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당시 3천 명 이끌고 후금과 맞서 싸워
국립 전쟁기념관이 2014년 2월의 호국인물을 정묘호란 당시 안주성에서 항전하다 장렬히 순국한 남이흥 장군으로 선정했다.
남이흥 장군은 1576년 나주목사 남유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본관은 의령, 자는 사호(士豪), 호는 성은(城隱)이다.
1598년 정유재란 당시 부친이 이순신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싸우다 전사한 것을 계기로 글공부를 포기하고 활쏘기, 말타기에 전념해 27세이던 1602년에 무과해 급제한 이후 선진관, 포도대장, 경상병마절도사, 안주목사, 평안도 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했다.
1627년에는 평안병마절도사 겸 영변부사로 재직 중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3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안주성에 쳐들어온 3만 6천여 명의 후금 군대와 맞서 싸우다 미리 준비한 화약상자에 불을 붙여 적군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장군이 전사하자 인조임금은 입었던 옷을 관 위에 덮어주며 애도하고, 대광보국승록대부 의정부 좌의정에 증직하였으며, 정1품 의춘부원군에 추봉된 후 평안도 안주의 충민사에 제향되었다가 숙종때에는 당진의 충장사와 남씨 충신정려를 내려 충절의 표본으로 삼았다.
당진시와 남이흥장군 기념사업회는 남이흥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매년 10월에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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