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경쟁에서 NH농협금융지주가 KB국민금융지주를 제치고 승리했다. 이에 따라 업계 10위권 밖이었던 NH농협증권은 업계 1위로 도약할 수 있게 됐다. 우선 우리투자증권 매각이 일단락되면서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타 증권사들의 향방도 덩달아 주목되고 있다. 현재 동양증권, 현대증권이 매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상태고 내년쯤에는 현 업계 1위 KDB대우증권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점쳐진다. 상위 증권사들이 잇달아 매물로 나오다보니 업계 안팎의 관심도 뜨겁다. 이들 증권사의 주인은 누가될지 소문이 무성하다.

‘패키지 원칙’ 충실했던 NH, KB 제쳐
단서조항 변수…“배임논란 잠재우기?”
‘범현대가→현대, KB→동양’ 참여하나
NH농협금융지주가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전에서 최종 승리했다. 우리금융지주는 24일 우리투자증권에 우리자산운용·우리아비바생명·우리저축은행을 묶어서 파는 ‘1+3 패키지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농협금융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가운데 우리자산운용은 키움증권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우투 인수전’ 승자된 NH
이번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전은 패키지매각이냐 개별매각이냐가 가장 큰 화두였다. 두 가지 입장은 정부가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하며 세운 ‘조속한 민영화’와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라는 원칙과 각각 부합한다. NH농협금융과 KB금융지주(차순위협상대상자)도 이에 따라 상반된 배팅방식을 보여줬다.
NH농협금융은 우리투자증권 패키지에 1조2000억원(우리자산운용 500억원 포함)을, KB금융은 우리투자증권에만 1조2000억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KB금융은 아비바생명과 저축은행의 장부상 가치가 사실상 마이너스라고 평가했다. ‘우리투자증권 개별(KB)=패키지(NH)’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금융 이사회가 패키지 매각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우리투자증권은 NH농협금융으로 돌아갔다. 이는 우리투자증권만 팔릴 경우 나머지 회사들을 매각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인기매물(우리투자증권)에 비인기매물들을 묶어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개별매각을 실시할 경우 매각도중 원칙을 바꿨다는 점에서 신뢰가 떨어질 수 있고 공정성 시비로도 이어질 수 있어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반년간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과 관련 패키지매각을 원칙으로 강조해왔다. 또 내년 우리은행 매각을 앞둔 입장에서 신뢰하락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데다 아비바생명과 저축은행이 매각되지 않을 시 우리은행 매각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패키지매각에 무게가 실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1월 본계약까지 변수가 남아있다. 우리금융이 25일 “협상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것을 대비해 우리투자증권 패키지는 KB금융지주를, 우리자산운용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차순위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매각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단서조항을 근거로 사실상 가격인상을 요구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우리금융 이사진이 매각가를 올리려는 의도라기 보단 헐값매각 및 배임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배수진을 쳤다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매각가가 2년 전 인수가보다 낮아 배임논란을 빚은 우리저축은행은 가격을 올리고 우리투자증권은 실사결과 추가부실 등을 이유로 가격을 낮춰 패키지 가격을 맞출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우투 업은 NH, 도약하나
이번 우리투자증권 인수로 NH농협증권은 단숨에 증권업계 최강자로 떠오르게 됐다. 우리투자증권은 자산규모로 업계 1위(29조7600억원), 자본규모로 업계 2위(3조4500억원)다. 이로 인해 업계 10위권 밖이었던 NH농협증권은 우리투자증권을 업고 자산 36조원, 자본 4조원의 초대형 증권사(자산·자본 업계 1위)로 재탄생하게 된다.
우선 업계에서는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이 대규모 자본을 토대로 IB부문의 절대강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M&A자문 등 전통적인 IB부문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췄고 NH농협증권은 틈새시장 격인 구조화금융 등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각기 다른 부문에서 강점을 보여온 만큼 시너지가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자산관리(WM) 부문에서도 우리투자증권의 영업력과 NH농협금융의 전국적인 지점망이 시너지를 내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로써 NH농협금융은 은행부문에 편중(전체 80%)된 사업구조를 재편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양사는 분리운영 체제를 유지하다 서서히 통합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부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앞서 우리금융지주가 LG투자증권을 인수할 때나 신한금융지주가 굿모닝투자증권을 인수할 때도 중복분야를 중심으로 인원감축이 이뤄졌었다.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도 중복된 업무가 많은 만큼 인원감축과 지점 통폐합 등의 구조조정이 수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현대-동양증권은 누가?
우리투자증권 매각이 일단락되면서 시장에 매물로 나온 타 증권사들의 향방에도 관심이 쏟아진다. 현재로서는 현대증권과 동양증권이 대표적이다. 내년쯤 매각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KDB대우증권까지 포함할 경우 10대 증권사 중 3곳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 셈이다.
현대증권은 지난 22일 현대그룹이 현대증권·현대자산운용·현대저축은행 등 금융계열사를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내용의 자구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장에 나왔다. 업계에서는 범 현대가, 그중에서도 증권사를 보유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HMC투자증권)과 현대중공업그룹(하이투자증권)을 주목했다. 이들이 사명에 사용하지 못했던 ‘현대’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에서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08년 신흥증권(현 HMC투자증권)을 인수해 ‘현대차 IB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하려 했지만 현대그룹과의 법정소송 끝에 ‘현대’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HMC투자증권이란 이름을 선택한 바 있다. 이를 본 현대중공업도 CJ투자증권을 인수해 ‘현대’가 들어가지 않은 하이투자증권이란 사명으로 변경했었다.
더군다나 현대증권은 업계 5위(자산·자본)인데다 금융위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IB 업무 인가를 받은 대형증권사다. 인수에 성공할 경우 현대라는 이름과 단숨에 업계 5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이 현대차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에 매력적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 HMC투자증권의 새로운 수장으로 김흥제 IB본부장(부사장)이 임명되면서 현대차그룹의 현대증권 인수전 참여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동양증권도 인수 유력후보들이 이미 거론되고 있다. 동양증권은 현재 대만 유안타증권과 인수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KB금융지주가 추후 협상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지주는 지난 16일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우리투자증권과 동양증권을 비롯한 증권사 M&A 추진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왔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또 법원에서 공개매각 결정을 내린 만큼 이들 외 다른 후보들이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표적인 곳이 롯데그룹이다. 보험과 카드를 가지고 있는 롯데그룹이 증권사를 인수해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는 일본 노무라증권 출신인 신동빈 회장의 금융업에 대한 그간의 애정과 무관치 않다.
또한 동양증권이 그간 소매영업 부문에서 강점을 보여온데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매각가가 2000억원대 수준이라는 점도 롯데그룹에 매력적 요인이 될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롯데그룹은 26일 공시를 통해 “롯데그룹은 현재 동양증권 인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소문을 부인한 상태다.
잠재적 매물인 KDB대우증권은 아직 공식적으로 시장에 나오진 않았지만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통합하는 내년 7월께 매각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KDB대우증권은 현 업계 1위 증권사로 인수에 성공할 시 단숨에 업계 1위를 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관심을 표하는 업체들이 여럿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대형증권사 이외 LIG투자증권, 아이엠투자증권, 이트레이트증권, 리딩투자증권,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등 중소형증권사도 대거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대규모 인수합병이 끝나면 증권업계 판도도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