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가진 권력의 크기만큼 비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책임이다. 우리 헌법 제1조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돼 있다. 즉, 권력을 가진 만큼 국민에 대한 책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경우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권한과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다 보니,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이슈들에 대한 책임까지 대통령이 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스갯소리지만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대통령 탓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동네북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이 같은 제왕적 권력은 대통령이 스스로 내려놓는다고 해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겠다면서 대연정을 제안했을 때 국가와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이 있었는지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결국 대통령 권력이라는 것은 선언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법과 제도를 통해서만 수정이 가능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그런 이유에서 최근 여의도에서는 개헌이라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개헌만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고, 대통령도 그에 따라 수많은 책임론에서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다. 개헌론자들은 1월 발의와 6월 국민투표라는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지금까지 개헌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경험론에 비추어봤을 때 이번에도 결코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개헌이 이뤄질 때까지 임시적이라도 그 어떤 조치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권력의 집중과 그에 따른 책임으로 대통령이 레임덕에 허덕이는 악순환의 반복을 끊어내야만 한다.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한 대통령은 곧 국민적 불행이라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근 철도파업 사태를 바라보며 국민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거리에서는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난을 쏟아 부으며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때 정작 앞장서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주무부처 장관은 노조를 만나 대화를 나눠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 논란에 휩싸이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었다.
책임은 없고 권력만 가지고 있는 현실이 어떤 형태로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제는 모두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은 내각의 독립적 지위를 확실히 보장함으로써, 책임 내각을 구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내각은 각 분야의 문제들에 대해 대통령 책임론이 불거지기 전에 스스로 적극성을 가지고 국민 설득과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야당도 문제만 생기면 모든 것을 대통령 책임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대통령이 올바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발휘해야지, 무조건 대통령 책임을 거론하며 주구장창 흔들기만 할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의미 있는 일이 될지 모르나, 결국 국민에게는 고통만 안겨주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야당이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한다면, 대통령부터 흔들고 보는 정치가 아닌 여당 또는 주무부처 장관과 먼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답이다. 야당이 장관을 먼저 인정해야 책임 장관제도 뿌리를 내리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