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청장과 노 대통령 “짜고 친 고스톱”의 최후
許청장과 노 대통령 “짜고 친 고스톱”의 최후
  • 정흥진
  • 승인 2005.12.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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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막아주다가는 노 대통령까지 다칠 뻔 했다
시위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하여 그동안 경찰 내부적으로 각성은 하겠지만, 청장으로서 사퇴할 의사는 없다고 밝혀온 허준영 경찰청장이 여론에 밀려 결국 자진 퇴임을 결정하게 되었다. 자칫 잘못하면, 성난 여론의 불똥으로 말미암아 구설수에 오를지도 모를 분위기를 감지한 탓인지 청와대는 허 창장이 제출한 사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허 청장이 제출한 사표가 행자부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청와대로 올라왔고, 절차에 따라 수리됐다”고 하며,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눈에 보이도록 ‘허 청장’ 감싸기에 앞장서 있던 노 대통령조차도 더 이상은 손을 쓸래야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당사자보다 먼저 나서서 사과문을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감싸기’의 시작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 시위농민 사망사건이 일어난 날도 허 청장은 조용했고, 노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날도 허 청장은 조용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번 사건은 누구보다 먼저 허 청장 스스로가 나서서 사태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 청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고, 오히려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하는 기이한 풍경을 연출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상황을 보기도 드물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 맞다. 여론의 비난이 청장에게 향하기 전에 대통령이 먼저 선수를 쳐서 시선을 돌려보려 했던 의도가 깔려있었다는 것은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여론을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은 오산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오산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간파한 여론의 분노는 더욱 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고, “과잉진압은 각성을 하겠지만, 청장직을 사퇴할 의사는 없다”며 “사임을 하고, 말고는 내 뜻이다”라는 발언을 한 허 청장에 대한 비난은 그야말로 몰매 수준이었다. 결국 진솔한 마음으로 정중한 사과를 했다면, 성난 여론을 달래 볼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얄팍하게 부린 꾀로 인하여 허 청장은 오히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뿌려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대통령이 더 얄미워 경찰청장이 우둔해 보인다면, 대통령은 얄미워 보인다. 대통령 역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뒤에서든, 앞에서든 조장은 다 해 놓고 생각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자 말 한 마디 없이 뒤로 쏙 빠져버렸다”는 비난 또한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각본을 짠 것처럼 허 청장보다 서둘러 직접 대국민사과문까지 발표를 한 대통령이 사표를 받자마자 수리를 했다는 것은 어쩐지 개운치가 않다. 상식적이지 못한 발언을 한 허 청장에 대해 여론의 비난이 집중적으로 쏠리며 상황이 반전되자, 대통령은 슬그머니 발을 빼버렸다. 대통령은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경찰청장보다 앞서서 사과문을 발표하며 인권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온 천하에 천명을 했기 때문이다. 사태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허 청장을 보호하려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는지 근래 대통령의 목소리는 들어보려 해도 들을 수가 없다. 어차피 허 청장이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판단을 했다면, 더 이상 껴들어봐야 말만 많아질 뿐이라는 계산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힘이 없는 것인가, 전략인가 지난 27일 대국민사과문 발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허 청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하는 판단을 하기 전에, 대통령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상 경찰청장에 대해서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며, 문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었다. 또한 청장이 스스로 자진 사퇴를 하면 수리할 의사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대통령이 내가 해석하기로는 문책인사를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다음에 나머지는 정치적인 문제인데, 이것은 대통령이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본인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본인이 어떤 판단을 했을 때 대통령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은 이미 본인의 판단이 아니고 대통령의 판단을 말하는 셈이 돼서 대통령이 그와 같은 권한을 갖지 않게 한 제도의 취지에 맞는지 그것도 다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고 하며 평소 말해오던 힘없는 대통령의 모습을 부각시켜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대통령의 발언이나 모습 또한 전략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힘없는 대통령의 모습을 내세움으로써, 중요한 순간에는 빠져나올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략적인 측면으로 해석하는 것 뿐 아니라, 여론의 경우에는 “대통령의 이 같이 힘없는 모습은 정책을 결정할 때에도 반영되는 것 같다”고 하며 우유부단한 대통령의 모습을 비난하기도 했다. ◆노무현은 ‘달변가’ 한편, 경찰의 과잉진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폭력적 시위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폭력시위 문제에 관해서는 그것이 우발적으로가 아니고 아예 처음부터 준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들을 자주 본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정당성에 대해서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 사회단체의 책임의식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가 없다. 참으로 이와 같은 일이 공공연히 벌어지도록 우리가 모두 결과적으로 용납한 결과에 대해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정부도 또한 그와 같은 사태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 책임을 제대로 하는 데에는 또한 우리 시민사회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와 같은 폭력시위가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자회견장에는 사과를 하기 위해 나온 것이지, 폭력시위 부분을 특별히 강조해서 대책을 얘기하러 온 것이 아니다. 사과 회견의 본질이 이동될 수도 있고 해서 그냥 사안이 안타깝다는 수준 정도로만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연스럽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대통령은 말 잘하고 글 잘 쓴다는 기자들의 머리 위에 올라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단면을 엿볼 수도 있게 했다. ◆끝까지 물러날 사안은 아니다 결국 30일 오전 허 청장은 경찰청을 떠났다. 퇴임하면서도 편치 않은 속내를 드러낸 허 청장은 퇴임사에서 “이번 사태의 원인은 불법시위이기 때문에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허 청장은 이날 "연말까지 예산안 처리 등 급박한 정치현안을 고려, 평소 국가경영에 동참하는 치안을 주창했던 저로서는 통치에 부담 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며, 발표문을 통해 사퇴의 변을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에는 변함없다"고 소신을 유지하기도 했다. 한편, 수사권 조정문제와 관련해 허 청장은 "경찰과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영시스템상 견제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성역을 없애자는 것이므로 국민 여러분의 각별한 관심을 부탁 드린다"며 "새해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국민의 고막을 찢는 일이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 청장은 또 "평화적 집회시위 관리를 위한 대책마련에 있어 보강이나 관련법규의 강화는 오히려 과격시위를 부추길 수 있다. 결국은 문화다. 거국적으로 뜻을 모아 평화적 집시 문화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허 청장은 "성난 농민들의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 중 우발적으로 발생한 불상사지만 결과적으로 농민 두 분이 돌아가신 데 대해 비통하게 생각한다"며 "병상에 있는 전ㆍ의경, 농민의 쾌유를 빈다"고 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임 발표문은 30일 새벽 허 청장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퇴임식에 앞서 허 청장은 아침 출근길에 취재진의 거취에 대한 질문에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고 하며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고, “언론에 기사가 제대로 나가지 않아 (더) 말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오전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일회의를 주재한 허 청장은 이어 자신의 신년메시지가 담긴 영상물 시연회에 참석했지만, 사퇴를 밝힌 뒤 경찰청사 9층 청장실에 머무르며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외무고시 출신 1호로 1984년 경찰에 입문한 허 청장은 서울경찰청장을 역임한 뒤 올해 1월 경찰인사와 관련해 사표를 낸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경찰총수자리에 올랐다. 허 청장의 사표가 수리됨으로써, 2003년 12월 도입된 경찰청장 임기제는 최기문 전 청장에 이어 연달아 지켜지지 않는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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