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새누리당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장 중요한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꼽히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갈 ‘경쟁력 있는 후보’를 확보하지 못해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이 때문에 야권의 표가 갈리도록 민주당-안철수 신당 사이의 갈등을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오는 6월 4일 치를 예정인 지방선거의 가장 큰 특징으로 “현재 정부나 여당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상당히 높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5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장은 여당 쪽 후보가 꼭 당선된다는 보장이 희박한 편”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여당 서울시장 후보군은 ‘안갯속’?
실제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아도 지방선거 여당 후보군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당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 특히 서울시장직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당 입장에서는 무상급식 사태 이후 돌연 사퇴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이후 서울을 ‘탈환’할 기회를 좀처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일 <조선일보>는 자체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 선두를 굳건히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여론조사에서 박원순 시장은 양자 대결(민주당과 안철수신당 등 야권이 단일화 후보를 내는 경우)이나 3자 대결(야권이 단일화 하지 않는 경우) 모두에서 변함없이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지방선거가 앞으로 5개월이나 남았고 이 기간 동안 변수는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뒤 “이 여론조사를 통해 두 가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 평론가는 “우선 박원순 시장이 다소 진보적인 스탠스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민의 지지를 골고루 받고 있다”며 “이는 박 시장이 자칫 시민들의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이념적 수사는 최대한 자제한 채 ‘일 열심히 하는 시장’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킨 데 성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번째 의미로는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자신 있게 나설만한 ‘인물’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2인자’를 별로 탐탁치 않아하는 박근혜 대통령 스타일에 새누리당이 발을 맞추다보니, 존재감을 뚜렷하게 내세울 수 있는 인물군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는 진단이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는 정몽준 의원이나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서울시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본인들이 출마를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나마 비교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편으로 평가받는 이들이 모두 ‘친박’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 새누리당이 처한 난감한 입장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의 서울시장 후보 인물난은 그냥 단순히 보아 넘기기 힘든 징후로 볼 수도 있다”며 “이런 상황은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내에서 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잇는 거물 주자의 부재를 입증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진 차출론’ 시달리는 정몽준 의원
문제는 서울시장 후보로 꼽히는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막상 실제로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김황식 전 총리는 2월부터 4월 중순까지 3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할 예정으로 전해져 새누리당을 크게 술렁이게 했다.
현재 김황식 전 총리는 미국 UC버클리 대학교 로스쿨에 신설되는 한국법센터의 수석고문직을 제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김 전 총리는 한국법센터 개소식이 열리는 4월 중순 때까지는 미국에 머무를 계획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황식 전 총리는 UC버클리 대학교 측과 사전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 상황이다. 김 전 총리는 오는 1월 20일 경 귀국했다가 2월 10일을 전후로 다시 미국으로 출국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황식 전 총리의 향후 스케줄을 보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김 전 총리가 이번에 잠시 귀국했을 때 출마 여부에 대한 입장을 최종적으로 밝힐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누리당은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 출마 선언을 하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다. 현재 정 의원은 불출마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거부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내 경선’이지 ‘추대’로 방침이 바뀔 경우 출마를 굳이 마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이는 정 의원이 줄곧 대선주자로 자리 매김 되어 온 만큼 서울시장이라는 선거판에 ‘예우’를 갖춰달라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는 정몽준 의원에게 출마 결심을 촉구하는 분위기도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5일 홍문종 사무총장은 정 의원을 염두에 둔 듯 “대권을 위해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야 한다. 불출마 선언은 몸값 높이기 아니냐”며 이른바 ‘중진 차출론’을 거론했다가 정 의원 측의 반발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몽준 의원 또한 보는 시각에 따라 애매하게 해석될 수도 있는 태도를 비추고 있다. 실제로 정몽준 의원은 지난 1월 14일 서울 동작구청에서 열린 동작구 신년인사회에서 박원순 시장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박원순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정몽준 의원은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다. 이런 멋진 분하고 경쟁을 했으면 좋겠다”며 “정 의원이 나보다 확실히 잘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축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몽준 의원도 인사말을 통해 응수하고 나섰다. 정 의원은 “사실 나는 서울시장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박 시장이 먼저 꺼내서 말하겠다”며 “축구 하나는 내가 박 시장보다 잘한다고 했는데 내가 왜 축구 하나만 잘하겠느냐. 내가 선거 안 나가겠다고 하니까 혹시 박 시장이 너무 안심하는 거 아니냐. 안심하지 말고 더 열심히 일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윤곽 잡혀가는 경기도지사 후보군
경기도지사 선거의 경우도 서울시장 못지않게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현재 업무 능력 면에서 높은 신뢰를 얻고 있는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가 “이번 재선을 끝으로 다음 지방선거에는 절대 3선 도전을 하지 않겠다”고 전격 선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문수 도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이 경기도지사에서 물러나 새누리당으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이에 대해 정계에서는 “김 지사가 차기 대선 주자의 뜻이 확고한 만큼 더 이상 도지사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고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김문수 도지사라는 ‘거물’이 더 이상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여당은 지금까지의 프리미엄에서 벗어나 처음부터 판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이 평론가는 “현재 민주당에서는 김진표·원혜영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 당내 경선을 염두에 두고 벌써부터 주도권 경쟁을 치열하게 시작하고 있다”며 “이들 의원에 대한 경기도민의 여론이 상당히 우호적인만큼, 새누리당에서는 이에 맞서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를 내보내지 않는 한 상당히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새누리당 내에서는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는 의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월 16일에는 4선의 정병국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날 정병국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을 따라가던 경기도의 패러다임을 바꿔 대한민국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앞서 지난 1월 5일에는 역시 4선인 원유철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원 의원은 이날 오후 경기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의 경기도당 위원장으로서 8년 가까이 경기도민과 함께 하며 누구보다 경기도를 잘 알고 있다”며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은 사실상 정병국 의원과 원유철 의원의 ‘2파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는 있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후보군이 거론되지 않고 있는 서울시장 후보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한편 상황이 이렇게 복잡해지자 여당 일각에서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야권 후보들이 ‘단일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냐”며 이른바 ‘어부지리’를 은근히 바라는 분위기도 포착되고 있다.
이 같은 ‘어부지리론’은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안이다. 한 정계 관계자는 “안철수신당 측은 지방선거 전에 창당하지 못하더라도 후보는 낸다는 방침이 확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상황이 이렇게 될 경우 선거는 크게 혼전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표가 갈라지는 것은 대부분 야당 후보들이지 여당 후보는 오히려 이득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위험 가능성을 의식한 듯 지난 1월 13일 오전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신년 기자회견 후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6·4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과의 관계설정에 대해 ‘경쟁적 동지관계’라고 규정한 다음 “양측의 경쟁이 결과적으로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최근 민주당 신임 사무총장에 오른 노웅래 의원도 지방선거 야권연대와 관련해 지난 1월 16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민심이 정부·여당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구도를 허용해선 안 된다”며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야권연대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