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제화기업 에스콰이아 몰락하나
50년 제화기업 에스콰이아 몰락하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지 흔들리는 토종 브랜드
▲ 중견 제화 업체 에스콰이아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는 이번 주 중으로 나온다 ⓒ에스콰이아

지난 4일 중견 제화 업체 에스콰이아가 워크아웃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크아웃은 원래 계약 불이행시 도산을 피하기 위해 채무자와 채권자가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행위를 말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업 자력만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할 때 부채상환을 유예하고 빚을 탕감해주며 필요에 따라 금융기관이 손실 분담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에스콰이아 지분 100%를 보유한 H&Q AP코리아는 228일 저축은행 대출금 만기 연장에 실패한 후 채권단에 3월초 안에 워크아웃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콰이아의 부채 규모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제2금융권 포함 980억 원에 이른다. 한때는 굴지의 명품 브랜드였던 에스콰이아의 몰락을 단순히 한 기업의 부실로 보는 것은 시각적 한계에 맞닿아 있다. 이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보자.

내부 직원들 폭로로 공들여 쌓은 기업이미지 무너져 내려
내부적 부실이 아니라 시대가 변해 소비자가 등 돌린 것

에스콰이아는 고 이인표 창업주가 1961년 서울 명동에 차린 열 평 남짓의 허름한 구둣방에서 시작됐다. 이 창업주는 마흔이 넘어 제화 시장에 뛰어들었고 그중에서도 최고급 수제화 생산에 매달렸다. 사명을 중세 영국에서 남성에게 사용되던 칭호인 에스콰이아(귀하)로 지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1966년 국내 최초로 수제화 자동화 공정을 도입했고 시대를 앞서는 디자인으로 대통령이 신는 구두,‘장교들이 신는 구두로 유명세를 알리며 명품구두를 만들어 냈다. 몸집을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에스콰이아는 금강제화와 더불어 제화업계의 양대 산맥을 구축해나갔다. 또한 1990년부터는 구두에 이어 핸드백 가방 등 잡화류로 영역을 점점 넓혀갔다. 무섭게 사업을 확장하던 에스콰이아는 IMF 외환위기 때도 꿋꿋이 버텼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창업주의 죽음과 맞물려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힌 사건도 벌어졌는데 상품권 판매를 일반 상품 판매로 위장해 신용카드 영수증을 조작하여 거액을 탈세했다는 내부 직원들의 폭로가 연이은 것이다.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는 등 창업주가 40년 가까이 공들여 쌓은 기업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구두명가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

▲ 1966년 국내 최초로 수제화 자동화 공정을 도입했고 시대를 앞서는 디자인으로 ‘대통령이 신는 구두’,‘장교들이 신는 구두’로 유명세를 알리며 명품구두를 만들어 냈다.ⓒ에스콰이아

2000년대부터 에스콰이아에 드리운 어둠의 그림자는 걷힐 줄 몰랐다. 90년대 최고의 선물이었던 구두 상품권은 백화점 상품권과의 경쟁에서 밀려 뒤편으로 물러났고 판매 촉진을 위해 30~40%씩 구두상품권을 할인해 판매한 것도 패인의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에스콰이아 고유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저가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이쯤이었다.

2009년 경영난으로 에스콰이아는 50년 역사의 명동 본점을 일본계 신발유통업체 ABC마트에 매각했다. 회사의 자존심이었던 명동점을 눈물을 머금고 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같은 해 에스콰이아는 사모펀드 H&Q 아시아퍼시픽코리에 800억 안팎에 매각됐다. 에스콰이어가 반세기만에 새 주인을 맞은 것이다.

매각 후, 다사다난했던 에스콰이어에 훈풍이 잠시나마 불었다. 2011년까지는 매출액 2000억 원을 넘어서면서 선전했지만 2012년 들어 매출액이 급감하며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흔들림은 내부적 부실이 아니라 시대가 변해 소비자가 등을 돌린 것이었다.

2012년 강남 신세계 백화점은 구두매장에서 에스콰이아와 랜드로바를 철수시켰다. 수입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 편집매장 위주로 매장을 재편하기 위함이었다. 강남신세계를 끝으로 에스콰이아와 랜드로바는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무역센터점 등 서울 강남 지역 백화점에서 사라지게 됐다. 국내 제화업계 1위인 금강제화도 2009년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 퇴출된 바 있다. 유행에 민감한 강남지역에서 토종브랜드가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신세계 백화점은 에스콰이아를 뺀 구두 매장에 명품보다 값은 싸지만 디자인이 트렌드 한 실용적인 수입 브랜드를 입점 시켰다.

국내 토종브랜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은 비단 에스콰이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0년 들어 방만 경영과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사랑받던 토종브랜드들이 잇달아 상장폐지 됐다.

쌈지는 회사가 발행한 44600만원규모의 약속 어음 3배를 위변조 신고 했지만 금융결제원 심의 결과 각하돼 최종 부도 처리 된 바 있다. 쌈지는 국내 대표 캐릭터 딸기를 출시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쌈지사운드 페스티벌 같은 문화 예술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아트 마케팅을 통해 화제를 모았다. 뿐만 아니라 인사동에 쌈지 길을 만들었고 몇몇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활발히 신규 사업을 넓혀갔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 확장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잦은 경영진 교체 등으로 영업 손실만 늘어 부도를 낸 바 있다.

33년 역사의 톰보이 역시 쌈지가 상장 폐지된 같은 해, 16억에 달하는 만기어음을 막지 못해 결국 부도처리 됐다.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하는 토종 브랜드

토종 브랜드는 자국민의 문화와 소비 습성, 국내 시장 환경 등을 글로벌 브랜드보다 이해 폭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토종 브랜드 업체들은 오랫동안 자국 소비자를 연구해, 전체적인 흐름을 꿰뚫어 소비자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브랜드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패션업계에는 이밖에도 트렌드와 감각, 창의적인 디자인과 앞선 아이템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야한다는 보다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다. 토종잡화 브랜드들이 회사 창립 시 다잡았던 초심으로 열중하지 않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며 딴 곳으로 눈을 돌려 전문성을 잃은 것도 소비자로부터 외면당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아울러 비싼 외국 명품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취향도 문제다. 국내생산, 국내 브랜드 소비를 부축이며 신토불이를 외치는 건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글로벌화 되며 상권은 더 이상 국내에 머물러 있지 않다. 전 세계가 우리 기업이 나아가야할 상권이 된 것이다.

최근 MCM의 성주그룹 자회사인 성주머천다이징은 영국 대표 리테일그룹 막스앤스펜서(MARKS&SPENCER)와 막스앤스펜서의 국내 독점 판매권을 10년 연장키로 합의한 바 있다. 국내 잡화 브랜드가 나가떨어지고 있는 상황에 반가운 소식이다. MCM은 국내 브랜드의 명품 화를 선도했다. 유명 아이돌 가수가 MCM 백팩을 매고 공항 파파라치 컷에 찍히는 등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 소비자들에게 감각적인 디자인과 고품질의 가죽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의 외면을 관심의 눈빛으로 바꾸는 것은 기업의 노력이 절대적이다.

에스콰이아의 워크아웃 여부에 구두명가 에스콰이어가 반백년의 제화업계의 신화가 되어 역사 속에 남을지 아니면 회생하여 새로이 역사를 그려나갈지 달려있기에 귀추가 주목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