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가 정석기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정석기업은 한진 그룹 순환출자구조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는 기업인 만큼, ‘경영 승계’를 주제로 한진家 3세들을 향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남매 중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이가 바로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한진그룹 측은 “너무 이른 이야기”라며 ‘경영 승계’ 불씨를 잠재우려는 모양새다.
한진그룹 ‘지주회사’ 체제 핵심 한진칼, ‘장남’ 품에
창업주 시대부터 내려온 ‘장자 승계’ 원칙 이어지나
한진 측 “경영승계 이야기 없어…시기도 너무 일러”

지난 10일 정석기업은 공시를 통해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전무를 정석기업 각자대표이사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조 전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원종승 대표와 함께 정석기업의 공동대표를 맡게 됐다.
당시 대한항공 측은 선임 배경에 대해 “조 전무의 대표이사 선임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며 책임경영 활동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조 전무는 2010년 초부터 정석기업 등기임원으로 선임돼 경영에 참여해왔다”고 설명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건물·토지 등의 부동산 관련자산을 매입, 매각 및 임대 등 총괄 관리하는 계열사다.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의 지분 17.98%를 가지고 있어 한진그룹 순환출자의 핵심 기업이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8월 지주회사인 한진칼을 출범시켰지만,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유지해 왔다.
이같은 핵심 기업에 조 전무가 대표이사를 맡게 되면서 한진가 3세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장녀 조현아는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부문 총괄부사장과 KAL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 등을 겸직하고 있다. 장남 조원태는 대한항공 부사장, 화물사업본부장을 겸직하고 있고 지난해 말 한진칼 등기임원으로 선임됐다. 여기에 막내딸 조현민이 정석기업 대표이사가 되면서 후계 구도에 뛰어든 모양새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 전무의 대표이사 선임이 경영 승계의 ‘신호탄’이 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진그룹의 지배 구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기업은 지주회사 한진칼, 정석기업, ㈜한진 등 3개 회사다. 한진가 3세들은 이들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조금씩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보유 지분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정석기업의 경우, 세 남매가 1.28%씩 지분을 갖고 있다. 한진칼은 1.08%, ㈜한진은 0.0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분이 워낙 적어 현재의 지분을 기반으로 경영권을 승계 받기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아직 경영 승계 대상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진가 3세들을 대상으로 한 ‘교통정리’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례로 2013년부터 경영을 시작한 OCI家 3세 이우정 넥솔론 대표의 경우, 지난해 3월 100억 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이 대표의 지분율을 23.09%로 늘리고 형 이우현 OCI사장의 지분율을 13.11%로 줄이는 ‘교통정리’를 시행한 바 있다.
‘선두주자’는 장남?

지분 구조 상으로는 세 남매가 큰 차이가 없지만, 삼남매 중 가장 앞서나가고 있는 것은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맡고 있는 사업의 무게감에서 조 부사장에게 무게추가 기운다는 것이다.
한진가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은 2012년 3월 대한항공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렸고, 전무 승진 6개월 만인 지난해 1월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또 다시 6개월 만인 7월에는 대한항공 주력 사업인 화물사업 본부장까지 겸임했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2014년 임원인사’를 통해 한진칼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대한항공의 핵심 수익원인 화물 운송 업무를 총괄하면서 동시에 지주사 경영까지 맡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진칼의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한진그룹의 앞길인 ‘지주회사체제’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게 될 곳이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8월 1일 기준으로 투자사업을 총괄하는 한진칼홀딩스와 항공운송사업을 하는 대한항공으로 인적분할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당시 대한항공은 지주회사 한진칼(투자사업부문)과 대한항공(항공사업부문)으로 분할했다. 즉, 대한항공은 기존의 항공운송산업을 지속하고 한진칼은 투자사업을 총괄하는 지주회사 역할을 맡게 된 것.
분할의 목표는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과 경영안정성을 증대시켜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높인다는 것이었다. 최근 정부가 재벌기업들의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면서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해 지주사 설립을 권유하고 있는 점도 한 몫을 했다. 한진 그룹은 지주사 체제로 형식을 전환하긴 했지만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하며 자회사에 대한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때문에 증권투자업계에서는 ㈜한진을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해 한진의 투자부분을 한진칼과 정석기업 3개사와 합병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25일 팍스넷은 “지주회사로 전환한 한진그룹이 정석기업-한진-한진칼-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고 한진을 분할해 한진칼, 정석기업을 동시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앞선 10일 하이투자증권 역시 “한진그룹 순환출자 해소 시나리오 중 가장 유력한 방법은 ㈜한진을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해 한진의 투자부문을 한진칼과 정석기업 3개사와 합병해 (통합)지주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순환출자 고리에서 한진이 빠지고, 한진칼-정석기업으로 간소화된다. 즉 앞으로 한진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변환할 때의 핵은 한진칼과 정석기업이라는 것이다. 상호출자 형태로 바뀌는 셈이다. 때문에 한진그룹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진칼과 정석기업을 합병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조 사장은 한진칼의 정석기업 흡수합병 가능성을 내비쳤다.
조 부사장은 지난달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4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정석기업의 부동산 임대 관련 사업 대부분이 한진칼로 넘어온 상태”라며 “궁극적으로 정석기업이 한진칼로 흡수합병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두 기업이 합병되면 오너일가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약 30%까지 올라간다. 현재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한진칼의 최대주주 지분율은 24.86%다. 이 가운데 조양호 회장과 2세들의 지분율은 9.87%다. 정석기업은 조양호 회장이 27.21%, 3남매가 각각 1.28%씩의 지분을 갖고 있다.
또 한진칼이 정석기업을 흡수할 경우 지주회사로는 부족한 한진칼의 부족한 자금력도 확충할 수 있다. 지난 3·4분기 기준으로 한진칼은 자본총액이 4,400억원에 이르고 2,800억원 규모의 부채총액을 갖고 있다. 현행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한진칼)가 부채비율 200%를 넘으면 제재를 가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한진칼이 자본총액 3,000억원 규모의 정석기업을 흡수하게 되면 지주회사로서 운신의 폭이 커지게 된다.
따라서 고객 서비스 분야와 광고·마케팅 분야에 한정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현아-조현민 자매에 비하면 조 부사장의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무겁다.
조현아 부사장은 현재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부문 총괄부사장과 KAL호텔네트워크 대표이사 등을 겸직하고 있다. 조 전무는 정석기업 대표이사를 맡기 이전까진 조 전무는 대한항공 마케팅 및 홍보 총괄업무와 저비용항공사 진에어 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한진 오너가, ‘장자 중심’ 가풍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지분율은 세 남매가 똑같지만 세부적인 주식 수를 따져보면 조 부사장이 근소하게나마 앞서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를 보이는 계열사가 조 부사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지주회사 한진칼이다. 한진칼의 경우, 조 부사장의 주식 수는 30만7234주다. 반면 조현아 부사장은 335주 적은 30만6899주를 가지고 있다. 조현민 전무는 891주가 적은 30만6343주를 보유했다.
한진칼의 대한항공 주식 수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조 부사장의 주식이 63만5797주로 가장 많고 조현아 부사장이 63만5103주로 뒤를 잇고 있다. 조현민 전무의 주식 수는 63만3951주로 가장 적다.
한진그룹 오너가가 1945년 한진상사(현 ㈜한진)를 창업한 이후 보인 승계 행보를 살펴보아도 조 부사장에게 무게가 실린다. 한진가는 아들, 그리고 장자에게 그룹의 핵심을 맡겨 왔다.
故 조중훈 창업주는 8남매 중 차남이다. 1945년 11월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창업해 오늘의 한진을 일궈냈다. 그는 한진이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힌 뒤 형과 두 남동생들을 그룹 경영에 참여하도록 했다. 형 故 조중렬 전 한진건설 고문, 남동생들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조중식 전 한진건설 사장 등이다. 그러나 여동생들은 기업 활동에서 배제시켰다.
이후 4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슬하에 둔 조 창업주는 그 중 장녀 조현숙 씨는 경영 활동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들에겐 한진그룹의 사업을 떼어줬다. 이에 따라 공업과 육상 운수업은 장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선업은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해운업은 삼남 故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 금융업은 막내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갖게 됐다.
특히 그룹의 핵심이자 뿌리인 항공업과 육상 운수업을 장남 조양호 회장에게 넘겨줬다는 부분이 눈에 띄는 대목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조양호 회장 역시 조 창업주의 행보를 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항공 관계자는 26일 <시사포커스>와의 통화에서 “경영 승계로 결부시키기엔 이르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전혀 논의가 되지 않고 있는 이야기”라며 “회장님도 60대로 젊으시고, 세 분 다 아직 나이가 젊어 경영 승계를 논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조 부사장이 한진칼을 맡으며 무게추가 기울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세 분 다 기업의 대표이사직을 맡고 있다”며 “무슨 기업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라면 “그런 이야기(경영승계)가 나오기엔 너무 이르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