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이 결국 1000조를 넘어섰다는 추정치가 나오고 있다. 늘어나는 소득과 함께 부채 규모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지만, 소득 대비 부채 증가율이 훨씬 가팔라 한국 경제를 뿌리째 위협하는 뇌관으로 자리 잡게 됐다는 지적이 많다. 문제는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까지 적극적으로 ‘빚 권하는’ 사회 풍토를 만들고 있다는 데 있다. 소비촉진을 통해 당장은 경제 활성화가 이뤄질 수 있겠지만, 결국엔 가계에 ‘부채 폭탄’이라는 짐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가계가 파산하면, 기업도 국가도 온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경제가 지금 심각한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현재, 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상호금융 등)의 가계대출 잔액은 681조1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개월 전인 10월 말보다 5조원이 증가한 것이며, 9월~10월 합계로는 무려 9조원 증가한 것이다.
지난해 9월말 가계신용이 991조7천억원을 기록했었으니, 여기에 10월과 11월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만 합산하더라도 1000조는 훌쩍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가계대출 규모의 급격한 증가율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3월까지 가계대출은 655조639억원 규모였다. 그런데 3개월 만인 6월에는 666조4234억원으로 껑충 뛰었고, 8월에는 670조8275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니까 3월부터 11월까지 무려 25조원이 넘게 가계대출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가계부채 증가, 부동산정책 영향?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4.1부동산대책과 8.28전월세 대책 등을 지목하고 있다. 정부는 침체된 주택거래 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극약처방으로 주택 매매 시 정부 지원 대출 금리를 크게 낮춰줬다. 아울러 한시적이긴 하지만, 각종 세제 혜택을 줌으로써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한다’는 구매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정부의 의도는 대략 맞아떨어졌다. 실제로, 4.1부동산대책과 8.28전월세 대책 시점에 맞물려 가계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한은 관계자 또한 “10월과 11월 증가는 주택매매 거래량이 크게 늘어나고, 정부의 전월세 대책으로 전세 대출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4.1부동산 대책 세제혜택의 막달 효과에 따라 생애최초 주택구입자 대출이 사상 최대 규모인 2조5천억원 규모가 집행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당장 빚을 내서 주택을 구매하고 이후 뒷감당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대출 금리가 소폭 낮아지기는 했어도 원금상환 문제까지 고려하면 결국 또 다시 하우스푸어가 양산이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 대책은 결국 ‘대출로 집 사는 길을 열어주는 꼴’이라는 비판적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주택 구입 대출을 해주더라도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한도 또한 개인이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설정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그래야 또 다시 하우스푸어 양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박수현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올해 가계부채 증가는 박근혜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맞물려 있다”며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4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는 부동산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빚내기를 권하는 정책이었다”고 꼬집었다.
박 대변인은 덧붙여 “박근혜정부가 채무를 줄여주겠다며 내놓은 국민행복기금은 오히려 ‘채무독촉 프로그램’으로 비판받고 있고, 이러한 뒷북치는 미시정책이 근본해법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며 “빚을 내어 빚을 갚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가계부채가 서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기 위한 일자리 대책이나 맞춤형 채무 조정 프로그램 도입, 불법 추심을 근절시키기 위한 채무자 방어권 부여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