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갑오년 새해는 그야말로 정치권 대변혁의 가능성을 품은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오는 6월 4일 치러지는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상반기 정치권 주요 이슈들을 모조리 흡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라는 의미와 함께 2016년 총선에 대한 가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방권력의 대대적인 교체 바람이 일게 될지도 관심사다. 그런데 이 같은 지방선거가 확정된 정치 스케줄이라면, 아직 구체적이지 않은 초대형 정치 이슈가 꿈틀거리고 있다. 바로 개헌이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본격적으로 개헌 추진 논의를 펼치고 있다. 개헌은 그 자체로 사회 모든 이슈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서는 여야를 아우른 정치권 전체의 대변혁을 촉발시키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계개편도 불가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여권개편이나 야권개편 성격이 아닌, 여야를 아우른 전면적 정계개편이다. 2014년, 정치권이 개헌의 폭풍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개헌 논의에 불을 붙이고 나섰다. 수차례 정권이 바뀌면서 불이 붙었다 꺼지기를 반복했던 개헌론이기에 이번엔 제대로 실행에 옮겨질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다시 불붙은 개헌론, 정계개편 부른다
지난달 27일, 여야 국회의원 120여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은 국회 의정관에서 워크숍을 개최하고 다시 한 번 개헌 불붙이기에 나섰다. 이들은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됨으로써, 다양한 문제들을 유발하고 있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10차 개헌은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통령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각론적 방법을 놓고는 아직까지 목소리가 통일되지 않고 있다. 일부는 분권형 4년 중임제를, 또 다른 일부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기도 한다. 소수의 경우 의원내각제를 얘기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분권 방식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후, 내년 6.4지방선거와 연계해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이 같은 일정 등을 포함해 나름대로의 ‘개헌 로드맵’ 설정했다.
이와 관련, 이명박 정권에서 2인자였으며 이른바 ‘개헌 전도사’로 불려온 새누리당 이재오 중진 의원은 1월 중 즉각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재오 의원은 이와 관련해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에서 내년 1월부터는 개헌안을 발의할 각오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의원님들의 동참을 바란다”고 개헌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우리가 미국을 좋아하는 나라인데, 절차는 미국을 따라가는데 내용은 전혀 따라가지 않는다”며 “내용적 민주주의는 전혀 성숙되지 않고 있다. 개헌을 통해 내용적 민주주의를 성숙시켜 다음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어, “1월부터는 개헌모임이 앞장서서 여야 합의만 이뤄지면 개헌안을 발의해 놓자”며 “발의해서 처리하는 과정까지 많은 수정과 보완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우선 발의부터 해놓자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그동안 오랜 시간 여야 정치권이 개헌에 공감대를 형성해놓고도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개헌안 발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해온데 따른 것이다. 이번만큼은 개헌 의지를 법안 발의로 못 박아놓고 가자는 의미다.
이 자리에서 개헌모임 고문인 민주당 유인태 의원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요즘처럼 실감나게 느끼는 시가가 없었던 것 같다”며 분권형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 의원은 “100명은 쉽게 될 것 같고 과반수를 돌파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좀 더 탄력을 받으려면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으면 한다”고 여당 의원들의 대통령 설득을 당부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 야당 간사인 민주당 우윤근 의원도 이날 발제문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다수결에 의한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하고 협의 민주주의 형태의 분권형, 또는 내각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 의원은 그러면서 “새 정부가 출범한 올해와 내년이 정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개헌작업을 추진할 적기”라면서 “내년 6월 4일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예정돼 있어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부의하기에 시의적절하다”고 6.4지방선거와 연계한 국민투표 방안을 제시했다.
우 의원은 또, 사실상 이원정부제 형태를 취한 ‘국민 직선 분권형대통령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우 의원은 “대통령은 국방-외교 등 국가원수로서의 권한과 국무총리-장관 임명권, 의회해산권 등을 갖고, 총리는 국회에서 직접 선출하되 다수당 대표가 내각 수반이 되게 해 의원내각제 형태를 유지하자”며 “총리는 내각의 수장으로서 국회에만 책임을 지면서 내정을 총괄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개헌 발의, 걸림돌 없다
개헌안이 발의되기 위한 조건은 두 가지로 충족될 수 있다. 우선 대통령의 제안이 선행되고, 이를 정치권이 받아들이면 된다. 또,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5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발의할 수도 있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 같은 개헌 발의 조건이 마련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헌을 대선후보 공약으로 내걸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5년 동안 개헌 논의는 온갖 논란만 일으켰을 뿐, 그 어떤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다. 집권 초기에는 민생문제 우선을 이유로, 집권 후반기에는 정략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5년 내내 개헌 논의는 불씨가 붙을만하면 꺼지고 붙을만하면 꺼지는 반복이었다.
그러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초, 임기 후반기에 다시 한 번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골간으로 한 개헌을 정치권에 제안했던 바 있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 전반의 반대에 부딪혀 노 전 대통령은 개헌 제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은 모든 대선주자들에게 ‘반드시 차기 정부에서는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시키더라도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개헌 철회에 대한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 대선 후보들은 직접적 또는 암묵적으로 이에 동의하고 대선에 임했다. 이후, 이명박 정권이 탄생했고 여당은 국회의장까지 포함해 무려 172석 규모의 거대한 몸집을 가지게 됐다. 여당 단독으로도 개헌 발의를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당이 가지고 있던 조건 뿐 아니라, 18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여한 최대 규모의 연구단체로 ‘국회미래한국헌법연구회’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여기엔 여야 현역 의원들이 무려 167명이나 참여했고, 개헌 발의 정족수인 150명을 훨씬 웃도는 규모였다.

개헌을 위한 모든 조건은 다 갖추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명박 정권 5년을 보내면서도 결국 개헌을 이뤄내지 못했다. 거대 공룡 여당을 중심으로 개헌이 이뤄질 경우, 헌법의 보수화를 진보진영이 우려한 때문이었다. 그렇게 유야무야 세월이 흘렀고,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말에는 또 ‘정국전환용’이라는 시선 때문에 개헌은 불이 붙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 2년 차에 접어든 지금 정치권은 이제 더 이상 개헌을 미룰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미 공감대를 확인했고, 시기적으로도 가장 적합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행 헌법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기에 정치권이 끊임없이 개헌을 추진하려 하는 것일까?
정치권은 마지막 9차 개정됐던 87년 현행 헌법이 시대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 이유일 뿐, 10차 개헌 논의의 핵심은 ‘대통령 권력 분점’에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를 바탕으로 한 현행 헌법에서는 87년 노태우 정권, 92년 김영삼 정권, 97년 김대중 정권, 2002년 노무현 정권, 2007년 이명박 정권, 그리고 2012년 현재 박근혜 정권까지 모두 6번의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6차례 정권이 바뀌는 동안 ‘대통령 5년 단임제’는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함으로써 대통령의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임기 말에는 권력 집중에 따른 책임론에 휩싸이며 대통령이 레임덕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역대 대통령들 모두는 집권 1년차에 국정을 파악하고, 2-3년차에 본격적으로 국정 철학을 실행하고, 3년차 또는 4년차부터 측근 비리 등이 터지며 국정 동력을 잃어가는 반복을 보여왔다. 대통령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임기 5년 중 불과 2년 안팎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또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10차 개헌 논의가 시작됐고, 따라서 그 핵심은 대통령 권력 분점에 있다. 이는 참여정부 이전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논의돼 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대통령 권한을 최대한 분산시킬 수 있는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를 놓고 다양한 논의들을 펼치고 있다.
◆“87년 헌법, 이제는 바꾸자”
한편, 우리 헌법은 1948년 유진오 박사의 초안을 바탕으로 제정된 이후, 87년 헌법까지 모두 9번 개정됐다. 현행 헌법이 바로 9번째 마지막으로 개정됐던 것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87년 헌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헌법은 87년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정당의 ‘6년 단임제’ 주장과 통일민주당의 ‘4년 중임제’ 주장을 절충해 마련된 것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직선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헌법 개정 역사상 87년 헌법이 가지는 의미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처음으로 민중들의 뜻에 의해 민주적으로 개정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헌법 개정(과도정부하의 3, 4차 개헌만을 제외한)은 정권연장 차원에서 이뤄져 왔던 바, 이 때문에 87년 헌법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서막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7년 헌법이 지금까지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재 권력의 정권연장을 방지하는 기능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이 헌법에서는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 등을 도입해 입법부 권한을 대폭 강화시키는가 하면 헌법재판소를 설치해 사법부의 권한도 강화시켰다. 역대와 비교했을 때,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3권 분립의 틀이 가장 잘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제 87년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데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이 가장 중요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상을 담아내기에도 지금 헌법이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9번 이뤄진 개헌이 대부분 권력구조 개편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었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헌은 핵심인 권력구조 개편은 물론 ‘글로벌 시대의 기본권 강화’ 및 ‘생명권’, ‘환경권’ 등 국민들의 삶 전반적인 것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지방자치시대, 지방분권에 관한 내용도 빠질 수 없는 개헌의 내용 중 하나다.
또, 일각에서는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면서 헌법 제3조 영토조항과 제4조 통일조항이 상충됨을 근거로, 개헌 논의에 통일헌법 제정 또한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게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현재 불거지고 있는 개헌 논의는 권력구조 개편의 원 포인트를 위한 개헌이 아닌 시대상에 맞는 다양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개헌론이다. 이 같은 취지에는 여야 정치권 대부분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