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 “자구 계획안 이행하라” 압박
“매각 하고 싶긴 한데…” 나서는 곳 없어
심혈 기울인 ‘영농사업’도 철수 수순 밟아
전문가들 “동부그룹, 4월이 첫 번째 위기”
최근 금융감독원이 동부그룹의 주요 임원들을 불러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구계획을 하루 빨리 이행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을 놓고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유동성 위기에 놓여있는 동부그룹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최후통첩’ 불사한 금감원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월 19일 금융감독원은 동부건설 사장 및 동부제철·동부하이텍 부사장 등 동부그룹 임원들을 불러 “자구 계획안을 조속히 이행하여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라”고 촉구했다.
이렇게 금융감독원 측이 동부그룹에게 자구 계획안을 촉구한 주된 이유에 대해 업계에서는 “동부그룹 측이 하루빨리 자산 매각 작업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만일 최악의 경우 채권단의 자금 지원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경고한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재계에서는 “이 같은 경고가 현재 동부그룹이 유동성 차원에서 심각한 위기에 놓인 것을 반드시 뜻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동부그룹의 매각 작업이 예상보다 속도가 나지 않자 금융감독원이 선제적 차원에서 주의를 주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견해를 피력했다.
지난해 11월 동부그룹은 3조 원 규모나 되는 자구 계획을 내놓고 오는 2015년까지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대상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혀 당시 만연했던 그룹 차원의 위기에서 벗어난 바 있다.

이때 동부그룹 측은 동부메탈·동부하이텍·동부제철 인천공장·당진항만·동부발전당진 지분·동부익스프레스 지분·동부팜한농 유휴부지 등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5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 동부그룹이 발표한 계열사 가운데 매각 작업이 완료된 곳은 아직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동자동 오피스 빌딩을 팔아 동부건설 회사채를 상환한 것이 전부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상황이 이렇게 지지부진 하다가는 자칫 ‘제 2의 동양그룹 사태’라는 최악의 결과가 야기될 수도 있다는 조바심이 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 평론가는 “지난해 11월 동부그룹이 전격적으로 매각을 발표한 계열사는 ‘알짜 매물’인 경우가 많아 그동안 다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라며 “금융감독원이 이런 분위기를 간파하고 동부그룹에 대한 매각 압박 수위를 높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사실상 최후 통첩을 받은 동부그룹은 일단 이번 달 말까지는 당장 팔 수 있는 계열사에 대한 매각 작업을 시급하게 착수하여 큰 틀의 매각을 완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매각하고 싶지만 나서는 임자 없어’ 고민 가중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동부그룹이 일부러 매각 작업을 지연시키고 눈치를 보는 것이 절대 아니라 아직 제대로 된 ‘임자’가 나서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늦춰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동부그룹에 대해 동부제철 인천공장·당진항만·당진 동부발전소 등 세 곳을 최우선 매각 대상으로 파악하고 조속한 처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상황은 그리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다.
동부제철 인천공장은 매각 일정이 늦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진항만은 현재 투자자 모집에 애로를 겪고 있다. 당진 동부발전소에 대해서는 올해 3/4분기까지 매각을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매각 방식이 확정되지 않아 일정 자체가 늦어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재계에서는 “현재 매각 속도가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동부그룹 계열사로는 동부하이텍”이라고 꼽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 전문업체인 동부하이텍은 지난 2월 초순 산업은행·노무라증권을 공동매각주관사로 선정된 바 있다.
원래 산업은행은 동부하이텍을 동부메탈과 함께 묶어 매각할 계획을 세웠지만 동부하이텍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원매자가 나타나면서 따로 매각하기로 방침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렇게 관심을 보이던 원매자가 최근 여러 사정으로 돌연 태도를 바꾸는 바람에 현재 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은 다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SK하이닉스 측은 박성욱 사장이 직접 나서 “동부하이텍을 인수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SK그룹 입장에서는 최근 최태원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바람에 당분간 인수 작업을 적극적으로 펼칠 여력이 없어 보인다”며 “이것이 바로 SK하이닉스가 태도를 소극적으로 바꾼 주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와 더불어 동부하이텍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LG디스플레이도 인수전에서 일단 한걸음 물러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LG그룹 측은 최근 동부하이텍의 악화된 재정 상태 등을 이유로 거론하며 인수전 참여를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렇게 동부하이텍 매각에 대한 상황 추이가 다소 불투명하게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부그룹 측에서는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이 대단히 심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낙관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동부그룹 관계자는 “현재 동부하이텍 인수에 대해서는 국내 업체는 물론 외국기업·사모펀드도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 때문에 매각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소 늦춰질 수는 있어도 매각 자체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동부그룹이 처한 난감한 상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부그룹은 올해 동부제철 회사채 4,510억 원, 동부건설 회사채 1,950억 원의 만기를 막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동부그룹에게 닥칠 첫 번째 본격적인 위기는 오는 4월에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영농사업에서도 전격 철수
이렇게 한 분야라도 사업 영역을 확장해 이익을 보태야할 다소 절박한 상황에 놓인 동부그룹이지만, 아직까지는 사업 면에서 순조롭게 풀려가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동부그룹은 농산물 생산 사업전반에서 손을 떼기로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지난 3월 3일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팜한농은 “화옹 유리온실 자산에 이어 동부팜이 충청남도 논산에서 운영하고 있는 4㏊ 규모의 충남 논산 소재 유리온실도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동부팜한농은 “이미 사업자로 지정받은 새만금 사업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기본 방침으로 정하는 등 영농사업 전반으로부터 철수하기로 해 재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동부팜한농 측은 경기도 화성시 농민들이 결성한 단체인 ‘화성그린팜’과 화성시 화옹 유리온실 매각 계약을 체결했으며 현재 후속 조치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자본과 첨단 기술을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우리나라 농업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동부그룹의 야심은 일단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렇게 동부팜한농이 손을 떼게 된 주된 원인은 “재벌그룹이 농사까지 짓느냐”는 농민단체들의 반발이 워낙 거센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팜한농은 고구마·토마토·파프리카·수박·당근·사과·배 등을 전국 산지에서 수집해 유통하고 있는 농산물 유통회사다. 지난 2011년 말 논산시 시군유통회사인 팜슨을 인수해 동부팜한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사업을 전개해왔다. 동부팜한농은 논산시와 일부 농업인도 주주로 참여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동부팜한농은 자회사인 동부팜화옹을 통해 총 476억 원이 비용을 투자해 15㏊ 규모의 아시아 최대 첨단 유리온실단지인 화옹 유리온실을 완공했다. 동부팜한농은 이곳에서 생산한 토마토의 90% 이상을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일부 농민단체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영농사업 진출을 반대하는 거센 목소리가 커지자 결국 동부그룹은 지난해 3월 “화옹 유리온실 사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화옹 유리온실 사업을 중단한다”는 동부그룹 측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농민단체에서는 동부팜한농을 두고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며 결국 전격적인 사업 철수라는 결과를 끌어내게 됐다.
현재 동부팜한농과 화성그린팜 측은 지난해 말 화옹 유리온실 자산과 동부팜한농이 보유하고 있는 온실 지분 전량을 총 350억 원에 매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매각 대금 350억 원 중 일단 초기 인수대금으로 150억 원을 지급하며 나머지 200억 원은 6년에 걸쳐 분할 상환하는 조건이다.
그런데 현재 화성그린팜 측에서는 대금 지급에 대한 확실한 계획을 수립 중이어서 공식 매각 발표는 지연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동부팜한농 관계자는 “이미 지난해 초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힌 내용대로 화옹 유리온실도 하루빨리 매각하고 다른 영농 사업에서도 철수하는 것이 동부그룹의 기본적인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