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부활 심상치 않다
‘친이계’ 부활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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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목소리 높이더니…미묘한 ‘분화’ 움직임도

6·4 지방선거를 계기로 새누리당에서는 이른바 ‘친이계’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듯한 조짐이 곳곳에서 관측되고 있어 정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친이계 인사들은 새누리당 지도부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존재감을 적극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중반부터는 친박-친이라는 계파 정치가 본격적으로 되살아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최근 새누리당 내 옛 친이계 인사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 문제에 대해 친이계가 한 목소리를 내고 나서 친박 주류측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진 / 유용준 기자

특히 최근 들어 친이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정원 개혁 등 주요 사안에 대해 강경한 어조로 박근혜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계 일각에서는 “친이계 의원들이 야당 못지않은 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놀라기도 한다.

지방선거 계기로 존재감 과시 시작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경선에 정몽준 의원이 새누리당 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결과가 각 여론조사를 통해 입증되자, 친이계 의원들의 기세는 더욱 등등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어쩌면 친이계 의원들은 그 특유의 ‘전투력’ 때문에 더욱 ‘야성’이 불타오르는 것 같다”며 “투지력 면에서는 오히려 야당인 민주당보다 더욱 강력해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박근혜 정부 들어 유독 친이계 의원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친이 인사들은 이번 정부 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입지를 다질 기회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친이계 의원들이 모처럼 힘을 얻는 이유로는 ▲친이계 의원들의 경우 과거 민주화 운동 투사 출신이 많아 ‘전투력’이 뛰어나다는 점 ▲그동안 친박계 의원들은 ‘보스’인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을 살피는 것이 익숙해 독자적인 싸움 능력이 친이계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을 꼽는다.

이밖에도 ▲박근혜 대통령 집권 초 부정선거·4대강 등 ‘MB 청산’ 이슈가 잠깐 타올랐다가 흐지부지 잠잠해지자 친이계 의원들의 운신과 언행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 ▲차기 대권주자 물망에 오르고 있는 인물들이 친박계보다 친이-비박계에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 등도 주된 이유로 거론할 수 있다.

이처럼 부쩍 목소리를 높이는 친이계 의원들이 최근 친박계와 당내 계파 갈등을 이루며 날선 대립을 보이는 사안은 바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경질 문제다.

이 문제를 두고 친이계 의원들은 “남재준 국정원장을 경질해야 한다”는 초강경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어 정계 일각에서는 “야당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괜찮은 정도가 아닌가”라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서 ‘남재준 경질론’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인물은 바로 자타공인 ‘친이 좌장’ 격으로 꼽히는 이재오 의원이다. 3월 12일 이 의원은 최고중진 연석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데다 정부 여당도 국민에게 보여주지 말아야할 모습만 보이고 있다”며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책임자인 국정원장이 빨리 물러나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남재준 국정원장 물러나야” 일제히 포문 열어
또한 이재오 의원은 “국정원이 사과 성명을 내고 대통령까지 유감을 밝힐 정도면 서류를 조작한 기관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한다”며 “책임은 단순히 송구스럽다가 아니라 자리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남재준 국정원장의 퇴진을 거듭 주장했다.

이날 이재오 의원의 발언이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 의원이 기자들과 만나기 전에 참석한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친박계 지도부를 중심으로 ‘선(先) 검찰수사 후(後) 문책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사전 문책론을 펴기보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린 후 그 책임 소재에 따라 엄격히 책임을 논하는 게 온당하다는 것이 우리 당의 입장”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재오 의원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친박계 지도부의 유보적인 기류를 비판하는 내용의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이 집권 여당인데 그걸 두고 보자든지, 야당에 정치공세를 하지 말라든지, 정쟁에 이용하지 말라고 몰고 나가면 그야말로 증거를 조작했던 사람들을 비호하는 것 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재오 의원뿐만 아니라 친이계로 분류되는 심재철 최고위원과 김용태 의원도 남재준 국정원장의 경질을 촉구하고 있다. 같은 날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심재철 최고위원은 “국정원을 철저하게 쇄신하기 위해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에 대한 책임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날 심재철 최고위원이 한 발언은 새누리당 지도부 내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의 책임론을 처음으로 공식 제기한 것이기 때문에 실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이를 다른 시각으로 보면 친박-친이계 의원들 간 정면대결을 사실상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라 보아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다.

또한 심재철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국정원의 존재 이유인 대공수사 정보 역량이 고작 조작될 증거나 갖고 있을 정도뿐이라니 커다란 충격”이라며 “만약 국정원이 증거위조 사실을 알았다면 묵인·은폐한 상황이며, 모르고 있었다면 무능한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아울러 심 최고위원은 “법원에 제출하는 증거가 위조됐다는 사실은 법질서는 물론 국정원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허무는 것”이라며 “증거 조작 의혹에서 조작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는 어처구니없는 실정”이라고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친이계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도 지난 3월 11일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자리에서 국정원의 서울시 간첩 증거 조작 사건과 관련해 “남재준 국정원장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용태 의원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며 “잘못하면 이거 한방으로 6·4 지방선거에서 속된 말로 정말 ‘훅 가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서울시 간첩 증거 조작 문제는 국정원장이 대충 ‘송구하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본인 스스로 거취를 판단해 대통령께 누가 되는 일 없도록 결정하길 바란다”며 자진 사퇴를 거듭 주문했다.

▲ 친이계가 다시 부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시장 선거 당내 경선 문제를 놓고 미묘한 분화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재오 의원부터 친이계 의원들이 정몽준 의원을 지지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는 김황식 전 총리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시스

‘친이계 단결은 글쎄...’ 미묘한 시각도
이처럼 친이계 의원들이 정부 및 당내 주류인 친박 세력에 맞서 합심하여 ‘어깃장’을 놓는 광경이 속출하고 있지만, 정계 일각에서는 “이번 서울시장 경선이 전개되는 광경을 보면 오히려 친이계 내부에서도 ‘분화’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서서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한 시사평론가는 “서울시장 경선에 나올 것으로 보이는 인물 면면이 거의 모두 친이계 인사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정몽준 의원이나 김황식 전 총리가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여기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친이계 의원들이 서울시장 경선을 계기로 모처럼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면에서는 장점”이라며 “하지만 경선 와중에서 친이·비박계 내에서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단점으로 작용한다”라고 분석했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구주류인 친이계에서 벌써부터 분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어 정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바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고 있는 정몽준 의원과 김황식 전 국무총리 중 어느 편을 지원할까를 놓고서다.

정몽준 의원의 경우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총참모장’이라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또한 김용태·안효대·조해진·이노근 의원 등 대표적 전략통으로 꼽히는 친이계와 정양석·이사철 전 의원 등이 정몽준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황식 전 국무총리의 경우는 상황이 다소 복잡하다. 정치권에서는 김황식 전 총리 출마론이 나오던 당시부터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김효재 전 정무수석·장다사로 전 민정1비서관 등이 배후에 있다”는 말이 널리 돌았다. 주로 친이계 중에서도 호남권 출신과 친이계 원외 인사 등이 김 전 총리를 지원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이른바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김황식 전 총리에게 가있다는 설이 도는 바람에 한층 양상이 복잡해졌다. 친이는 물론 친박까지 가세해 김 전 총리를 지원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또한 김황식 전 총리가 오랜 공직 생활을 한 점으로 미루어 김대중 정부 시절 인사들까지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미묘하게 전개되자 주요 친이계 인사들은 자칫 분열로 비추어질 수 있는 확대 해석을 부쩍 경계하는 눈치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역임한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은 지난 3월 1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몽준 의원이나 김황식 전 총리 모두 친이 진영 및 여권의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동관 총장은 “친박 지도부가 의도적으로 ‘친이와 친박이 함께 연합하여 김황식 전 총리를 돕는다’고 외부에 알리고 있다”며 “이 같은 행위는 구태이자 정치공작적인 행태”라고 비판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 친이계의 분열 조짐을 자제하도록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새누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지원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당 지도부에 항의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명박 전 대통령도 이 같은 분위기를 보고받은 후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친이계가 엄정하게 중립을 지켜 본선에서 이기도록 아름다운 경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적극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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