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당한 이유 없이 임신 중절 수술을 실시하는 경우는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법망을 피해 낙태를 실시하거나 불법 약물을 판매하는 사례가 눈에 띠게 증가하는 추세다. 불법 낙태를 둘러싼 여러 사건사고와 논란 및 쟁점, 예방법 등을 알아본다.
낙태로 죽은 태아, 전체 신생아 대비 36% 달해
전문가 “현행 법 제도 변화와 개선책 필요하다”
‘낙태 전문’ 병원 입소문…‘원정 낙태’도 벌어져
보건복지부 및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태어난 신생아는 47만여 명이었지만 같은 해 인공 중절 수술로 목숨을 잃은 태아는 약 16만9,000명에 이르렀다. 이는 전체 신생아와 대비해 무려 36%에 이르는 수치다. 전체 가임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공 임신 중절률도 15.8%를 기록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상위다.
낙태 관련 법규, 협박 수단 악용

그런데 현재 낙태는 현행법상 형법 제269조 또는 제270조에 따라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모자보건법상 △유전적 질환이나 성폭행, 근친으로 인한 피해로 임신한 경우 △임신 때문에 산모의 건강 및 생명이 위험한 경우 △태아가 심한 기형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만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제한적으로 낙태가 허용된다.
그런데 이처럼 낙태가 현행법 상 금지되는데다 처벌 대상도 낙태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을 집도한 의사만 적용시키기 때문에 이를 협박 수단으로 악용하는 파렴치한 남성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30대 초반 미혼여성 A씨의 경우다. 지난해 A씨는 사귀던 남자친구 사이에 임신을 하게 됐다. 그런데 A씨는 평소 몸이 약한 편이라 자연유산의 위험성이 컸고 아울러 남자친구가 임신 사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A씨는 고민 끝에 낙태를 결심했다.
인공유산 수술을 받은 A씨는 남자친구에게는 “자연 유산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4월 경 헤어지는 과정에서 남자친구는 A씨가 인공유산 수술을 받은 사실을 알았다. 이에 분개한 남자친구는 A씨에게 “계속 만나주지 않으면 낙태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며 협박을 일삼았다.
또한 실제로 낙태법 위반으로 법정까지 간 사례도 있다. 지난 2012년 인공유산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B(29)씨는 남자친구 C(27)씨와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남자친구가 평소에 술버릇이 좋지 않고 자신에게 난폭한 언행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C씨는 결별을 통보한 B씨에게 앙심을 품고 B씨와 인공유산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낙태죄로 고소했다. 재판 결과 법원은 시술을 한 의사에게 징역 6월·자격정지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또한 B씨에게는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한편 낙태방조죄로 함께 기소됐던 C씨에 대해 법원은 “낙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C씨는 모자보건법상 ‘배우자 동의’ 항목 덕분에 법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었다.이 같은 상황에 대해 성 관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여성이 임신을 유지하기 어려워 낙태까지 이르게 되는 주된 이유가 남성 탓이라 하더라도 남성이 낙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처벌받지 않도록 되어있는 현행법은 문제가 많다”는 의견이 많은 실정이다.
낙태로 법정 공방까지

한 성상담 관련 전문가는 “여성의 결정에 의한 임신 중단 및 인공 유산이 범죄로 여겨지는 있는 현재 상황에서 남성이 배우자 동의 조항을 악용해 남성이 여성과 의사를 협박하는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여성이 결정의 주체가 됨과 동시에 태아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반드시 협의 과정을 거치게 하도록 의무화 하고 낙태의 원인을 제공한 남성을 함께 처벌하는 등 법 제도의 변화와 개선책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아울러 여성이 ‘임신했다“며 낙태 수술비를 명목으로 남성을 협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윤모(46·여)씨는 한 등산모임에서 만난 중소기업 대표이자 유부남인 신모(64)씨와 지난 2004년부터 내연관계로 지내왔다.
신 씨는 1,000억 원이 넘는 토지를 소유한 자산가로 윤 씨에게 달마다 생활비 명목으로 500만원을 주는 등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아이를 갖는 것은 반대했다. 하지만 2008년 11월 결국 윤 씨는 임신을 하게 됐다.
윤 씨는 신 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다가 2개월이 지난 2009년 1월 임신 안정기에 접어들자 알렸다. 윤 씨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신 씨는 본인의 지인을 앞세워 “우리 사이에 아이를 낳으면 좋을 게 뭐가 있겠느냐”며 돈을 통해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거듭 낙태를 부추겼다.
이들 두 사람은 낙태 문제로 협상을 벌였다. 몇 번의 논란 끝에 결국 윤 씨는 50억 원을 받고 낙태 수술을 받기로 신 씨와 합의했다. 이 협상 과정에서 윤 씨는 신 씨가 보상 금액을 깎으려고 시도한 데다 중재 역할을 맡은 지인이 폭언까지 퍼붓자 격노하여 “아이를 출산해 신 씨가 운영하는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윤 씨는 신 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총 50억 원을 받았으며 임신 5개월인 같은 해 3월 인공 유산 수술을 받고 아이를 지웠다. 신 씨는 윤 씨가 아이를 낙태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태도를 갑자기 바꾸었다.
신 씨는 윤 씨에게 “주었던 돈 50억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윤 씨가 이에 응하지 않자 신 씨는 “임신을 구실로 하여 나를 협박했다”며 공갈 혐의로 윤 씨를 고소했다. 결국 법정 싸움이 시작됐다.
대법원까지 가는 진통 끝에 결국 법원은 윤 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1·2심 재판부는 윤 씨가 먼저 돈을 요구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윤 씨의 행위가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금품갈취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씨는 임신 사실을 알린 뒤 ‘아이를 낳겠다’는 취지로만 말했을 뿐 먼저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며 “신 씨에 대한 호감 때문에 임신했는데 돌연 신 씨가 낙태를 종용하며 합의금까지 제시하자 배신감과 치욕에 사로잡혀 인공 중절을 결심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12월 17일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도 공갈 혐의로 기소된 윤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인터넷에서 ‘낙태약’ 판매되기도

이와 아울러 여자 친구가 임신하자 낙태를 종용한 뒤 비정하게 결별한 남성에게 협박한 피해 여성의 어머니에게 벌금형이 선고된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지난 12월 9일 청주지법 형사3단독부(이혜성 판사)는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딸의 전 남자친구를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A(65·여)씨에게 협박죄를 적용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자신의 딸(34)과 결혼까지 약속하며 사귀던 B(30)씨가 2011년 4월 여자 친구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낙태를 시키도록 한 뒤 결국 이별을 통보하자 피해 보상을 하라며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2011년 6월 B씨와 이 남성의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 “내 딸의 인생을 망쳐 놓았다. 평생 살 수 있게 보상하지 않으면 직장 및 다니는 교회에 낙태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또한 의료계에 따르면 불법 낙태 시술은 일부 산부인과 의원을 중심으로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의료 관계자에 따르면 “인공 중절 수술은 임신 초기는 중·후반에도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약을 통해 사산을 유도하는 시술도 은밀하게 시행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임신 초기 낙태 시술은 더욱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부 산부인과 의원은 ‘낙태 전문’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고 ‘원정 낙태’에 나서는 임산부들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낙태 시술 알선 브로커'도 활개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임신 초기 낙태 시술은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일부 산부인과 의원은 ‘낙태 전문 병원’으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으며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 ‘원정 낙태’에 나서는 산모도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임산부와 병원을 연결시켜주는 ‘낙태 시술 알선 브로커'도 인터넷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먹는 낙태약’도 인터넷에서 별다른 제약 없이 유통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국내 수입이 금지되어 있는 불법 낙태약인 ‘RU486’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거래되고 있다.
의학계에 따르면 RU486을 임신 초기에 복용하면 수정란이 자궁벽에 착상되는 것을 억제해 유산에 이르는 효과가 있다. 특히 사후 피임약이 수정란의 착상을 방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RU486은 착상된 상태에도 약효가 작용된다.
이 때문에 RU486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인터넷에는 이 약을 찾는 임신 초기 여성들이 적지 않으며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까지도 생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들은 “RU486 등 낙태약을 의사 처방 없이 함부로 복용하면 향후 불임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 과다 출혈로 산모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한 성 상담 전문가는 “불의의 임신으로 낙태까지 이르는 경우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는 관계를 가질 때 피임을 철저히 하는 인식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각급 학교에서 철저한 성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전문가는 “특히 여성이 피임 상태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관계를 거부할 수 있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 때문에 또는 분위기를 망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피임을 놓치면, 자칫 몸과 마음을 모두 해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