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노령화에 대비하는 국정운영 준비되어야한다.
급작스런 노령화의 진행은 우리나라 앞날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노인의 날을 맞아서 노인문제를 돌아보면서 가장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노령인구의 증가로 인한 앞으로 우리나라 인력 수급과 부양인원 증가에 따를 젊은 인력의 부담가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우리나라 국민의 인구 분포가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정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견딜 만 하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65세 이상의 노인 한 분을 모시는 생산인구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1980년에는 생산인구 16.3명이 노인 한 분을 모시었지만, 10년후 인 1990년에는 13,5명으로
줄었고, 2003년에는 8.6명이 되었고, 그리고 앞으로는 돌아오는 2020년에는 4.7명이 될 것이
며. 2030년에는 2.8명으로 줄게 된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이것은 일할 사람은 없고 먹여 살려야할 사람만 늘어나서 앞으로 우리 자손들에게 너무 무
거운 짐이 될 것이라는 말이 된다. 지금 3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 노령인구가 되는 시기가
2030년이다. 그리 멀지 않은 날인데도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
다. 올해부터 태어난 아기들이 생산인구에 들어가는 것은 적어도 20년 후이다. 그렇다면
2025년쯤에나 겨우 실질적인 생산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자
유스러움, 그리고 자기들만의 멋진 삶을 꿈꾸고 있기에, 또는 지나친 교육비 부담을 걱정하
여서나 자녀들의 장래를 걱정하여 자녀를 적게 낳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나의 귀여운 아니 단 하나 뿐인 어린 자녀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게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1960년대만 하여도 보통 가임 여성 1인당 평균 자녀의 수가 5명을 넘어서 6명 대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국가정책으로 가족계획사업을 실시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가족계
획을 실천한 나라가 되었다. 그 확실한 증거로 2002년에는 가임 여성 1인당 평균 자녀수가
1.17명이라고 하니까 60년대의 1/5이 된 셈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의 고령화
사회를 더욱 재촉하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왜냐하면 우리국민의 생명 연장
만으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고령화 사회로 변한 것이 아니라, 출산율의 저하에서 온 결과이
기 때문이다.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고 비정상적인 변화이고 그래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지금 60대에 이르는 사람들에게는 앞으로 30년 후가 되면 전혀 움직일 능력조차 없는 경우
가 되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쉬울 것이므로 당연히 그 때쯤은 크게 걱정하지 않
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자신이 노령인구에 해당할 무렵
인 2030년 무렵부터 실질생산인구 3명이 노령인구 1명씩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적어도 지금 자신들이 느끼는 것보다 3배는 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그 때가
더 걱정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도 노인문제가 시급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점점 생존 연령은
연장되고 그에 따라 노령의 몸을 지탱하기에는 지친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건강유지
비용의 증가는 더욱 커지고 있으며, 의료비의 지출은 늘어나 젊은 시절 보다 몇 배의 지출
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건강한 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하
는 노령인구지만 충분한 재정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의 비율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점점 줄어드는 생산인구들에게서 받아들이는 국민연금의 액수는 줄고 혜택을 받아
야할 사람은 2,3배로 늘어난다면 국민연금조차 점점 더 많이 줄 수 없게 될 것은 당연한 이
야기이다. 지금도 연금 혜택을 누리는 연령의 사람들은 급격히 줄어든 예금이자 때문에 노
후 생계를 이자에 의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요즘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모를 것이다. 금융상
품의 이자가 이제는 4%대에서 더 내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물가는 오르고 금리는 1/5로
줄어든 현재 노인들의 몇 년 전에 비하여 삶은 엉망이 되어 버렸을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점점 더 많은 노령에 이른 분들은 나이 들어서 자녀들에게서 부양을 받으리라 생각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어떻게 생계
수단으로 삶을 영위할 것인가? 45停, 56盜의 시대에 너무 젊은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난 사
람들이 연금이라는 혜택만으로 삶을 유지하기란 힘겹기만 하지만, 그나마도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벌이도 없고 갈곳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이 되
고 만다.
그렇지만, 이렇게 점점 더 열악해져 가고 있는 복지 여건, 열악해질 수밖에 없는 국가의
복지정책은 앞으로 노인들의 부양의무를 국가가 떠맡기에는 더욱 힘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점점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하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부모들 역시 자녀들에게 얹혀
살기를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래서 마지막 생존기간동안은 삶의 영위한다기보다는 고통 속에 죽음을 기다리는 기간으
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사태가 다가오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것인가? 아니 이렇게 다가오는 노
령사회의 그림자가 덮쳐 오는 대로 그냥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가?
국가를 운영하는 분들은 이제 눈앞의 문제에만 정신을 쏟다가 닥쳐오고 있는 불행한 사태
에 대한 대책도 세우지 못한 채 맞을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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