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새벽 세법 개정안이 공론화 과정이 생략된 채로 공청회 등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거래 형식으로 전격 처리됨으로써 느닷없이 과세 대상이 된 소득자들에 대한 불만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벌써부터 우려되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갑작스레 최고세율 부담 대상자가 된 담세자들의 조세저항과 회피가 염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세무관계자는 입을 모으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 공약 1년도 안 돼 공염불
전문가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 생략” 지적
세수 확대로 소비 위축 등 부작용 초래 우려
조세 정의 차원에서, 그리고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역대 정권마다 수차례 거론됐던 ‘부자 증세’ 결정판이 가시화됐다.
이번엔 해를 거듭할수록 나라 곳간이 비워지자 적자 재정 보전이라는 또 다른 목적이 가세하면서 ‘부자 증세’가 현실화 된 것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첫 부자 증세가 이뤄졌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정부 공약이 1년도 안 돼 공염불이 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복지 공약을 이행하려면 한 해에 27조원, 5년간 135조원이라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세출 구조조정과 지하경제 양성화로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의도대로 정책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여러 가지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가당착이고 고육지책이지만 증세 외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법인세 세수 등의 감소로 올해 예상되는 세수 결손은 6조 원 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국가 채무는 500조원을 넘어섰다. 그래서 증세는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정부 여당에서 무게를 실어가고 있는 참이었다.
이러한 물결을 타고 여야 지도부는 지난달 30일 물밑 접촉을 통해 소득세 최고세율 과세표준을 하향 조정하는 ‘통큰 거래(빅딜)’를 성사시켰다. 새누리당은 현행 38%의 최고 세율을 적용받고 있는 소득세 최고세율 과세표준을 현행 '3억 원 초과'에서 2억 원 선을 고수해 왔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1억5000만 원 초과'로 확대하자는 주장을 내세웠다.
결국 정치적 빅딜로 새누리당이 한발 양보하여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이 같은 소득세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득세 최고세율 38%을 적용받는 담세자는 지금보다 약 9만여 명 늘어난 13만 명에 달하게 된다.
세법 개정으로 최대 450만원 추가부담
이 결과 전체 근로소득자(1550만명)중 최고소득세율 적용 대상 비중이 2013년 0.26%에서 0.85%로 늘어난다. 이로 인한 추가 세수증대 효과는 한해에 걸쳐 많게는 4000억 원 선으로 추계된다.
이번 소득세법 개정의 국회 통과로 과표 1억5000만~3억원 구간에 속하는 9만여 명에겐 증세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세금을 더 내는 규모는 최대 450만원. 과표 2억원의 경우 150만원의 세금을 더 낸다. 2억5000만원은 300만원, 3억원은 450만원의 세금부담이 각각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세수 증대가 당초 의도대로 이뤄질지는 참으로 미지수다. 왜냐하면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세무당국의 증세 정책은 곧바로 조세 저항과 조세 회피 등의 반발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세원이 여실하게 노출되는 카드 사용을 권장하였지만 결국에는 현금 사용만 늘어나고 5만원 고액권이 자취를 감추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번 증세 조치에 대한 효과가 정책 의도와 판단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라는 세무전문가들도 있다.
한편 민주당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를 폐지하자는 새누리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비사업용 토지에 대해서는 기존 30%에서 10%로 영구 감면하되, 개인에 대해선 중과를 1년 유예키로 했다.
침체일로로 치닫고 있는 부동산 경기에 불씨를 지피기 위해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일보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민주당이 십분 활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세수 증대를 통한 적자 재정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부자 증세’가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크게 후퇴하는 민주당 안이 관철된 것은 상황 논리의 이점을 민주당이 적절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부동산 시장 겨냥 다주택자 중과 제도 폐지
민주당 지도부는 박근혜 정부의 첫 '부자 증세'를 이끌어냈다는 실리를 챙긴 것. 중산층을 비롯한 서민층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이 현실화 된 것이다.
국회는 세법개정안을 당내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늦어도 31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갑오년 새해 첫날인 1일 새벽에야 통과시켰다.
당초 협상은 양당 지도부간 최종 담판을 통해 이뤄졌다. 민주당은 소득세 최고세율 과표 확대와 법인세 최저한세율 인상을, 새누리당은 다주택자 중과 제도 폐지를 관철시켰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이 요구해왔던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과 전월세 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은 무산됐다.
소득세 과표구간 하향 조정과 함께 여야는 법인세율도 손봤다. 법인세율 인상에 합의한 것. 이에 따라 법인세 최저한세율도 1년 만에 또 인상되게 됐다. 최저한세율이란 과표 10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이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을 받더라도 반드시 내야 하는 세율이다.
여야는 지난해 말 14%에서 16%로 인상한 데 이어 올해 1%포인트 추가로 높인 17%로 전격 합의했다. '현행 16%를 유지해야 한다'는 새누리당과 '18%로 인상하자'는 민주당이 중간에서 절충점을 찾은 셈이다.
대신 민주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2%에서 25%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포기했다. 이 결과 법인세율 22%는 그대로 유지된다.
새누리당이 부자증세를 받아들인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근인(根因)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를 폐지하지 않을 경우 부동산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당장 올해 중과 제도를 폐지하거나 유예하지 않을 경우, 다시 말해 중과제도가 지속된다면 다가구 소유자 가운데 2주택소유자는 주택을 팔 때 발생한 양도차익의 50%, 3주택자에게는 60%의 세율이 부과될 수밖에 없었다.
‘부자 증세’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다
어쨌든 이번 중과 폐지 결정으로 2004년 과열 양상을 보이던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기 위해 도입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제도는 폐지되게 됐다.
현 정부의 ‘첫 증세’로 기록된 이번 ‘부자 증세’는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은 것이 분명하다.
우선 세법 개정안을 놓고 공론화 과정이 생략됐다는 점. 공청회 등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여당과 야당이 정치적 거래 형식으로 전격 처리함으로써 과세 대상이 된 소득자들에 대한 불만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벌써부터 우려되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갑작스레 최고세율 부담 대상자가 된 소득자들의 조세저항과 회피가 염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세무관계자는 입을 모으고 있다.
또한 세부담 증가는 소비 위축을 불러와 가뜩이나 움츠러든 국내 경기에 이번 세법 개정이 악재로 가세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법인 실효세율 역시 비록 소폭이지만 1%포인트 폭 올라 기업의 투자심리를 냉각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경제전문가들은 거론하고 있다.
여당과 정부, 야당의 정치적인 목적이 접점을 이루면서 이뤄진 이번 세법 개정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어떤 정책 효과가 나타날 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미 나타난 정부 정책을 알리는 단순히 고지효과(announcement effect)만으로도 앞으로의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다행히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당초 예상한대로 세수가 늘어나 부족해진 복지 재원이 마련되고, 아울러 야당 측에서 기대하듯이 고소득자, 부자에 대한 세금 추가 징수를 통해 소득재분배와 조세 정의 등 정책 목표가 실현된다면 이번 세법 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빅딜’ 카드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