”
르노그룹 부회장 “부산공장, 임금·효율·품질 개선 이뤄야”
최근 르노삼성자동차의 최대주주인 르노그룹이 “중국에 합작공장을 설립해 자동차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물량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재계 전반에 번져나가고 있다.
中 합작공장 건설…앞날은?

지난 12월 13일 르노삼성에 따르면 르노그룹과 중국 둥평(東風)자동차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공장의 주요 생산 품목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친환경자동차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소재 합작공장은 2016년부터는 해마다 약 15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처럼 둥평자동차에서 예상되는 생산량 15만대는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이 해마다 제조하는 자동차 생산량인 12만대를 크게 뛰어넘는 수치이기 때문에 합작공장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아울러 현재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는 해마다 중국 시장에 약 3만 대의 자동차를 수출하고 있다는 점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 주요 근거로 꼽히고 있다. 예상 생산량 15만 대와 현재 수출 물량인 3만 대는 그 단순 수치만 보더라도 비교 자체가 성립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 경제 평론가는 “현재 진행되는 상황만으로는 르노그룹 측에서 부산공장의 수출 물량 전체를 중국에 넘길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현재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중국에 수출하는 자동차 3만대 가운데 5분의 4 이상이 QM5 모델인데, 앞으로 합작공장이 가동되면 QM5 차종을 굳이 한국에서 수입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라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현재 르노삼성 측은 르노그룹의 중국 합작공장 설립과 이로 인한 향후 부산공장 물량 타격에 대해 크게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르노삼성 측은 일단 “중국에 설립되고 있는 공장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들은 내용은 현재로서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르노삼성 측 관계자는 “중국에서 생산할 차종이 무엇이 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년부터 부산공장은 르노의 형제회사 격인 닛산의 크로스오버 차량(CUV) ‘로그’ 8만대, 전기자동차 4,000대 생산에 돌입하기 때문에 중국 합작공장에 상관없이 물량이 대폭적으로 감소할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이 관계자는 “현재 르노그룹 본사는 ‘무엇보다 부산공장의 생산능력을 키운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생산 물량을 대규모로 축소하는 상황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전 위한 신제품도 수입산?
이렇게 르노삼성 측이 “큰 문제는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르노삼성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자동차 업계 전체의 불황은 물론 기업 내의 여러 요소로 인해 르노삼성의 향후 입지는 현재로서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르노삼성이 “물량 축소 문제는 거의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주요 근거인 내년 ‘로그’의 부산공장 생산 돌입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자동차 업계의 중론이다.
한 경제평론가는 “닛산 로그의 가장 큰 문제는 비록 부산공장에서 생산하지만 이 차량을 국내에는 시판하지 않고 전량 북미지역으로 수출한다는 점”이라며 “더욱이 로그의 부품 국산화도 70% 선인 것으로 알려져 현재 다른 차종 부품의 평균 국산화율인 80%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특히 로그의 경우 핵심부품인 엔진과 변속기를 수입해 조립하기 때문에 차량 제작비 비용 면에서는 수입품이 5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며 “이 때문에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하청기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라고 우려했다.
또한 르노삼성이 최근 출시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소형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모델인 ‘QM3’도 사실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 르노그룹 스페인 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을 수입 판매하는 제품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르노삼성이 내수 부진을 타계하기 위해 출시한 QM3가 국내에서 아무리 인기를 끌더라도 르노삼성 자체에는 그리 큰 보탬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르노삼성은 지난 2011년 2세대 ‘SM7’ 출시 이후 아직까지 신차를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라며 “이 때문에 르노삼성이 우리나라에서 점차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르노삼성이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차량은 전부 해외모델을 들여와 개조한 이른바 ‘핸드오버’ 차”라는 설명이다.
이 평론가는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르노삼성이 지난 10~11월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두 달 연속으로 꼴찌를 기록하자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유럽 일대에서 ‘캡처’라는 상품명으로 판매중인 QM3를 들여오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QM3가 아무리 국내에서 높은 인기를 누려도 르노삼성 부산공장 입장에서는 크게 이득을 볼 게 없는 것이다. 한 경제평론가는 “국내에서 QM3가 잘 팔릴수록 르노삼성 부산공장 측은 스페인 공장의 가동률만 높아지는 것을 팔짱 끼고 지켜만 봐야 하는 처지다”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자동차 업계는 “QM3가 당장 올해 르노삼성의 판매 실적 면에서 획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시기가 늦었기 때문”이라는 게 자동차 업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QM3가 예약 면에서 아무리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시기상 올해 예정 판매량이 1천대 수준에 머무른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고객들도 내년 3월 무렵이 되어서야 QM3 차량을 순차적으로 인도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자동차 관련 전문가는“QM3를 둘러싼 르노삼성의 딜레마를 보면 해외 생산기지로 손색이 없던 르노삼성이 이제는 아예 해외 판매 대리점 수준으로 강등되는 느낌”이라고 힐난했다.
“하청기지 벗어날 묘책 마련해야”
이와 같은 르노삼성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자동차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 르노삼성은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는 자체 생산하지 않고 판매할 차는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나마 국내에서 제조·판매되고 있는 차종은 인기를 잃은 지 오래”라며 “이 같이 르노그룹 본사가 부산공장에 주로 위탁생산만 맡기는 상황은 대주주가 이익의 대부분을 챙겨갈 생각밖에 없는 이른바 ‘하청기지 유형’의 전형적 사례”라고 비판했다.

한편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통상임금 논란은 물론 잦은 파업 결과로 인한 생산성 저하가 르노삼성 부산공장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반영하듯 르노그룹 본사가 부산공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리 고운 편은 아니다. 지난 11월 26일 한국을 방문한 제롬 스톨 르노그룹 부회장은 “르노삼성을 포함한 한국 자동차 시장은 노동비용이 높은 편”이라며 “특히 부산공장은 임금과 더불어 효율·품질 등 3개 항목에서 개선을 이루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또한 제롬 스톨 부회장은 “이 같은 3개 항목을 꾸준히 개선하지 않는다면 결국 부산공장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상황이 이렇게 되면 생산물량을 경쟁력 있는 공장으로 나눌 수밖에 없다”고 거침없이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 업계 일각에서는 “최대주주인 르노본사 측이 다른 경쟁사에 비해 르노삼성에 개발을 위한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는 측면도 많다”며 “하청기지 이상으로 대우하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면서 경쟁력 강화만 윽박지른다고 문제가 쉽게 해결될 리 없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 12월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르노삼성차의 개발비는 2010년 48억여 원에서 2011년에는 26억여 원으로, 2012년에는 10억8,000여만 원으로 3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조사 연구비도 2011년 21억여 원에서 지난해 10억8,000여만 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이와 더불어 지난 2012년 르노삼성이 르노 및 닛산에 차량과 부품을 판매하고 연구용역을 수행해 올린 매출은 2011년에는 2조5,116억여 원이었던 반면 2012년에는 2조644억여 원으로 기록되어 18%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와 더불어 관련업계에 따르면 르노삼성은 특히 작년 한해 800여명을 구조 조정한 것을 포함해 전체 임직원 가운데 20% 이상인 총 1,169명이 넘는 인원이 회사를 떠났다. 르노삼성이 2012년 내보낸 임직원에게 지급한 퇴직금은 481억여 원. 2011년 227억여 원에 비해 약 50% 넘게 늘어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기간 르노·닛산그룹에서 르노삼성으로 파견된 30여명에게 급여·복리후생비 명목으로 지출한 금액은 모두 73억여 원으로, 2011년의 50억 원보다 무려 23억 원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국인 임직원들이 정든 회사를 자의반 타의반 떠나는 와중에 본사에서 파견된 임직원 급여는 45% 이상 올라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