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파의 외침은 당 균열의 메아리인가
열린우리당이 유시민 의원의 내각 입성과 관련하여 일부 재선 의원 등 당 수뇌부의 결의를 바탕으로 당의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에서는 사학법 등 색깔 논쟁과 관련하여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주가 되어 또 다른 당 분열의 조짐을 조심스럽게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거대 양당이 같은 시기에 같이 당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이례적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근래 양 당이 돌아가는 모습은 같은 당 내에서도 이해하기 힘들만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욱이 같은 사안을 놓고 당에 균열이 가고 있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이유들을 바탕으로 내부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그만큼 국민은 또 다양한 조건들 속에서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획일적이지 못한 당론에 의해 혼란스러운 것은 당의 지도부가 아닌, 오히려 국민이라는 것을 그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
▣왜 이렇게 과민반응인가
한나라당의 사립 학교법 무효화를 위한 장외투쟁. 이제는 아무리 끝까지 투쟁을 하더라도 답이 나올 수 있는 투쟁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 할만도 하다. 누구하나 밖으로 쉽사리 말을 못 꺼내서 그렇지 분위기는 이미 대다수의 의원들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말을 먼저 꺼낸 사람은 적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고 있는 당 지도부의 강압적인 분위기. 그 분위기를 뚫고 겁 없는 소장파 원희룡 의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원 의원은 지난 달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표의 이념적 편견은 병이다”고 하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장외투쟁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지난 5일 염창동 한나라당사에서 최고 및 중진 연석회의 자리에서 원 의원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쾌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표는 “원 최고위원의 인신공격성 인터뷰가 비판의 도를 넘어섰다”고 하며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며, 이어서 “아무리 당대표가 무능해 보이더라도, 그런 인신공격성의 당 대표에 대한 막말은 삼가야 한다”며 원 의원에 대한 경고를 숨김없이 표현했다.
박 대표가 당원을 바탕으로 이처럼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사실 드문 일이다. 물론, 인신공격성의 발언에 대해 인간적으로 화가 났을 수도 있겠지만, 박 대표가 그만큼 무게 조절을 하지 못할 만큼 가벼운 인물도 아니었다. 원 의원이 자신에 대해 인신공격성의 인터뷰를 한 것만의 이유로 공개적인 석상에서 그것도 당 최고위원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도가 깔려 있었다는 것을 해석 가능하게 한다.
이날 박 대표의 발언을 접한 일부 언론들은 박 대표 역시 사학법 관련 장외투쟁이 쉽지 않은 길의 선택이었다고 암묵적으로 시인한 것과 다름없는 발언이었다고 해석을 하고 있다. 물론, 원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도대체 박근혜 대표가 왜 그렇게 이념 문제에 집착하는가, 그 문제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표현이 일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병’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래서 꼭 그 표현만 써야 의미 전달이 되는 것이 아니었는데, 지나친 표현이 들어있던 점에서 이것은 지나쳤다라고 분명히 깨끗이 사과했다”며 나름대로의 사과를 충분히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표는 “원 최고위원은 그동안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고 하며, 원 의원에 대해 당 정체성을 거론하기도 하였으며, 일부 중진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계속 뜻을 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고 하며, 사실상 탈당을 요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수뇌부의 이 같은 발언들은 단지 원 의원이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에 대해 공손하지 못한 표현을 썼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간동안 두고두고 쌓아온 눈엣가시를 뽑아버리겠다는 심사가 충분히 담겨있는 발언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학법 투쟁과 관련하여 소장파를 중심으로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박 대표의 ‘경고’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안하지만, 그게 내 뜻이다
한나라당 내 분위기가 일대 파란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6일 원희룡 의원은 라디오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전날 있었던 사태의 전모와 당 정체성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인터뷰에서 원 의원은 “지금도 사학법을 둘러싼 이념적인 규정, 그리고 장외투쟁을 무기한 끌고 나가는 것이 잘못 됐다는 것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변함없다. 앞으로도 이 견해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면서, 당 지도부의 투쟁 방법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또한 “당론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심정적으로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하며, 당론과 자신의 소신이 불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이규택 의원 등 중진 의원들이 원 의원의 출당과 관련된 의견을 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당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출당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합당한 책임이라면 무엇이든 지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과연 당론과 다른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 출당에 해당하는 행위인지, 그리고 징계 대상인지 그에 대해서는 당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고 하며, 스스로 뜻이 다르다고 당을 나가지는 않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삼아 자신을 출당시킨다면, 그 뜻에 따를 의사도 있다는 입장을 드러내 보였다.
이렇게 될 경우 당에서는 원 의원이 최고위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유로 쉽게 출당을 결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본인도 당의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스스로 물러설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기에 소위 당내 ‘왕따’가 되는 것은 아니냐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만, “당을 위해서 어떤 것이 진짜 바람직한 것인지 어느 것이 정말 국민을 대변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서로의 근거를 제시하고 보다 나은 대안, 또 접점을 찾기 위한 활발하고 생산적인 토론이 있어야 하는데, 토론보다는 침묵이 요구되는 이런 풍토는 잘못 됐다는 점에서 불편하고 비난받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생각이다”고 말하며, 아직까지는 당에 대한 애착이 남아 있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손학규 지사가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에 대해 “이 정도면 충분한 성과를 거뒀다”며 등원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던 것에 원 의원은 “과연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이다. 사학법을 원천 무효하지 않으면 무기한 장외투쟁을 하겠다고 하는데, 과연 무기한 장외투쟁이라는 것. 국회의원이 국회를 무기한 세워두고 밖에서 있다는 것이 과연 성립 가능한 것인가. 성과도 없고, 명분도 없이 어떻게 들어가는가 하는 주장들도 있다 그러나 학생이 학교 가는데 무슨 명분이 필요한가. 마찬가지로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가서 국정현안을 심의하고 그 안에서 사학법 재개정 논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별다른 명분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며 의미 없는 투쟁의 종결을 재촉하기도 했다.
▣소장파, “그동안 답답했어”
그러나 이 같은 원 의원의 생각이 결코 당 내에서 ‘왕따’가 될 만큼 혼자만의 입장은 아니라는 것에 한나라당 내부의 균열 문제는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소장파를 중심으로 같은 의견들이 모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당의 입장에서 소장파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만은 없기에 서로가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원 의원과 같은 입장에서 당의 현실을 꼬집고 있는 또 한 명의 소장파 고진화 의원 역시 원 의원과 같은 날 또 다른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던 색깔론에 대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원 의원이 처음으로 당의 문제점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 이후로 그동안 막혀있던 숨통이 터져버리기라도 한 듯이 소장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고 의원은 “원 의원의 발언이 색깔론, 이념공세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이제는 그러한 시대착오적인 논쟁을 종결하자라는 의미라고 본다. 이 점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당 내 소장파들이 주장했던 것처럼 지역주의에 모든 것을 기대는 지역주의 중독증 같은 현상이나, 이러한 색깔적인 이념공세 등을 통해서 계속 적과 동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큰 거대 담론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잘못된 행태에 대해 비판한 것이라 본다. 원 의원의 이런 충언에 대해 포용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넉넉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며, 적극적으로 원 의원의 입장을 두둔했다.
또한, 당내 중진 의원들과 소장파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규택 최고위원 같은 경우에는 지난 번 연찬회에서도 소장파들이 문제제기를 하니까, 화장실에 끌고 가서 주먹으로 몇 번 맞아야 될 일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당 내 계층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의미를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한나라당은 당의 색깔을 고수해야 한다는 중진 의원들과, 케케묵은 색깔론을 들먹이며 언제까지 의미 없는 정쟁을 펼치고만 있을 것이냐는 소장파 의원들 간의 대립으로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TV토론도 좋고, 끝장 토론도 좋다. 어떤 방식의 토론이든 당 정체성에 대해서 종결을 짓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것은 고 의원만의 생각이 아니다.
소장파 의원들의 분위기는 이제까지 참을 만큼 참았고, 예우를 해 줄 만큼 해 줬다는 상황으로 급진하고 있다. 당 수뇌부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 목소리가 당의 전면에 내 세워지지 않는다면, “당의 액세서리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제 박 대표는 여당과만 싸워서는 승산이 없는 게임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승산이 없는 무모한 게임의 시작이긴 하였지만,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 못 이기는 척이라도 했어야만 했다. 이처럼 식구들까지 잃게 될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누가 알았겠느냐마는 당초부터 소장파 의원들은 색깔 구별을 좋아하지 않았다.
투쟁은 투쟁으로, 화합은 화합으로 그 자체의 문제만을 직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소장파 의원들로서는 이제 이념이나, 색깔 구별은 괜한 트집거리 정도로밖에 보여 지지 않는 것이다. 구차스럽게 말꼬리 물고 늘어지고, 쓸데없는 곳에서 정체성 운운하는 선배들에게 한숨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미 그도 물들어버린 기성정치인으로 보이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기에,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에게는 선배들을 바라보는 실망스런 눈빛이 역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언가 변화시키고, 바꿔보겠다는 일념하나로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젊은 피에게 말 한 마디 꺼내보기도 힘든 분위기는 답답해도 너무 답답한 곳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일순간에 적을 둘이나 두게 된 박 대표와 한나라당 중진 의원들은 아직까지도 사태 파악은 뒷전이고 자신들의 자존심 지키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권위주의적 의식과 괜한 자존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지금처럼 비탈길을 뛰어 내려가고 있다가는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어서 깨달아야 할 상황이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