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멍이 든 여고생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냐”며 걱정해 주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려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천대엽)는 3일, 버스에서 여고생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쳐다본 혐의(강제추행)로 불구속 기소된 회사원 이모(53‧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지난해 9월 4일 오후 10시께 버스를 타고 서울 종로구 동숭동을 지나던 중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 A양의 허벅지에 심한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왜 멍이 들었냐”고 물었다. 이에 A양이 “계단에서 넘어져서 그렇다”고 답했으나 멍의 위치와 형태가 넘어져 생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 씨는 “혹 누구에게 맞은 것이 아니냐”며 집요하게 물었다.
당시 뒷자리에 앉아 이같은 상황을 지켜보던 승객 B씨가 “요즘 학생들 다리만 쳐다봐도 성추행이 될 수 있다”며 이 씨를 만류했으나 이 씨는 A양이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112에 신고했다.
그러나 A양은 이 씨의 행동에 불쾌감을 느끼고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담당 경찰관에게 “이 아저씨가 나에게 성희롱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고, 이후 경찰조사에서도 “이 씨가 허벅지를 2차례나 만져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A양과 함께 버스에 탔던 A양의 친구 C양 역시 “아저씨가 허벅지를 만지는 것을 봤다”고 진술함에 따라 이 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승객 B씨는 이씨가 A양의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다고 증언했을뿐 아니라 증인 C씨 역시 법정에 이르러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검지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는 형태였다’고 진술을 번복했다”면서 “이 사건의 수사는 A양이 걱정되는 이 씨의 신고가 계기가 된 점을 고려해 보면 A양에 대한 강제 추행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이 끝난 후 이 씨는 “경찰청과 협정을 맺어 운영하는 청소년 선도위원회에서 1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학생의 멍 자국을 보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며 “그 때 그냥 모른척 했으면 경찰서에서 범죄자 취급도 받지 않고 법정에 서지도 않았을텐데 후회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