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은 무엇일까? 가족 간의 사랑과 건강, 그리고 풍족한 재화 등 모든 것들이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내 삶의 주변 환경이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호화스럽지 않은 소박한 삶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주변 환경으로부터 생존의 위협만큼은 느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론’의 핵심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 도심 한 복판인 마포구 일대에 지하 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어, 지역 주민들이 극심한 불안에 떨고 있다. 도심 지하에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사업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와 한국중부발전은 철저한 안전성 검증조차 하지 않고 졸속으로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는데 있다. 마포구 주민들이 새파랗게 겁에 질려 지하화력발전소 건설 반대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게다가, 주사용 연료가 가스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전문가들은 만에 하나라도 지하발전소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해 폭발할 경우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다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는 그동안 다양한 가스폭발사고로 인해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입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굳이 다시 상기시키지 않더라도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하고 끔찍했던 사고의 현장들이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위험천만한 지하발전소를 도심 한 복판에 건설하겠다는 발상을 누가한 것인지, 엄중히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또 한 가지, 이 사업이 얼마나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여야를 아우른 정치인들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 크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17대 대선 당시 ‘당인리 발전소 폐쇄’를 100대 공약으로 발표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박홍섭 마포구청장 역시 지방선거에서 당인리 발전소 이전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도, 이 지역 자치단체장인 박홍섭 구청장도 당선 뒤 손바닥 뒤집듯 공약을 뒤집어버렸다.
대통령후보부터 너도나도 폐쇄를 공약으로 내걸었을 만큼 위험한 시설을 약속대로 폐쇄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위험하게 지하에 건설하려 한다니 기가 막힌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 지자체 단체장 등의 이전공약을 의심 없이 믿었던 주민들의 상실감은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또한 이 같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원순 시장은 지역주민들이 발전소 지하건설 인가에 항의하자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했다. 알면서 모른다고 했다면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이처럼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차대한 사업에 대해 진실로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언론을 통해 보여 지는 서울시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모습과 달리, 이처럼 위험천만한 사업 계획에 대해 불안해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화력발전소 건설은 이처럼 안전성에서만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천문학적인 막대한 예산이 투입됨으로써, 심각한 국고 낭비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최소 1조8천억원에서 최대 5조원까지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가재정 악화 및 지방재정 파탄 등 힘겨운 시기에 효용성도 크지 않은 발전소 건설에 5조원을 투입한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실제로, 당인리 서울화력발전소는 최근 5년 동안 노후 시설로 전기 발전을 멈춘 상태이다. 이미 삼척 신규 발전소 건립으로 충분한 전기 생산이 이뤄지고 있어, 서울 도심 한복판에 국고 5조원을 낭비하면서 서울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건설하는 지하가스 발전소 건설은 누가 봐도 무모한 ‘보여주기식 행정’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울시민,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의 모두의 목숨을 담보로 한 서울시의 무책임한 지하발전소 건설 계획은 전면 철회돼야 할 것이다. 아울러, 껍데기만 남겨 놓은 채 도심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화력발전소 역시 폐쇄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공간에 ‘에너지 과학 공원’ 건립을 제안한다. 당인리 서울화력발전소는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초의 화력 발전소라는 역사적 보존가치를 가지고 있다. 만일, 발전소 이전이 불가능하다면 문화지구가 아닌 에너지과학 공원으로 조성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당인리 발전소를 문화공원으로 추진할 경우, 종교단체나 문화단체 등 이익 관변단체들만을 위한 지역 개발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 주민들이 결코 이에 찬성할 리 만무하며,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적 근거도 없는 문화지구로 지정하기 보다는 한국 최초의 발전소라는 역사성을 바탕으로 에너지과학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21세기는 신 자원 에너지 개발 및 환경 관련 사업이 세계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에 걸맞게 공원의 테마를 ‘에너지’로 잡아 발전소를 최대한 활용한다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부터 어린 아이들의 체험 교육에 이르기까지 지역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에너지과학 공원이 설립되면, 주변 지역도 미개발 지역에서 명품 도시로 바뀌게 되므로 지역 주민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다만, 에너지과학 공원 설립시 지역 주민이 계획안 수립에 참여하는 등 지역민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지역민들과 진정한 소통을 통해 합리적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국가를 위해서도, 지역주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박강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