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복잡한 절차 없이 휴대폰만으로도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소액결제 현금화 대출’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소액결제’는 단순히 주민등록번호와 휴대폰 번호, 승인번호만 입력하면 손쉽게 결제가 된다는 점에서 휴대폰 사용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이마저도 사기로 악용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소액결제 현금화를 일컫는 일명 ‘휴대폰 깡’ 사기 피해자들은 ‘스미싱’, ‘파밍’ 등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는 피해로 인정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상호간의 협의가 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책임소재가 모호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법률적 구제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형사법상 정보통신망법․대부업법 위반 행위로 인정돼 함께 처벌받을 수도 있어 피해자들의 한숨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피해 30만원 미만 소액…신고율 낮아
대부업․정보통신법 위반…형사처벌 대상
지난 1월, 대학생 A씨는 새로 사귄 여자친구의 생일을 앞두고 선물을 살 돈이 필요했지만 용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여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던 A씨는 친구들에게 손을 벌릴까도 생각했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친구들이 돈을 빌려줄 리는 없을 터. 고민하던 A씨는 인터넷에 ‘대출’을 검색했다. 대부분 신용과 담보를 요구했지만 아직 취업 전인 그에게 그런 조건들이 적합할리 없었고 막막했던 그의 눈에 ‘휴대폰으로 소액결제를 해 주면 현금으로 돌려준다’는 T 업체의 광고글이 들어왔다.
A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쓰여진 연락처로 전화를 했고 대출업자는 “휴대폰으로 소액결제를 해 주면 해당 금액의 30%를 수수료로 제한 나머지 70%를 현금화 시켜 5분 안에 입금시켜주겠다”고 말했다. 이내 30만원이 휴대폰으로 결제되었다는 문자를 받은 A씨는 업자에게 결제 사실을 알린 후 입금을 요구했으나 5분은커녕 1시간이 지나도 입금은 되지 않았다. 뒤늦게 사기라는 것을 깨달은 A씨는 통신사에 소액결제 취소를 요청했으나 통신사에서는 “파밍‧스미싱과 달리 고객의 의사가 있던 것이므로 사실상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에 사기라는 것을 깨달은 A씨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으나 주변 친구들이 ‘소액결제 현금화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며 만류했다.
결국 A씨는 다음달 청구된 30만원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급전 필요한 20대 피해자 대부분
현재 A씨와 같은 수법으로 T 업체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지난 1월부터 현재까지 약 700여 명이며, 피해금액은 2억 8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 피해자 중 실제로 소송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인원은 약 80명이 채 되지 않는 현실이다.

큰 금액이 아니고 대부분이 취업이나 학업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30만원’은 그냥 포기하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단체 소송을 계획 중인 피해자 모임은 “한 사람이라도 더 모여야 하지 않겠느냐”며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피해자 모임의 대표자인 여모(28‧남)씨는 10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일반 대출처럼 절차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금액이 적다 보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너도 나도 시도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 씨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8~90%는 대부분 20대 청년층으로, 최근 지속되는 실업난에 당장 생활비나 용돈이 급해 이같은 사기에 휘말린 것으로 드러났다.
여 씨는 “갑자기 불어난 통신요금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통신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돈이 급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탓도 있지만 취업도 하기 전에 이렇게 되고 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상 피해를 당했다며 모임에 참여한 인원은 500명이 넘는데 실제로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피해자는 20%도 안 된다”면서 “한 명이라도 더 모여야 대대적으로 소송을 진행시킬 수 있는데 우리 같은 피해자들이 또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을 합쳐야 할 때”라며 피해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모(24‧남)씨 역시 10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잠깐 용돈 벌이를 하려다가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러 일으켰다”며 “돈이 급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기꾼들의 행태에 씁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기꾼들에게는 범행의 표적이겠지만 우리는 오죽했으면 9만원이라는 수수료를 부담하려고 하면서까지 돈을 구하려 했겠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범인 검거 되더라도 피해 회복 어려워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다고 하더라도 범인들이 대포폰 여러대를 조직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사실상 범인 파악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범인들이 검거된다고 해도 형사처벌은 가능하더라도 이들이 입은 피해금에 대해서는 사실상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

법무법인 <세정>의 홍상균 변호사는 10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범인에게 전자상거래법 위반․대부업법 위반․정보통신망법 위반․사기․금융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해 형사처벌은 가능할 수 있지만 사실상 피해금에 대한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 변호사는 “결제 사실을 몰랐더라면 사이버 피해구제 센터나 해당 통신사에 의뢰해 결제를 취소할 수도 있지만 결제 사실 자체를 이미 알고 있는 이상 이는 개인 과실에 해당해 결제 취소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금감원 소비자보호처 관계자 역시 10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일명 ‘휴대폰 깡’은 이용자에게 물품을 구매하도록 한 뒤 이를 할인 매입하는 행위를 금지한 정보통신망법 위반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대부행위이기 때문에 대부업법상 이자율 등을 위반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팀 관계자 또한 10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스마트폰 소액결제와 관련한 신종 사기수법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면서 “휴대폰 소액결제는 매우 간단한 절차로 급전이 필요한 청년층과 서민들을 범죄의 표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액결제를 이용해 현금화 시키는 그 자체로도 불법이며, 약속된 돈을 입금받았다고 해도 이는 명백한 대부업법 위반으로 형사법상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인에게는 적은 액수의 돈이라고 생각이 들어 신고율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신종 사기 기법이 근절되지 않고 날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주민등록번호 등의 유출로 인해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피해가 발생할 경우 지체 없이 즉각 신고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