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했던 전국 20개 고교 중 경북 청송여고가 9일 철회를 결정하면서 파주 한민고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채택을 철회했다. 뿐만 아니라 친일‧독재정권을 미화했다며 한국전쟁유족회와 위안부 피해자 등이 법원에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친일‧독재 미화 등 편향적 서술
보수‧진보 간 역사논쟁만 남겨
이번 교학사 사태의 시작은 지난 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8종의 교과서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통과한 후 최종본이 공개되었을 때 진보 역사학자들은 “친일파의 행위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행위를 미화하며 허용될 수 있는 역사 기술의 자율성을 한참 벗어났다” 면서 교과서의 집필 과정과 편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게다가 위키 백과, 지식인 등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이 집필 자료로 활용됐음이 드러나면서 “과연 가장 정확하고 진실한 사실을 전해야 하는 교과서로서의 자격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보수‧진보 진영 간의 역사 논쟁으로까지 번져 정치권까지 연일 교과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지난 달 31일 논평을 내고 “5.16 쿠데타를 미화한 측면이 있고 5.18 민주화 운동에서 군부 발포사실도 누락했다”면서 “역대 대통령의 공과를 보수, 진보 진영에 따라 편향적으로 집필한 부분 때문에 왜곡된 역사 인식을 조장하게 될까 걱정된다”고 주장하며 교육부의 검정 합격 취소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같은 날 구두 논평에서 “교과서는 전문가인 학자들이 학문적 시각을 담아 기술하고 위원회도 최종 통과 시까지 철저히 심의했을 것”이고 말했다. 이어 “어느 한 쪽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로 삼는 것은 또 다른 역사 왜곡이다” 라면서 진보진영에서 가하는 공격의 정도가 지나치다고 비난했다.
이와 같이 논란이 계속되자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8종 전부를 대상으로 수정‧보완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12월 발표된 최종 수정본 에서도 625개가 넘는 오류가 발견됐다는 지적이 나오자 교육부는 교학사 뿐 아니라 이미 최종 승인이 완료 된 8종 모두에게 재차 오류 수정 기회를 줌으로서 ‘교학사 살리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견해의 차이”라며 검정 취소를 거부했고 결국 교학사 교과서는 학교가 선택할 수 있는 8종의 교과서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범국민적 비판 여론에 ‘철회’
이 같은 논란 속에서 2014년 신학기를 앞두고 일선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자 해당 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동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항의 의사를 강경하게 피력했다.

전국 모든 학교가 채택을 철회한 상황에서 ‘교학사, 지학사 교과서 두 가지를 중복 채택해 비교 학습 할 것’이라면서 마지막까지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고수해 왔던 전주 상산고는 학생들과 학부모, 진보단체 등의 쏟아지는 비난에 결국 8일 교과서 채택 철회를 결정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가 철회한 경북 성주고 관계자는 3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승인된 교과서 8종 모두가 교육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쳤기에 각 학교에서 이를 채택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한 학부모님과 학생의 우려가 심각한 만큼 이는 교육 현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철회 이유를 밝혔다.
교육부 “철회 당시 외압 있었다”
이처럼 채택을 결정했던 학교들이 연이어 채택을 철회하자 교육부는 6~7일 양일간 최초 채택했던 20개 학교에 대해 특별 감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교육부는 “시민‧교직 단체 등의 항의 방문이나 학교 주변에서의 시위, 조직적 항의전화 등이 채택 철회의 주요한 요인”이라며 변경 당시 외압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위 학교에서 정상적 절차에 따라 교과서가 선정되었음에도 외부 압력에 의해 번복되는 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단위 학교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채택을 철회한 상산고 재학생 학부모는 8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심어주어야 하는 것이 선생님의 의무임에도 그를 가르치는 선생님조차 겪지 않은 세대이기에 역사 교육을 교과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내 소신과 상관없이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곡된 역사가 눈에 뻔히 보이는데 그걸 쓴다는 자체가 학생이나 학부형이 반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사유가 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왜곡 내용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비롯한 한국전쟁유족회, 강제동원 피해자, 독립운동가 유족, 제주 4.3사건 유족 등은 서울서부지법에 교학사 교과서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며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교육부는 부실‧밀실 검정으로 친일·독재정권을 미화시키고 있는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승인함으로서 교과서 검정 체제를 붕괴시켰다”면서 “교학사 교과서는 교육부의 각종 특혜와 비호로 검정은 통과했을지 몰라도 정작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로부터 사망선고를 받게 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