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다. 알맹이보다 껍데기가 더 크다거나,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 쓰는 말이다. 소비자들은 상품을 구매했는데, 이처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들이 있다면 황당함을 느낀다. 심지어는 속았다는 느낌까지 들게 되기도 한다. 최근 일부 과자 제조업체들이 이처럼 과자 내용물보다 포장을 심하게 부풀려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 과자의 경우 포장상자가 내용물보다 최대 5배나 뻥튀기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낱개 포장, 질소포장, 완충재, 받침접시(트레이) 등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포장의 덩치를 키운 것인데, 푸짐한 포장 크기와 달리 허술한 내용물에 소비자들만 봉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4일, 소비자문제 연구소 컨슈머리서치가 롯데제과, 오리온, 해태제과, 크라운제과 등 4개 제과업체에서 판매하는 과자 20종에 대해 포장 비율을 측정한 결과 무려 85%에 달하는 17개 제품의 내용물 부피가 포장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이 된 20개 제품은 2013년 한 해 동안 소비자들이 과대 포장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제과 4사 제품 중 각 5개씩 선정한 것이다.
◆오리온, 과대포장 톱10 중 4개 차지
측정 조사 제품 중 가장 크게 부풀려진 제품은 오리온의 ‘마켓오 리얼 브라우니’였다. 이 제품은 은박지 낱개 포장과 완충재를 걷어낸 실제 내용물의 부피가 171.8c㎥로, 박스부피1021.2c㎥의 16.8%에 불과했다. 결국 포장 상자의 83.2%는 빈 공간이었고, 포장이 내용물보다 5배나 큰 셈이었다.
다음으로는 롯데제과의 ‘갸또 화이트’가 크게 부풀려진 제품으로 조사됐다. 이 제품 역시 낱개 포장과 트레이 등을 제거하면, 과자가 최종포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3%에 불과했다. 빈공간은 ‘마켓오 리얼 브라우니’에 이어 80.7%나 됐다.
이어 오리온의 ‘리얼초콜릿 클래식 미니’가 빈공간 비율이 77.6%였고, 크라운제과 ‘쿠크다스’도 빈공간 비율이 77.1%나 됐다. 해태제과의 ‘계란과자’는 76.2%, 오리온 ‘참붕어빵’ 72.3%, 크라운 ‘초코하임’ 72%, ‘칙촉’ 7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인 20개 제품 중 80% 이상 빈공간률을 보인 제품이 2개, 70% 이상 빈공간률도 6개 제품이나 됐던 것이다.
이밖에 오리온 ‘고소미’가 69.7%의 빈공간 비율이었고, 롯데 ‘엄마손파이’ 69%, 크라운제과 ‘버터와플’ 68.6%, 해태제과 ‘오예스’ 65.2%, 크라운제과 ‘국희땅콩샌드’ 63.9%, 해태제과 ‘버터링’ 63%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오리온의 경우 ‘마켓오 리얼 브라우니’라는 제품이 단일 제품 중 가장 부풀려졌다는 오명을 얻게 된 것과 아울러, 과대포장 톱10 중 4개나 차지해 과자 제조업체들 중 과대포장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내용물이 포장 부피의 절반 이하인 빈공간 비율 50% 이상 제품은 해태제과 ‘후렌치파이’(59.4%), 오리온 ‘초코칩쿠키’(58.5%), 롯데제과 ‘하비스트’(56.9%) 등 3개 제품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과대포장을 막기 위해 환경부가 제정한 ‘제품의 포장 재질, 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른 비율로 계산하면 빈 공간 비율은 대부분 20%를 넘지 않았다. 20%를 넘는 제품은 크라운제과 ‘쿠크다스’ 53.5%와 ‘초코하임’ 34.6%, ‘연양갱’ 26.5%, ‘버터와플’ 21.4%, 롯데제과 ‘칙촉’ 33.7% 등 5종에 불과했다.
이와 관련, 컨슈머리서치는 “이처럼 실제 내용물에 대비한 포장 비율과 법 규정에 따른 포장 비율이 다른 것은 환경부 규칙이 포장 비율을 측정할 때 실제 내용물 기준이 아닌, 1차 속 포장과 최종 상자 포장의 비율만을 따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제품의 부스러짐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과도한 완충재, 트레이 등도 1차 포장에 포함시켜 빈 공간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과대포장을 규제하는 당국의 규정이 제품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예외조항을 너무 많이 둬 되레 업체들의 ‘면죄부’로 전락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트레이와 완충재가 들어가는 상자의 경우 측정 시 가로 세로 높이 모두 실제보다 10mm의 여유 공간을 더 부여하도록 하고 있어 되레 과대포장의 빌미가 되고 있다. 1차 포장을 크게 부풀리고 완충재 트레이 등을 많이 넣을 경우 2차 포장과의 비율이 좁혀져 법적 규정을 피해 갈 수 있는 셈이다.
컨슈머리서치는 “불필요한 포장을 억제해 소비자에 대한 눈속임도 막고 자원도 절약하기 위해 제정한 규칙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기준으로 측정할 경우 일부 제품의 경우 1차 포장이 아주 과도해서 내용물이 포장부피보다 더 큰 어처구니없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1차 포장의 부피를 측정할 때 구겨지거나 접혀진 부분을 펴서 최대 길이, 최대 폭으로 재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리온 ‘마켓오 리얼 브라우니’, ‘리얼초콜릿 클래식 미니’, ‘참붕어빵’, ‘초코칩 쿠키’, 롯데제과 ‘엄마손 파이’, ‘빠다코코낫’, 해태제과 ‘오예스’, ‘버터링’, ‘후렌치파이’, 크라운제과 ‘국희 땅콩샌드’ 등은 내용물 체적이 포장 체적을 최대 26.5%까지 넘어서고 있다. 1차 포장이 구겨지고 접힌 채 2차 상자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자 제조사들은 하나 같이 “법적 기준에 따르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컨슈머리서치 최현숙 대표는 “제조업체들이 내용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포장을 뻥튀기해 소비자들을 눈속임하는 사례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포장 횟수와 포장 측정 방식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