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이 뭐 중요한가, 국가 정체성부터 찾고 보자?
사학법 개정. 어느 누가 교육관련 법안이 민생을 이처럼 위협하는 눈덩이가 되어버릴지 예측이나 할 수 있었을까. 교육의 자율권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과 자율권을 주었더니 온통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져버려 손을 대야만 한다는 한나라당과 여당의 입장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 하고, 국회 파행이라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또 다시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언뜻 보게 되면, 집 나간 사람이 절대 불리할 것 같아 보이지만 상황은 꼭 그렇지만도 않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여당은 여당대로 새해 예산안을 제 1야당이 없는 상황에서 단독 국회를 열어 처리해야한다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어찌해야 하나 고심하고 있는 눈치다. 더욱이 경찰청장 사퇴문제와 맞물려 소수 야당마저도 여당과 등을 돌리고 있어, 국회 파행은 장기화 조짐이 현실로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나간 아내만 문제인가?
그림을 그려보자면, 이렇다. 가정의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겨주었지만, 아내는 집안 살림은 도외시 한 채 가계 수입을 엉뚱한 곳에 쓰며, 딴 주머니를 차고 있다. 참다못한 남편은 경제권을 빼앗아 버렸고, 남편의 그 같은 결정에 토라진 아내는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가정의 경제권을 다시 돌려주기 전에는 집에 안 들어간다”라고 말하며 말이다.
아내가 집을 나간 것만도 문제는 문제다. 가정을 버려두고 경제권 하나만을 가지고 남편도, 자식들도 모두 버리고 나가 버리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당장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하는 것은 물론, 엄마의 손길이 그리운데 아내는 계속 고집만 피우고 자신의 뜻을 들어주기 전에는 애들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고 한다. 더욱이 아내는 애들보다 경제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아내만큼이나 고집이 센 남편 역시 할 말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좋은 말로 할 때, 집에 들어와. 말로 해서 안 들어오면 할 수 없지. 아쉽기는 하지만, 당신 없이 그냥 아이들과 단란하게 살 수밖에…”
결국, 이제부터는 경제권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 고집이 더 센지, 누구 자존심이 더 센지가 문제인 것이다. 현실에 대한 판단을 하자면, 부부 싸움에 아이들만 망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집 나간 아내만을 탓할 수 없게 한다. 달랠 줄도 알고, 아량을 베풀 줄도 알아야 하는 남편이 똑같이 맞서고 있는 모습은 “둘 다 똑같다”는 주위의 비난을 면치 못하게 하는 것이다. 자식들의 현실적인 문제부터 먼저 챙기고, 부부싸움은 좀 더 있다가 하더라도 늦지 않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 하는 것은 비난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제 그만하자” 자성의 목소리 커
한나라당의 사학법 장외투쟁이 장기화 되면서 민생은 또 다시 뒷전이 되어버렸다. 여당의 사학법 날치기 통과를 비난하며, 대통령의 거부권을 요구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회를 떠나 장외에서 투쟁을 강행하고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국회에 등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 보다, 새해 예산을 처리하지 못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배정받지 못 하는 형국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공기업, 민간업체들까지 줄줄이 사학법의 여풍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될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난의 화살은 점점 더 한나라당으로 향하고 있다. 그것은 비단 당 외부의 시선만이 아닌 당 내부의 시선이기도 하다. “사학법은 사학법이고, 민생은 민생이다”라는 것이다. 사학법의 개정안이 옳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 한나라당은 국회로 다시 복귀해서 민생부터 해결하고, 다시 사학법에 대한 투쟁을 하더라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사학법이 거부되어야 한다는 당의 입장과 같이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상황으로 일을 몰고 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김덕룡 의원의 경우 “사학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당의 입장과 뜻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일을 이렇게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원내외 병행 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현 당 지도부의 무리한 장외 투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또한 이명박 서울시장 역시 사학법을 국가정체성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이는 얼마 전 이규택 사학법무효화투쟁본부장의 “한나라당은 민생보다 더 중요한 국가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일부 등원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계속 투쟁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발언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비판한 것으로 해석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이 원외투쟁을 통해 사학법의 본질을 많이 알렸고, 민심을 얻을 만큼 얻었다. 이제 민생을 적극 책임진다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어야 한다”며 한나라당의 조속한 등원을 촉구하기도 했다.
◆꼬리를 내리느냐, 버티느냐 그것이 문제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 여론이 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장외투쟁의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7일 대구에서 네 번째 대규모 장외집회를 가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사학법을 막지 못하면 야당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며, 끝까지 장외 투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못 박기도 했다.
그 뿐 아니라, 같은 날 강재섭 원내대표 역시도 “노무현 정권이 사립학교법 개정을 원천 무효화하든지, 2월 국회에서 고치겠다는 약속을 안 하면 절대 국회에 못 들어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의 이 같이 강경한 발언은 한나라당의 일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28일 대전에서의 투쟁을 비롯하여 새해 1월 10일에는 수원에서 집회를 하겠다는 일정을 잡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정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결국, 대통령이 사학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현재로서는 최소한 수원 집회일 이후까지는 장외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는데 있다.
더욱이 난처한 상황은 당내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나, 장외 투쟁에 반대하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의원들조차도 누구하나 국회로 들어가자는 말을 꺼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의 어른들 입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미 너무 많이 걸어 나왔다는 것을 내심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답이 나오지 않는 투쟁이라는 것을 모두가 속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을 모를 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뾰족한 묘책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투쟁의 수위를 더 높일 만한 마땅한 방법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더 높여봐야 당에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때 아닌 고집을 부리며, 본회의에는 거부권이 발표되기 전까지 등원하지도 않을 것이며, 저지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進退兩難(진퇴양난)’ 속에 빠져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될지 미리부터 예측을 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사학법으로 인해 정치적 운명을 걸어야 할지도 모를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학법 = 색깔 논쟁?
‘사학법’, ‘새해 예산안’ 등 겉으로 굵직하게 드러난 문제들은 이 두 가지 정도로만 보여 진다. 그러나 굵직한 것들에 가려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색깔 논쟁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이규택 본부장이 거론한 “국가 정체성”문제는 이전부터 논란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한나라당의 장외 투쟁이 단순한 여당과의 자존심싸움 정도로만 읽혀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교육권의 장악을 누가 하느냐’하는 문제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권을 극좌파 성향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시선에서 사학법 개정은, 정부가 소수 사립학교들이 일으킨 문제들을 확대하여 전체 교권을 장악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아직 정체성이나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미성숙한 인격체들을 극좌파 성향의 정부가 장악하여, 이 나라의 앞날을 온통 붉게 만들려고 하는 음모다”라고 하며 사학법 개정에 얽혀 있는 진한 색깔 논쟁의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서, 한나라당이 장외 투쟁을 하게 된 배경에는 “노무현 정권의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이것만큼 중요한 사안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눈앞의 현실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충분히 싹부터 잘라내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 세력의 전형적 인물인 한 인사는 “교육이 아무리 百年大計(백년대계)라고는 하지만, 아직 가치관이나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빠른 적응력을 지니고 있는 젊은이들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이라면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 안에 극좌파 성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며 현 정부가 교육권을 장악하는데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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