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한 불똥이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론으로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야당의 해임 요구에 더해 여당 내 비주류 인사들 사이에서도 남재준 원장 해임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지난 한 해 동안 줄곧 남 원장 해임을 요구해왔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논란부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정치권 핵 이슈의 중심에 늘 그가 서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그동안 관망해오던 여권 내 비주류 인사들도 이번 증거조작 의혹 사건이 터지자, 더 이상은 묵인할 수 없다는 듯 강하게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여권 내 물밑 최고 실세로 불려온 남 원장이 휘청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남 원장 해임론은 박 대통령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무엇보다 남재준 원장 사퇴론을 둘러싸고 여당 내 주류와 비주류 계파갈등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줄 잇는 비주류 성토 “남재준 사퇴하라”
새누리당 내 비박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이번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한 이슈에서 여당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박근혜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대해서는 긍정 평가했지만, 남 원장에 대해서는 사퇴를 요구했다. 이와 관련, 이 의원은 “간첩이냐 아니냐는 법원이 가릴 문제”라며 “다만 증거 위조 논란에 대해서는 국정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공직자의 바른 자세”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은 “국정원장은 댓글문제,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문제 등 정치적 많은 문제를 야기했다”며 “그때마다 당은 국정원 감싸기에 급급했다. 공당으로서 도가 넘었다”고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이제야말로 국정원장이 사퇴하는 것이 대통령의 유감 표명에 상응하는 처사라고 본다. 증거 위조로 간첩을 만드는 시대는 이미 한참 지났다”며 “시대를 거꾸로 돌리려는 그 어떠한 공작도 국민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국정원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박근혜정부를 역사에 부끄럽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맹성토했다.
이 의원은 앞서 지난해 7월에도 남 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던 바 있다. 남 원장이 이른바 ‘NLL 대화록’을 공개한 이유 때문이었다. 이에, 당시 이 의원은 최고중진연석회의 공개 석상에서 “정국이 매우 험악해진 것은 국정원에 있다. 국정원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만 국회에 던지지 않았어도 여당이 문제를 풀어가려 했는데 그때부터 일이 꼬인 것”이라며 “정치적 혼란의 원인을 제거하려면 국정원장의 자진사퇴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었다.
이재오 의원 외에도 6.4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도 남재준 원장 해임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몽준 의원은 11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이번 기회에 국정원(개혁)을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고 사실 확인이 되는 대로 책임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남재준 원장 사퇴를 의히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정 의원은 “오래전 회의에서도 그렇게 얘기했다”고 명확한 뜻을 전했다.
재선의 김용태 의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남재준 원장이) 박근혜정부를 위해서라도 거취를 잘 결정하기 바란다”며 “지금 이 문제가 국정원장께서 대충 송구하다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정원장 본인이 스스로 잘 판단해 대통령께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결정하길 바란다”고 사실상 남 원장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조해진 의원 역시 “당이 미온적으로 대처해 장기화하면 지방선거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 있다”며 “국정원 본부의 간부까지 연루됐다면 남 원장이 직접 보고받지 않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남 원장 책임론을 제기한 것으로 <한겨레>가 전했다.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정병국 의원도 트위터에 “국정원은 좋은 뉴스로든 나쁜 뉴스로든 뉴스에 나오는 순간 실패한 것”이라며 “국정원이 지난 1년 반 이상을 언론의 중심에 있는데, 이는 국정원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것의 반증이다. 명백히 조사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처럼 비주류 중심으로 남 원장 책임론이 확산되자, 그간 침묵을 지켜오던 당 지도부에서도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12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심재철 최고위원은 “국가정보원의 철저한 쇄신을 위해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책임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심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국정원의 존재 이유인 대공수사 정보역량이 조작될 증거나 갖고 있을 정도라니 큰 충격”이라며 “국정원이 증거위조 사실을 알았다면 묵인 내지 은폐한 것이고,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황우여 ‘先수사-後책임’ 사퇴론 차단
한편 새누리당 내 비주류 인사들의 이 같은 남재준 원장 해임 요구와 달리, 친박계 주류 인사들은 사퇴에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남재준 원장 사퇴 문제를 둘러싸고 여당 내 주류와 비주류간 갈등이 폭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이와 관련, 황우여 대표는 12일 오전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미 대통령께서도 엄정수사와 그에 상응하는 사후조치 문책에 대해 강조한 바 있는 만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는 사전문책론을 펴기보다 조속한 검찰수사를 촉구한다”며 “그 결과를 기다린 후 책임소재에 따라 엄격하게 책임을 논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 현재 당의 입장”이라고 남재준 책임론을 차단했다.
이날 오전 김진태 의원은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지방선거 이기려고 국가최고 정보기관을 흔들어대는 건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이석기는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 날 때까지 무죄추정이라 하면서 남재준 원장은 왜 유죄추정이냐”고 남재준 원장 감싸기에 나서기도 했다.
김 의원은 “이석기는 자기가 한 행동이고, 남재준 원장은 부하가 한 행동”이라며 “진상을 엄중하게 밝힌 다음 거기서 책임이 드러나면 엄중 문책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