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김 사건, 재판 과정에서 국가의 은폐 행위 2001년도까지 이어져
16개 인권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반인도적 국가범죄 공소시효배제운동 사회단체협의체'(이하 공소시효배제협의체)는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안국동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심포지엄을 열어 수지김 사건 판결의 의미와 공시시효 문제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공소시효배제협의체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6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새사회연대가 간사 단체를 맡고 있다.
이날 자리에는 '수지 김 사건'을 담당했던 전해철 변호사와 김희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한나다랑 인권위원장)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패널들은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 이주영 의원은 "장세동씨가 처벌되지 않은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다"고 비판했다.
시효 지나 진실 밝혀져도 처벌 불가능
현행법상 형사소송의 경우 살인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의 공소시효는 15년. 이 기간을 경과하면 진실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책임자 처벌이 법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진상 규명 자체가 힘들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적용돼 국가로부터 배상이나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해철 변호사는 '수지김 사건의 판결의미-민사상 소멸시효를 중심으로'란 제목의 발제문을 통해 수지 김 사건의 전말을 공개, 재판 과정에서 국가의 은폐 행위가 2001년도까지 이어져왔음을 강조했다.
전 변호사는 "명백히 밝혀진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에도 불구하고, 현행 민사상 소멸시효 제도가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구제를 가로막고 있다"며 "개별사건의 법률상 청구에 있어서 소멸시효를 배제시키는 일은 쉽지 않은 만큼 입법을 통해서 반인권·반인도 국가범죄를 다루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이덕우 변호사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살인 내지 이에 준하는 행위를 한 반인도적 국가범죄는 진정소급효의 예외가 되기 때문에 이들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헌법적인 요청이다"며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 등은 직접 살인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살인범을 비호하고 피해자를 간첩으로 조작하는 등 불법성이 정도가 크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소급 적용해야 한다"며, "반인도적 범죄, 반인권적 국가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배제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석연 변호사(민주노동당 인권위원회 부위원장)는 "국가기관은 범죄를 조사해서 진실을 밝히고 범인을 처벌할 권한을 부여받았는데,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사건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고 있다"며 일반범죄와 반인도적 국가범죄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김희수 위원은 "살인, 폭력치사 등으로 생명권을 침해한 범죄에는 모두 공소시효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석연 변호사는 "현행 공소시효를 3∼5년 증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범죄 공소시효 적용 말아야"
패널들은 "일반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지나치게 짧다"면서 "국가의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그리고 방청석에 있던 유가족들은 "가해자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친다면 처벌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은 아예 조사 및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진상규명조차 할 수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7월 수지 김 유가족들이 국가로부터 42억 손해배상금을 받은 것은 사실상 민사상 소멸시효를 배제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피해자가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거나 불법행위를 한날로부터 5년. 수지 김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따르면 소멸시효가 한참 지난 셈이다.
참고로 수지김 사건은 지난 87년 1월 홍콩에서 남편 윤태식씨가 김옥분씨(일명 수지김)를 살해했으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오히려 수지김을 북한 공작원으로 조작하여 해외 상사원 납치 공작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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