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시위진압인가? 책임 회피 수단인가?
경찰청은 지난 15일 이르면 다음달부터 전․의경들의 진압복에 개인 명찰을 착용토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찬성과 반대의 여론이 형성되어 네티즌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말 농민 시위 진압 과정에서 2명의 농민이 사망까지 이르고, 부상자들이 생긴 후 경찰청장 사퇴까지 많은 사건들로 인해 내려진 처방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전․의경들의 진압복에 이름표를 달고 지압을 한다는 건 분명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군인들도 군복에 이름을 달고 생활을 하지만 진압복에 이름표를 다는 것은 더 이상 진압작전 중 과잉진압을 하지 말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개인으로 돌린다는 의도가 보인다. 20대, 첫 시작을 군대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의무를 위해 과잉책임을 지어주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책임 회피밖에 효과 못 봐
경찰청은 진압실명제를 발표하면서 “검토 결과 명찰을 착용하면 책임감 있는 시위진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어 명찰을 달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그동안 헬멧으로 얼굴을 가리고 이름표가 없는 진압복을 입고 ‘익명성’을 전제로 진압작전을 펴다보니 과잉진압을 낳았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 말에 동의를 하려면 많은 정황을 더욱 살펴보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시위 진압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그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의 몫이다. 진압대에게 이름표를 달게 하여 책임에 대한 면피를 해 볼 것은 아닌지 궁금증을 버릴 수 없다.
◆갈팡질팡 경찰청, 여론 눈치 보기
경찰청장 직무대행인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실명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바로 이름이 드러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만큼 번호표를 부착하는 방안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위 진압 요원 실명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필리핀이 유일이며, 필리핀에서도 이름표가 아닌 번호표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 최 차장의 설명이다.
경찰청에 이러한 발표들은 경찰관들 사이에서도 실명제에 대한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경찰관이 “이름이 공개되면 과격한 행동이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을 내자 다른 경찰관은 “진압 대원을 범죄자 취급하는 인권침해 행위”라고 반박했다.
전․의경 부모의 모임은 “경찰이 시민단체들의 장만 따르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지적했으며,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연대는 “시위대가 실명을 이용해 진압 경찰을 인격적으로 모독하거나 위협할 수 있다”며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나라당도 “전․의경들의 신원노출만 강조하는 실명제는 공권력 행사를 스스로 불법 또는 부도덕한 행위로 인정하는 것이고,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을 범죄 집단으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면 인권운동사랑방 박석진 상임활동가는 “공권력을 집행하는 자가 자기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전․의경들 스스로도 익명성 뒤에서 인권침해나 폭력성을 좀 더 쉽게 드러내게 되는 문제도 있기 때문에 경찰제복에 이름이 있듯이 전․의경들도 신분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여론도 경찰들도 이리저리 갈팡질팡한 의견을 내놓고 있어 이번 진압 실명제는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경찰청에서도 발표는 자신 있게 했으나 최종확정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또한 최 차장은 “새 경찰청장이 오셔서 결심해야 할 일이며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송강호 단장은 다시 “내부적으로는 확고하다”는 의견을 내어 실명제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시위 진압 전․의경은 사람도 아닌가?
진압 실명제는 불법폭력 시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상사의 책임을 전․의경에게 떠넘긴다는 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또한 네티즌들은 “명찰을 단다는 발상은 전․의경을 잠재적 범법자로 취급하는 것”이라며 “경찰청이 시위 문화 개선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 채 정부와 시민단체의 눈치만 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경찰 간부는 “불법 시위자가 전․의경의 이름을 외운 뒤 오히려 폭행을 당했다고 우기거나 사이버 테러를 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려의 목소리도 냈다.
만약 진압대에 이름표를 달면 시위대도 이름표를 달며 시위를 벌이진 않을 것 아닌가. 폭력 시위는 방치하고 진압하는 전․의경들의 신원노출만 강조하는 것은 공권력 행사를 스스로 불법 또는 부도덕한 행위로 인정하는 것이고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을 범죄 집단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 경찰청은 “전․의경의 익명성에 따른 돌출행동을 차단하고 책임 있는 시위 대응을 하려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반복되는 경찰의 과잉대응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향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압대 실명제는 좀더 신중하게 처리할 문제이고, 문제점을 분석하여 실행해야 될 것이다. 자칫 경찰청 고위 관직자들의 책임회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일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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