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세권 남용되면 국민 재산권 침해 우려
조세법률주의 대원칙에 따라 세법이 정한대로 국민들이 위임한 조세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세청의 사명이다. 조세정의를 위해서, 조세형평성을 위해서, 소득재분배를 위해서,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 국세청은 바빠야 한다. 그러나 무리하게 세수 몰이를 하다보면 조세저항(tax resistance)이 거세지는 등 역풍이 몰아칠 수 있다.
무리한 과세에 환급세금 크게 늘어나
과세권에 앞서 국민의 재산권 고려를
조세정의 위한 국세행정은 지속돼야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씨족사회를 거쳐 부족사회를 지나 국가가 탄생한 배경에는 과세권의 확립이 전제가 되었다.
과세권은 국가의 통치권에 기하여 국가 또는 통치권의 일부를 위임받은 지방자치단체가 조세를 부과·징수하는 권능을 말한다.
우리 헌법 제3조는“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여, 과세는 본인의 동의를 요하지 않으며 강제적으로 납부시킬 수 있다.
요즘 과세권의 남용이라는 말이 종종 운위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나라재정 수요를 충당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정부는 복지국가를 표방한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초노령연금을 비롯하여 복지 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러한 폭발적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선 과세 주무기관인 국세청이 바쁠 수밖에 없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조세론의 금과옥조처럼 세리(稅吏)들은 소득이 있는 곳을 찾아내, 즉 세원(稅源)을 발굴하여 과세한다.
최근 지하경제 양성화니, 역외탈세 추징이니 하는 것들이 결국 세원을 포착하여 세수(稅收)를 늘리자는 정책인 것이다.
엄청난 복지재정을 감당하려면 국세청이 바빠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런데 세수 몰이를 무리하게 전개하다 보면 조세회피를 비롯하여 조세불복, 조세심판 청구 등의 역풍을 맡게 된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국세청의 과세에 불복한 기업 숫자가 전년도와 비교해 31% 급증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국세청이 세수 확대를 위해 추징 강도를 높이자 이에 불복하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무조정실 산하 조세심판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과세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한 기업은 2013년 1376곳으로 2012년 1050곳과 비교해 31%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2010년과 2011년만 하더라도 심판 청구 기업이 각각 874곳, 875곳에 불과하였다.
무리한 과세에 환급 세금 크게 늘어
국세청이 무리하게 과세했다가 조세심판원 심사나 법원 판결에서 패소해 되돌려주는 세금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국세청의 또 다른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이의신청·심판청구·행정소송 등의 절차를 이용해 과세에 불복한 기업과 개인에게 국세청이 되돌려준 세금(이자 포함)은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8121억 원에 달했다.
이는 2012년 상반기(3604억원) 및 2011년 상반기(2305억원)와 비교하면 국세청이 돌려준 세금이 두세 배로 늘어난 수치이다.
이 가운데 국세청이 법원 판결에서 기업과 직접 세금 소송을 벌여 패소하는 바람에 돌려준 금액만 지난해 상반기 중 2669억원으로 2012년 전체(1547억원)의 1.7배에 이른다.
세무전문가들은 조세심판원은 과세 처분이 정당했는지를 판단하는 독립 기관으로 조세심판원의 심판 청구 건수와 돌려준 금액을 보면 조세 불복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조세심판원 청구 건수와 금액이 늘어 난 것도 조세저항을 예측할 수 있지만 조세심판원의 심판 청구에 대한 줄 이은 기각 사례도 강한 조세저항을 낳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한 사례가 있다. 한국동스크랩유통업협동조합은 조합 소속 업체에 대한 강한 세무조사와 이를 둘러싼 조세심판원의 행태를 강력 비판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동스크랩유통업협동조합은 전선, 동파이프 등 재생 재활용이 가능한 동함유 재생물품을 통칭하는 주요 비철금속 원자재 중 하나인 동스크랩을 수집, 유통하는 중소업체들의 단체이다.
얼마 전 동스크랩 매입업체 100여개 업체에 수백 명의 조사관이 일시에 들이닥쳐 사전통지 없는 동시 세무조사가 개시되었다.
이 조합 관계자에 따르면 전례가 없는 기획세무조사이며, 세무조사 후 묻지마 과세가 이루어졌다.
최근의 동스크랩 업종의 심판 청구 행렬은 이 기획세무조사의 결과물로 이 조합은 보고 있다.
조세심판원은 기획세무조사와 묻지마 과세에 대한 심판 청구를 역시 기각 일변도로 판결하고 있고, 납세자들은 즉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소송이 납세자의 승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이 조합은 성토하고 있다.
국세청의 부당과세와 조세심판원의 불공정 판결이 결국 사법부에 와서야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조세심판원이 부당과세를 바로잡아 취소 결정을 내렸으면 간단히 끝날 것을 소송으로 비화케 하여 납세자와 행정부 모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심판 결정의 독립성이 보장된다 해도 조세심판원은 행정부의 꼭두각시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세심판원 역할 재조명 주장도…
동스크랩 업계는 이러한 상황을 세제실과 조세심판원의 커넥션에서 일어난다고 보고 있으며 이러한 커넥션이 혁파되지 않으면 조세심판원은 절대 공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의 부당 위법과세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1974년 기획재정부(구. 재무부)소속으로 설립된 국세심판소로 출발해 2000년 국세심판원으로 명칭 변경했다. 2008년부터는 현재 명칭인 조세심판원으로 변경하고 기재부(구.재경부)에서 국무총리실로 소속을 변경하였다.
조세심판원 심판관회의의 결정은 각하, 기각, 인용으로 구분되며 인용은 경정과 취소로 나누어진다.
각하는 심판 청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기각과 같은 의미이며, 기각은 납세자의 패소, 인용중 경정은 납세자 일부 승소, 취소는 납세자 승소의 의미이다.
조세심판원의 취소 결정에 행정부(국세청)는 대항할 수 없어 납세자 입장에서 행정소송의 대법원 확정승소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
납세자는 행정부와 달리 심판 청구에서 취소 결정을 받지 못해도,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심판 청구 과정에서 쟁점이 부각되므로 행정소송의 준비자료로도 활용을 할 수 있다. 심판 결정은 개별 건에 대해 기존 판례나 매뉴얼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판단하므로 납세자와 심판부의 성향에 따라 유사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결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심판부를 믿는 수밖에 없으므로 조세심판원은 공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존립기반이다.
조세정의를 위해서, 조세형평성을 위해서, 소득재분배를 위해서,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 국세청은 바빠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 지나치면 가렴주구(苛斂誅求)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조세법률주의 대원칙에 따라 세법이 정한대로 국민들이 위임한 조세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세청의 사명이다.
그런데 모든 게 그렇듯이 과유불급이다. 조세회피처(tax haven)에서 부른 배를 두드리며, 온갖 탈세를 일삼는 자 색출해야 한다.
추상같은 국세행정은 견지돼야
어두운 지하경제(subterranean economy)에서 나라살림과 어려운 이웃은 나 몰라라 하고 무자료 거래 하는 파렴치한들 찾아내서 과세해야 한다.

그러나 무리하게 세수 몰이(drive)를 한 결과 기업가들의 경영의욕을 꺾는다든가, 애먼 사람에게 세금 폭탄을 던진다든가, 또는 강제 집행권을 남용하여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하든가 하면 조세저항(tax resistance)만 거세지는 등 역풍이 몰아칠 수 있다.
이 점 유념해서 조금은 여유 있되, 치밀함이 추상같은 일선 국세행정이 펼쳐지길 바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국세청이 올해 세무조사를 줄이는 대신 역외탈세, 대기업(중견기업 포함)·거대 재산가, 고소득 자영업자 등 지하경제 양성화 4대 분야에 대한 조사는 강화하기로 했다.
국세청은 최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2014년도 국세행정 운영방안’을 확정했다.
국세행정 운영방안은 ▲경제 활력 제고와 서민생활 안정 지원 ▲비정상 납세관행의 정상화 ▲세입예산의 안정적 조달 ▲납세자가 세정의 주인이 되는 선진 납세풍토 정착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의 근본적 변화 추진 등 5대 중점 추진과제와 실천계획을 담고 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어렵게 살아난 경제회복의 온기가 경제전반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세정차원에서 노력해야 한다”며 “지난해와 같은 국민 불안 여론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고 신중한 세정운영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인식과 처방이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