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윤수 전 의원 “소신대로 박근혜 후보 지지했다”
[인터뷰]이윤수 전 의원 “소신대로 박근혜 후보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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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결위원장까지 지냈지만 집 한 칸 없이 사글세 살이

희수(喜壽)를 바라보는 노정객의 눈빛은 격정을 토로할 때는 지난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형형(炯炯)했다. 담담한 어조로 54년에 걸친 긴 정치 역정을 강물이 흘러가듯 그렇게 풀어냈다. 대하(大河)가 폭포를 만나 소용돌이치듯이 때때로 열변을 토하다가도 회한에 사무친 대목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도도히 흐르는 장강처럼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3월 17일 오후 봄볕이 국회의사당 잔디밭에 졸린 듯 내려앉을 때 의사당 경내에서 한강 둔치 쪽에 위치한 헌정회 사무실 응접실에서 <시사포커스>가 이윤수(李允洙) 전 국회의원(76)을 만나봤다.

▲ 이윤수 전 의원은 정통 정당 민주당 이념을 지키기 위해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정신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고 술회했다. 사진 : 김경복 기자

지난 2012년 10월 15일은 한국 정치사에 작지만 큰 획을 그은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이윤수, 안동선 등 21명의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전직 민주당 출신 의원들이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누리당에 입당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이윤수 전 의원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였다.

3선 출신의 민주당 중진이었던 이윤수 전 의원 등 21명은 이날 입당 성명서에서 “국민대통합은 이제 시대적 사명이요, 정신이다. 갈등과 대결, 반목으로 얻어내려는 정치권의 표 구걸 형태는 막을 내려야 한다”며 “21세기 대한민국은 새로운 리더가 열어가야 한다. 우리가 지난 과거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다.

결국 2개월 후에 치러진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1577만 3128표(득표율 51.55%)를 얻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과반수 득표도 달성하였다. 문재인 후보는 1469만 2632표(득표율 48.02%)를 얻어 108만 496표 차이로 2위에 머물렀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지지에 나선 배경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시오.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나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위기상황에 놓이게 될 것 같아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게 됐습니다.

나는 내 정치신념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을 지켰습니다.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나를 위시해서 박상천, 정균환 등 몇몇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열린우리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쪽으로 간 사람들은 모두 당선됐지만 잔류한 우리들은 한 사람 남김없이 모두 낙선했습니다.

그 당시 열린우리당으로 가지 않은 것은 너무 좌측으로 당 이념이 기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무현(전 대통령)이 이끄는 그 정당이 좌경화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례를 들어 임수경을 전국구로 내세우지 않았습니까.

민주당은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정통 정당입니다. 나는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누구입니까. 노무현(전 대통령)의 직속 아니었나요. 그래서 나는 박근혜 후보를 당시 지지한 것입니다.

나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많이 당했습니다. 그 당시 감옥에도 갔다 오고, 고문으로 무릎도 상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근대화를 이룬 업적은 평가해야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박 후보를 지지한 것입니다”

이윤수 전 의원은 권노갑 전 의원과 함께 소위 ‘동교동 1세대’다. 20대 초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뒤 민주화 투쟁에 나섰고, 제9대 국회 때 첫 출마를 하게 된다.

차지철 등과 함께 후보로 나선 제9대 총선에서 4위, 정치정화법에 묶여 10,11대는 내리 출마를 못하다가 영화인 출신 이대엽 전 의원 등과 맞붙은 제12대 총선에서 3위를 했다.

제13대 때는 2위, 그리고 마침내 제14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아 연이어 3선을 했다.

현역시절 환경노동위원장과 예산결산특위위원장, 그리고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지내면서는 정치의 전성기를 맞는다.

이윤수 전 의원의 정치 역정(歷程)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DJ 충신’ 시절 일화가 아직도 정가에서 회자되고 있다.

‘돈 대신 몸으로 철저히 때운다’는 신조의 이 전 의원은 70년대 겨울 어느 찬 여관방의 이불을 자기 체온으로 덥혀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모시는가 하면, DJ의 구두를 코트 속에 품어 따뜻이 해 놓을 만큼 정성이 극진했다는 얘기다.

-이러한 비사는 사실입니까? 사실이라면 이에 대한 이 의원님의 소감은 어떠신지요?

“사실입니다. 나는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1972년 겨울이었다고 봅니다. 나는 DJ를 경호하는 경호실장이었고, 대통령 후보 유세 중 남원에 들렀는데 여관도 없었고, 호텔도 없었습니다. 상황이 딱한지라 지금은 타계한 양 모 의원이 자신의 집 사랑채를 내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자려는데 군불을 때도 방이 차가웠고, 그래서 내가 이불을 덥힌 것입니다. 구두도 부뚜막에 놓았는데 가까이 놓으면 탈까봐 멀리 놨더니 온기가 배지 않아 내가 직접 체온으로 따뜻하게 한 것이죠. 이를 직접 본 한 신문기자가 그대로 보도를 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은수저 얘기도 있습니다. DJ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면서 혹시 불상사가 생기지 않을까 항상 그 분이 식사하기 전에는 기미(임금에게 올리는 수라나 탕제 같은 것을, 상궁이 먼저 먹어 보아 독이 들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를 은수저로 봤습니다. 차를 마실 때도 항상 내가 먼저 점검을 했었죠.”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생사고락의 세월을 함께 했던 ‘DJ의 사람들’도 이제 뿔뿔이 흩어져 서로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우선 가신(家臣)그룹인 동교동계 일부 인사들은 지난 18대 대선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하며 ‘결별’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은 정기적으로 이희호 여사와 함께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DJ 묘역을 찾아 참배하는 일정을 4년째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대선 당시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영입된 뒤 현재 대통령 직속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경재·안동선 전 의원 등 일부 범동교동계 인사들도 작년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을 지지하며 새누리당 진영으로 넘어갔다.

청와대 공보수석 겸 대변인을 지낸 박선숙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친정’인 민주당을 탈당, 대선 예비후보로 나섰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 캠프에서 활약했다.

여의도 내에는 아직 ‘DJ의 사람들’ 상당수가 건재하다.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은 19대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동교동계 막내’격인 설 훈 의원을 비롯해서 이석현·심재권·배기운 의원 등도 비서 등을 지낸 ‘DJ 맨’이고, 박준영 전남지사가 3선 도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DJ사람의 일원으로서 ‘DJ 맨’들이 우리 정치사에 끼친 영향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DJ 맨들은 그들이 특출 나서 정계에 이름을 날린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DJ를 충성스럽게 보좌하다 보니까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어렵게 탄압을 당하다 보니 결속력이 그만큼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조직력도 생겼죠. 모두들 충성스러웠고, 반대급부로 DJ의 후광효과 덕도 봤다고 봅니다. 아직도 정계에서 DJ 사람들이 많이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의원은 평생 집 한 칸 제대로 마련해지 못했다. 국회의원 재산 신고 때는 299명 의원 가운데 영예로운(?) 꼴찌를 했다. 지금은 성남에서 사글세 살이를 하고 있다. 수입이라고 해봤자 65세 전직의원에게 주는 연로지원금 120만원과 노령연금 8만 원 등이 고작이다. 이렇게 생긴 돈은 집세 주고 공과금 내면 매번 거의 바닥이다. 이 전 의원은 국회의원 청렴상을 수번 수상했다. 최우수국회의원상 등도 수상했다.

▲ 이윤수 전 의원은 가진 재산은 전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꼴찌였지만 청렴도는 으뜸이었다. 사진 : 김경복 기자

-주위 소문에 청렴하시다는 찬사가 자자합니다. 국회 예결위원장까지 역임하신 분이 조촐하게 지낸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에 대한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어렵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남 돈 받아서 정치한 적도 없습니다. 그저 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받아 활동했을 뿐입니다.”

이 전 의원은 애써 말을 아꼈다.

-일부 지역 언론에 최근 동정난을 보면 이 의원님께서는 주위의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해 틈틈이 금일봉을 전달하고 계시는데…

“15년 이상 1년에 두 번에 걸쳐서 경로당 등을 방문해 금일봉을 전하고 있습니다. 헌정회에서 다행히 지원해주고 있고, 저도 좀 보태고 해서 이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한 때는 3선의 중진 의원으로서, 한국 정계의 핵심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옛 시절을 회상하시면서 이제 원로 정치인으로서 한국의 정치 발전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항상 정치인들은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한다고 봅니다. 당리당략을 떠나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정치에 임한다면 분명 잘 되리라 믿습니다. 국민들께서도 주권자로서 정치인들을 준엄하게 심판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정치인들도 정신을 바짝 차릴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한마디로 국민들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또 하나 미국이나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나이가 80, 90되는 고령층들도 정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그런 풍토가 조성돼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15선 의원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정치체제와는 다르긴 합니다만.

저는 우리나라 정치 앞날에 대해 낙관합니다. 비록 경제, 문화, 체육 등 분야보다는 뒤지긴 했지만 잘 되어나가리라 전망합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사실 지역갈등, 계층갈등, 세대갈등 등을 겪어오고 있습니다. 모두들 상생, 화합의 정치를 외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십시오.

“사실 우리 정치사에서 동서 갈등은 너무나 뿌리 깊고 오래됐습니다. 영, 호남으로 분리돼 얼마나 갈등이 심했습니까. 이젠 충청권이 인구 증가와 함께 부상하면서 지역갈등구조가 보다 복잡해졌습니다.

▲ 이윤수 전 의원은 가진 재산은 전 국회의원 299명 가운데 꼴찌였지만 청렴도는 으뜸이었다. 사진 : 김경복 기자

지역간, 세대간, 계층간 갈등은 우리 정치인들이 대의를 앞세우는 마음으로 나라와 우리사회, 국가를 염두에 두고 대승적인 정치를 펴게 되면 잘 해소되리라고 낙관합니다.”

-구 민주당 소속 인사들의 박근혜 후보 지지는 당선에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이 같은 공헌도에 비해서 배려는 좀 부족하지 않느냐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조건부로 그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한 것이기에 반대급부로 무엇을 바라진 않습니다.”

-현역시절에도 학력과 관련해서 말이 좀 있었는데…

“학력이 고졸이어서 때로는 서운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DJ는 종종 그랬습니다. ‘너는 서울대 나온 사람보다도 낫다’고요. 2002년 예결특위위원장에 지명되자 당시 이 모 의원 등 소위 일류대 출신 의원이 전문성이 부족하다며 임명에 반대했습니다. 그 때 그랬죠. ‘이순신 장군이 사관학교 나와서 나라를 구했고, 세종대왕이 서울대 나와서 성군된 것이냐’며 정면 돌파했습니다. 이 말은 정가에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저는 현역 의원시절에 부족한 학력을 메우기 위해 보좌관을 전문지식으로 무장된 박사급으로 채용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졸업장 여부가 정치자질의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정식 학위는 아니지만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등 국내 몇 개 대학원에서 정치에 필요한 공부를 했고 조지워싱턴 대학원에서도 6개월 간 수학했습니다.”

-무척 건강해 보이십니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시는데 현역 복귀에 대한 복안은 없으십니까.

“술, 담배 등은 하지 않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합니다. 당뇨가 좀 있긴 합니다. 정계 복귀는 생각이 없습니다.”

-정계에 몸을 담고 계셨던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기뻤던 일 등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1997년 12월 김대중 선생이 제15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것입니다.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룩한 것입니다. 평생 모셔 온 분이 뜻일 이뤄 그 때 저도 제 필생의 염원을 달성하였습니다.”

-끝으로 하실 말씀이 계신다면…

“정치하는 사람들은 항상 국민과 국가를 염두에 두고 정치에 임하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정도 정치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한다면 우리나라 정치발전과 함께 국운도 융성해지리라 확신합니다.”
[시사포커스 / 김남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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