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心은 지금 소통인가 탄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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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에 뿔났던 민심, ‘우린 지금 대화가 필요해’

2008년 거리를 온통 촛불로 메웠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를 국민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촛불집회를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훗날 보수진영과 이명박 정권에서는 종북 등 반정부세력들이 배후에서 조종한 폭동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이는 사실과 크게 달랐다. 촛불집회의 시초는 정치권도 시민사회단체들도 아닌, 바로 앳된 얼굴을 한 여중생과 여고생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폭력 침묵시위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했다. 그리고 현실을 외면하고 살아왔던 기성세대들은 그때부터 학생들의 뒤를 따라 폭발적으로 거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 야당과 철도노조 측에서는 수서발 KTX자회사 설립에 수익을 목표로 하는 국민연금 기금이 투입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은 이조차 묵묵부답하며 정치적 수사를 동원한 여론전만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28일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 현장 ⓒ원명국 기자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그 당시 여중생과 여고생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됐을 지금, 다시 그때를 기억하며 뜨거운 분노를 토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최근 철도민영화 반대 투쟁 및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 속에서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 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신뢰 잃은 정부, 믿지 않는 국민이 문제인가?
이명박 정부도 당시 국민적 우려가 확산되자, 광우병에 걸릴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며 앵무새 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어쨌든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강조한 것이었지만, 성난 민심은 정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 정부가 철도민영화를 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는데도 국민들은 믿지 않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2008년 당시 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온 시민들은 단순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만을 문제로 지적하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 바로 민영화 논란이었다. 지금 철도민영화가 최대 이슈라면, 이때는 ‘수도 민영화’가 논란거리였다.

이명박 정부는 2007년 7월 정부가 발표한 ‘물산업 육성 5개년 추진계획’을 이어받아, 2008년 상반기 중 ‘물산업지원법’을 만들어 이른바 ‘수도 민영화’를 입법예고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분개했다. 쇠고기 문제로 여론의 눈을 돌려놓고 이면에서 민영화 사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2007년 10월, 당시 한국노총 관계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전력과 가스, 수도 등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것들 중 완전히 피할 수 없는 기본산업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민영화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민영화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난 직후, 환경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2008년 3월 10일) 자리에서 당시 후보자 신분이었던 이만의 전 장관은 “수도 사업 민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가지고 있던 생각을 뒤집어엎었다.

그는 청문회 자리에서 “모든 것은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며 “많은 분야에서 국민의식 수준이 향상되고 전문가들이 나서고 있기 때문에 공공사업도 민간과 전문사업자에게 맡기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수도 민영화의 당위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제대로 뒤통수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철도민영화 논란과 관련해 현재와 같은 방식, 즉 “국민적 공감대 없는 철도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던 바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민영화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민영화가 아니라면서도 국민을 위해 꼼꼼한 설명은 미흡하기만 하다.

박근혜 대통령조차도 ‘왜 민영화가 아닌지’, ‘민영화가 되지 않도록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철도파업 노동자들에 대해서만 초강경 대처를 주문했다. 철도민영화에 대한 의구심과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는데 따른 반발 심리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는 배경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에 대한 국민 신뢰다. 국민들은 이미 이명박 정권을 통해 민영화 꼼수를 겪으며 학습이 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논리도 부족하고, 국민 설득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마저 부족한 모습이다. 그러니 국민들은 못이기는 척이라도 하며 넘어가줄 수가 없는 것이다.

◆대화보다 공권력 동원 강경 대처
휴일이었던 지난 22일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9시께 경찰이 KTX민영화 반대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는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강제 검거를 위해 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경향신문사 건물 진입을 시도한 것. 경찰은 이곳에 무려 66개 중대 5,000여명의 병력을 투입하기까지 했다. 노조원 및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 시민 등에 막혀 건물 진입에 어려움을 겪던 경찰은 결국 건물 1층 유리문을 깨고 강제 진입했다.

경찰 등 공권력이 민주노총 본부 사무실에 강제 진입을 시도한 것은 지난 1995년 민주노총이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각계의 분노는 더욱 확산됐다. 특히, 경찰은 이날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에 실패했다. 민주노총 본부에 체포 대상이었던 지도부가 없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건물에 강제 진입한, 그야말로 황당한 상황이었다.

특히, 5,000여명의 경찰 병력까지 동원했다는 사실과 기물파손 및 일부 시위자들을 연행한 것을 두고는 ‘노조의 공포 심리를 자극하려 한 의도적 진입작전 아니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경찰의 민노총 본부 진입 사건은 민영화 반대 투쟁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욱 분노케 만들었다. 각계각층에서는 비난 성명이 쏟아졌다.

또 이를 계기로 노동계와 정치권,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 간의 강력하고 빠른 결속이 이뤄졌으며 철도파업은 여론의 지지까지 얻게 됐다. 파문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확산되자,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메시지는 반대파들에게 충격이었다. 대화를 통한 소통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 아닌, 초강경 대응의지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언제 도발할지 모르는 북한과 철도파업 문제,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정치권의 갈등 등으로 국민들이 여러 가지로 걱정스러울 것”이라며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철도노조 등 반대파들과의 타협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그야말로 ‘아니라고 했는데 왜 자꾸 딴소리냐’는 격으로, 더 이상 해명할 필요도 없고 소통할 필요도 없이 반대파들과 전면전을 펼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 철도민영화 논란과 관련해 국민들은 정부의 명확한 해명과 민영화 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반대론자들에 대한 강경 대처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모습이다. ⓒ청와대

◆투입자본이 문제라는데, 괴담으로 맞서는 與
반대파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민영화 수순이라는 주장에는 논리가 있지만, 정부는 단순히 ‘아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반대파들을 탄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반대파들이 정부와 코레일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사실상 민영화 수순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 자회사 설립비용에 국민연금 기금이 투입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장병완 정책위의장은 지난 24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는 자회사 설립비용의 59%를 국민연금 등 공공자금으로 조달하는 만큼 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명백히 수사에 불과하고 국민연금기금 운용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병완 의장은 우선 국민연금 기금의 성격에 대해 “정부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쌈짓돈이 아니고, 국민들의 노후를 위한 피 같은 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공적목적을 위해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입되는 자금이 아니고, 국민연금법에 수익을 최대로 증대시키도록 운영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국민연금법 102조는 시장수익률을 넘는 수익률을 올리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철도사업이 시장수익률 이상으로 올리도록 운영되는 사업인가. 철도사업은 여러 가지 공공사업 중에서도 가장 공익성이 강한 사업이기 때문에 자산시장에서 시장수익률 이상으로 수익률을 올리도록 절대 운영돼서는 안 된다”며 “따라서 국민연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는 주장은 자산시장에서 운영돼야 하는 국민연금법의 기본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또, “국민연금이 투입된 사업이 수익성을 내지 못할 경우 국민연금은 법에 따라 수급자에 대해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자산을 매각하지 못하도록 개별 정관을 통해 자회사의 정관을 제한한다는 것은 명백히 국민연금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정관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의 자산을 매각할 경우 다른 공공부문에서 이를 매수할 여력은 사실상 없다”며 “따라서 이를 이유로 민영화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장 의장은 “매각을 제한하면 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법을 지키고자 하면 민영화를 확실히 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멀쩡한 법을 두고, 정관으로 제한할 수 있다면서 손으로 하늘을 가리지 말고 국민들을 속이는 철도 민영화정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 같은 논리적 주장에 반박이나 답변보다 여론전을 통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그러면서 철도파업과 관련한 정부 대책 TF팀을 즉시 구성해 철도노조 파업의 부당성 및 KTX 요금 상승 주장의 허구성 등을 알리기로 했다.

정부의 이 같은 기조에 발맞추듯 새누리당도 여론전에 가세했다. 다만 민영화가 아닌 이유에 대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설명을 하는 대신, 정치적 성격의 반격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 등 과거 참여정부 인사들이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며 맹공을 퍼붓고 나선 것.

아울러, 새누리당은 철도민영화 논란을 사실상 ‘민영화 괴담’으로 규정했다. 2008년 광우병 괴담과 다를 바 없다는 것으로, 이에 따른 대국민 홍보전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당은 ‘늑대가 나타났다’는 제목의 긴급 당보 12만여 부를 제작해 전국 당협위원회에 배포하기도 했다. 민주당 등 철도민영화 반대파들이 양치기 소년과 다름없다는 내용으로, ‘왜 민영화가 아닌지’에 대한 설명이 아닌 의혹을 제기하는 반대파들에 대한 비난만 가득한 홍보물이었다.

소통은 사라지고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펼치는 여론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최근 철도민영화 괴담에 대응하기 위해 SNS 대응팀까지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로 민영화가 아니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충실한 설명과 보안 대책 하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통 없이 여론이 형성되는 곳에서 자기만의 주장을 펼치며 상대를 헐뜯는 것은 국민 분열의 또 다른 씨앗이 되고 말 것이다. 여권은 이것이 결국 정권에 악수가 될 수 있음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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