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피해 논의 위한 전체회의 불참석
호남·제주 지역이 폭설(暴雪)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22일 한나라당은 다른 당 의원들에게 폭설(暴說)을 맞아야 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행정자치위원회와 농림해양수산위원회가 폭설피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재정경제위원회도 일부 세법에 관한 회의를 계획했지만 결국 무산돼 기다리던 의원들은 한나라당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무효화를 주장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거부하고 있는 상황. 폭설 피해로 인한 광주·전남지역의 피해액이 1600억 원대에 이르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국회에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나마 열린우리당 의원이 위원장인 행자위는 '반쪽' 회의라도 열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농해수위와 재경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회의 개최를 기다리다 정족수 미달로 간담회를 위해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다음은 이날 3개 상임위원회 회의실 풍경이다.
텅빈 한나라당 의석, '반쪽' 회의
이날 행자위 전체회의실에 이영순 의원은 홀로 앉아있었다. 이 의원이 유난히 이 위원장의 눈에 띈 이유는 야당 쪽 의석에 이 의원 홀로 '섬'처럼 앉아있었기 때문.
한나라당 의원 10명은 당 방침에 따라 이날 회의에 불참했고, 무소속인 정진석 의원이 여야의 의석수를 맞추기 위해 열린우리당 쪽에 자리를 잡는 바람에 이 의원은 '단독' 야당 주자처럼 앉아있었다.
이날 행자위 전체회의에는 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대설피해 현황보고 및 복구대책에 대한 정부의 현안 보고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 회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반쪽'에 그쳐야 했다.
이 위원장은 회의를 시작하면서 "보시다시피 한나라당 의원들의 의석이 텅 비어있다, 한나라당 의원들께서 하루 속히 원내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위원장은 "오늘 같은 날이야말로 한데 모여서, 폭설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슬픔과 상처를 위로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도 회의 도중 "한나라당 의원들과 오늘 회의를 같이 하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곧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홍 의원은 "만약 영남 지역에 이 같은 폭설피해가 있었다면 한나라당이 이 자리에 없었겠냐"며 "국민들의 눈에 한나라당은 이번 피해를 한 지역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자신들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위원장에게 "한나라당이 긴급한 현안에 대한 회의에 돌아올 수 있도록 촉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나라당 간사인 이인기 의원은 회의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지만 회의 참가 요구에도 불구하고 선 채로 회의를 잠시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한편,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의원들은 내년부터 선정 기준을 피해액 35억(현행 3000억) 이상으로 완화하도록 한 새 시행령을 소급해 이번 폭설피해지역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달라고 강력히 제안했다.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시행령에 피해 발생시점을 기준으로 정하지 않았고, 앞으로 눈이 계속 오기 때문에 법을 어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 장관은 이에 대해 "피해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원칙론'을 내세워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정황으로 보나 피해규모로 보나 정부의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면서도 "향후 규정에 맞지 않아도 특별지해지역으로 지정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리자마자 산회 "내일 다시 시도"
국회 농해수위도 이날 폭설피해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전체회의를 열 예정이었지만 이 위원장은 개회 이후 곧바로 산회를 선언했다.
이상배 농해수위원장은 "열린우리당 의원 7명이 어제 소집을 요구했고, 내부적 문제가 있지만 의견을 존중해서 개회를 하기로 했다"면서도 "간사간 의사일정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산회의 이유를 밝혔다.
이 위원장의 결정에 강하게 항의하던 의원들은 기자실을 찾아 한나라당의 국회 복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지 않을 경우 국회법에 따라 교섭단체 간사가 회의를 선언할 것"이라며 다음날(23일) 오전 전체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열린우리당 간사인 조일현 열린우리당 의원은 "피해 농어민들은 이번 폭설을 '전쟁'이라고 표현하는데, 사단장 한 사람이 빠졌다고 전쟁을 안 할 수는 없다"며 "한나라당은 당리당략에 빠지지 말고, 농해수위 위원들만이라도 즉각 민생을 논하는 자리에 임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호남 지역 피해로 인해 심기가 불편한 민주당 의원들의 성토는 더욱 거셌다. 신중식 의원은 "재난피해로 인한 농어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한나라당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 의원들은 회의 불발에 대한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한나라당은 돌아오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기자회견을 마쳤다.
기다리다 포기… "27일엔 종부세 처리, 준비됐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다."
이날 오전 10시10분경, 재경위 전체회의가 열리기를 기다리던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한나라당의 회의 불참을 빗대어 이런 한마디로 일갈했다.
당초 자신의 사회로 재경위 전체회의를 열겠다고 공언했던 여당 간사인 송영길 의원은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위원장에게 회의 사회를 내가 보겠다고 말했더니, '단독 사회의 오명이 계속 따라다닐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에 한 의원은 "사회를 보지 않는 것에 대한 오명과 단독 사회 오명이 비슷한 것 아니냐"고 우스개를 던지기도 했다.
이날 회의장에서 연신 핸드폰을 통해 동료 의원들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던 송 의원은 오전 10시 40분경 의원들과 함께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이 뒤늦게 참석하면서 회의개최 정족수인 25명 중 13명(열린우리당 의원 12명. 민주당 1명)이 채워졌지만, 김 의원은 "종부세도 처리하지 않으면서 (조세법안심사 소위에 박병섭 의원 대신 유시민 의원이 들어가는) '사임 보임' 안건만 처리한다면 굳이 전체회의를 강행할 필요가 있냐"면서 소회의장 바깥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결국 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릴 예정이었던 재경위 전체회의는 무산됐다.
한편 송영길 의원은 국회 브리핑룸을 찾아 재경위 전체회의 무산 사실을 전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오는 26일 재경위 소위원회를 열어 세입예산을 처리하고, 27일 전체회의를 열어 종부세 등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 의원은 또 "폭설을 명분 삼아서라도 한나라당이 빨리 국회로 복귀했으면 한다"면서 "종부세는 한나라당이 원칙적으로 동의했기 때문에 민주당·민주노동당과 조율해 다음주에 소위와 전체회의를 열어 각종 법안을 의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 의원은 "오늘 김부겸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와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단 수석부대표가 만나 종부세에 대해 조율했고, 민주당 김효석 의원도 연내처리에 동의했다"며 한나라당이 불참하더라도 27일 전체회의에서 종부세를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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