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藍丁) 박노수(朴魯壽)展 '노 저어 홀로 가듯이'
남정(藍丁) 박노수(朴魯壽)展 '노 저어 홀로 가듯이'
  • 남지연
  • 승인 2005.12.2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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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담긴 격조의 그림속으로
한국화단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이자 평생을 독자적인 화업의 길을 걸어온 남정(藍丁) 박노수(朴魯壽1927-)의 작품 52점이 이번에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되었다. 한평생을 고독하게 정진해온 자신의 작업을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환원한다는 의미로 작가 자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이번 기증에는 60년대서부터 2000년도 최근작업에 이르기까지 남정의 작업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양질의 작품들이 대거 포함되어 그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이 전시는 기증된 작품 52점과 소장 작품 3점을 한데 모은 기획전으로, 간결하고 직관적인 운필과 채색을 통해 격조 높은 화폭의 세계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되는 작가의 작품세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삶의 의미와 그 고매한 가치를 되새기게 함으로써 요즘의 세태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흔히 그의 작업을 여운이 담긴 격조의 그림으로 칭하고 있는데, 이 여운은 집약적이고 탄력적인 필법과 다양한 뉘앙스의 묵법에서 기인한다. 남정의 세계를 ‘북화적인 준열함과 남화적인 색채의 감각적 정서를 절충한 새로운 경지의 개척’, ‘간결하고 직관적인 운필과 채색으로 이끈 격조의 세계’로 평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그의 그림에서 사용되는 대범한 대각선 구도와 화면 밖으로 걸쳐있는 사물들의 생략된 위치, 그리고 선명한 색채로 말미암은 그 현대적 조형미로 인해 한국화의 전형적인 구도의 틀을 벗어던진 채 관람객들에게 사물 너머의 영역으로의 사유를 이끌고 있어 더욱더 인상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들 속엔 ‘시서화 일체’라는 문인화적 감수성이 항상 내포되어 있어, 남정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초기에 추상적으로 형상화된 인물 표현과 대담한 구도와 독특한 준법을 보여주면서 산수화로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했으며, 이후 고고하고 기개 높은 준발과 분방한 필세가 특징적이며, 대각구도를 바탕으로 한 청색조의 색채와 빠른 선조가 높은 특유의 화격을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날 우리가 남정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감지하고 있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선, 투명성을 지닌 채색, 자유로운 형태를 띤 주관적인 추상화를 이루어내면서 자신의 길에 더욱더 선명한 족적을 드리우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번 전시 남정의 작품세계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돕고자 애니메이션 작업이 별도로 제작되었다. 전시의 프롤로그에 위치하는 이 작업은 남정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풍경 등을 모티브 삼아 애니메이션이라는 현대 테크놀러지의 기술적 집약성과 동양화의 감성을 한데 녹여낸 것으로, 전시 형식상으로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가 실현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젊은 애니메이션 디렉터 우창환의 열정에 힘입은 바 크다. ‘뭉이’‘초롱이’와 같은 토종 캐릭터를 탄생시킨 아티스트이자 아디다스(독일)나 알파로메오(영국), 미쯔비시 자동차(미국)와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현지 광고용 CG 작업으로 뉴욕 광고대상이나 영국 BAF Commercial Film Finalist에 연거푸 올라 주목을 받고 있는 애니메이션 디렉터이다. 우리에게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조흥은행 광고로 잘 알려져 있다. 일부 제작비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작업의 다양한 전시형식과 순수예술과의 크로스 오버에 그 뜻을 같이하여 선뜻 이번 전시에 맞는 작업을 제작해주었다. 한국화에 대한 새로운 감성을 관객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 전시가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작가의 작품세계 및 그 독자성을 잘 알리어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봐주기를 희망하는 것은 그것이 평생을 정진해온 작품을 기증한 한 원로 작가의 뜻을 기리는 동시에 기증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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