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10단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수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모호하게 탈당의 뜻을 비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여권은 또 다시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1.2 개각’의 여풍도 채 가시지 않은 열린우리당의 입장으로서는 설상가상으로 이번 대통령의 발언은 믿어왔던 동지가 사실은 ‘내부의 적’이었다는 의미로까지 확대 해석하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만찬장에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대통령께서는 탈당이라는 말은 입 밖에 꺼낸 적도 없었다”고 하며, 여권의 지나친 해석에 대한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적으로 민감해질 만큼 민감해져 있는 열린우리당 내에서는 “대통령의 탈당은 이미 예견되었던 사실이기에 놀랄 것도 없다. 다만, 탈당 선언을 언제 하느냐가 관건일 뿐이다”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대통령 책임론
열린우리당 내 다수의 의원들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탈당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방선거를 전후로 하여 탈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 팽배해 있다. 오래 전부터 노 대통령이 초당적 거국내각이나, 중립내각을 이상적으로 삼아 온 것을 본다면 대통합의지의 불씨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당적을 버리고, “여야 모두와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겠다”고 하는 것은 겉으로 보아서는 무척이나 건전한 탈당 이론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계는 이 처럼 대통령의 탈당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견해와는 달리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또 야당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대통령의 숨은 속내를 캐내기 위해 온갖 추측과 루머들을 발표하며, 또 다른 정쟁의 화두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런 이유에서든 저런 이유에서든 대통령의 탈당 의사에 대해 환영하고 있는 야당이나,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로 굳어버리게 된 상황에 대해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여당이나 모두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웅성거리기는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여당의 경우는 “그것은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라고 하며, 이미 대통령의 탈당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다. 다수 의원들에 의해 추정되어지는 그 시기는 지방선거가 끝난 후가 될 것이라는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그것은 만일에 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패배를 하게 될 경우에는 지난 10.26 재선의 패배와 더불어 연이은 선거의 실패로 당과 청의 갈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서 기인하게 된 것이다.
선거에서 패배를 하게 된다면,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게 된 데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당이 아닌 청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당을 분열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총체적인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대통령 책임론’을 대두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당내 전당대회와 불과 수개 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만을 위해 당을 져버린 행동을 한 대통령에 대해 심판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수가 없어 보인다.
▣선수치기 아닌가?
야권에서는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설에 대해 생각 이상의 환영의 뜻을 보이고 있다. “이왕 이렇게 불거진 것 하루라도 빨리 탈당을 해야한다”고 까지 부추기는 야당들은 노 대통령이 여당 감싸기의 정치를 하루라도 빨리 마감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러나 이러한 대통령 탈당설에도 어쩐지 미심쩍은 면이 있다고 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도 없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나 여당이 대외적으로는 절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럴 일도 없을 것이라고 일축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모든 야당들은 대통령이 입장을 발표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기에 뜻하지 않은 시기에 뜻하지 않은 발언이 무언가 석연치만은 않다는 느낌도 지우지 못 하고 다양한 의혹설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열린우리당과 청와대의 관계가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는 시기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통령 조기 탈당설이 번지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정치권 일대의 의혹을 사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또한 열린우리당 내의 치열한 당파 싸움으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는 당내 갈등의 현실 속에서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 중재자의 역할은 못할망정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이유가 무엇일까?’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탈당설은 일종의 위장이라는 해석이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이번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한 발언은 충분히 전략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전략적 해석 중 먼저, 가장 설득력 있는 탈당 조작설은 ‘선수치기’다. 여권이 ‘1.2 개각’ 단행 이후 반노 세력의 결집과 더불어 당 분열의 상황까지 초래하고 있는 상황에 불만의 목소리를 막아보자는 공산일 것이라는 설이다.
지난해 ‘대연정’에 이어 끊임없이 초당거국, 중도정국을 주장해온 노 대통령이 스스로는 언행의 불일치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당 내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반발의 목소리를 죽이기 위해 ‘선수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불만스럽다면 당에서 내보내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노 대통령 특유의 ‘게임’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것은 11일 청와대 만찬 자리에서도 어느 정도 대통령이 확인시켜주었다. “당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 않느냐…”라는 발언을 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은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대통령 또한 나가라고 한다고 나가기도 뭣 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당대회와 지방선거 등 굵직한 선거 레이스를 달려야 하는 여당에서 그들의 가장 큰 배경이 되어주는 대통령을 탈당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 역시 2년 여 남은 임기 동안 지원세력(소속 당) 없이 국정을 운영해 나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에도 불리하고 정작 본인에게도 불리한 선택을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뜻이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느니, ‘고부간의 갈등이 심하면, 떨어져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느니 하며, 여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조작설을 주장하는 일부에게 있어서 이것은 엄밀히 말해 위협이자 협박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계속 반발만 하며 식구끼리 싸움만 하고 있을 것이라면 차라리 원인 제공을 한 “내가 나가고 말겠다”라는 의미로 여권의 불을 식히겠다는 계산일 것이라는 의미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논리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이처럼 여권만을 겨냥한 목소리라기보다는 열린우리당과 노대통령을 한 데 묶어 비난하는 야당들의 시선을 의식한 발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지방선거 이후 어차피 떠나야 할 분위기라면 조금이라도 책임을 떼 내 보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사학법 투쟁, 1,2 개각 등 노 대통령이 주도하여 발생한 야당들의 비난 성명을 당에서부터 분리해 비난의 화살을 청와대로 향하게 하여 당에는 피해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전략적인 계산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대표적으로 이 같은 추측의 논리를 제시한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당 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압박카드이거나 무책임한 정치적 위장이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은 이제 구제불능?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의 경우에는 이번 대통령 탈당설에 대해서 “새로운 노무현 친위정당을 만들려는 저의가 아닌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며, ‘1.2 개각’과 이번 만찬장에서 탈당을 염두에 둔 발언 등은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 역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문제제기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유시민, 천정배, 정세균 의장 등을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하고 대권 수업을 시키겠다고 공표를 한 마당에 이제 못 할 것은 또 무엇이 있겠냐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핵심 측근 몇 명만 있다면, 사공이 많아 산으로 산으로만 향하고 있는 열린우리당 의원 몇 십 명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열린우리당 내 반노 성향의 의원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지켜보다 못 해 용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더욱이 지방선거를 향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모습은 아무리 애착을 가지고 바라보려고 해도 현재로써는 승산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유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에서 빨리 발을 빼내 새로운 지지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미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로 자리가 마련되어져 있고, 이제 남은 것은 국회와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 마지막 남은 임기를 장식해보겠다는 생각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하루라도 야당을 통해 좋은 말 한 마디를 들어보지 못한 대통령으로서는 조금 더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힘 있게 국정 운영을 해 보겠다는 전략이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인지상정론
‘협상 카드를 꺼낸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설도 있다. 최근 무리한 개각 단행으로 여당과 야당 가릴 것 없이 비난 성명이 그칠 날이 없음에 하나쯤은 때내 주어야 한다는 ‘인지상정론’이다. 그동안 야권에서는 대통령이 당적을 버려야 대화 노선을 구축하겠다고 쉼 없이 주장해왔다. 느닷없이 그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근 단행한 개각에 더 이상 불만을 갖지 말아달라는 협상카드를 준비 중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같은 추측은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얼마 전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차기 지도자 육성 프로젝트를 공공연히 밝힌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현재로써는 유시민 의원 등을 차세대 지도자로 지목하고, 국정 업무 등의 현장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생각에 따라서는 남은 임기가 촉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를 육성하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자신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은 더 이상 딴지를 걸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보상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듣더라도 의미를 담고 있는 그의 ‘말’은 그냥 무책임하게, 혹은 무의미하게 내 뱉은 말이 결코 아닐 것이라는 해석으로 정계는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말장난이 아닌 이상에야 대통령이 여당의 중요 지도부 인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그 같은 표현을 한다는 것은 ‘말’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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