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 원대 벌금과 세금 등을 내지 않고 해외로 도피성 출국해 호화생활을 하던 전직 대기업 그룹 회장이 귀국 후 벌금 대신 하루 5억 원짜리 구치소 노역을 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주인공은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 허 전 회장은 500억여 원의 탈세를 지시하고 10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07년 말 불구속 기소됐던 바 있다. 항소심까지 가는 재판 끝에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재판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로 도피해버렸고, 최근에서야 인터폴 수사 등에 의해 귀국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귀국 후의 상황이 더 논란이 되고 있다. 수백억원대 탈세와 횡령을 하고도 50여일만 노역생활을 하면 모두 없던 일이 돼버릴 상황이기 때문이다.

허재호 전 회장은 항소심 판결이 나온 이튿날인 2010년 1월 22일 뉴질랜드로 출국했고, 이후 뉴질랜드에서 영주권까지 취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항소심 판결까지 받아놓고도 그가 어떻게 해외로 도피할 수 있었느냐는 시선이 많지만, 법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벌금이나 집행유예 판결이 있다하더라도 신병을 구속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법원의 허가만 있으면 해외로 출국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명백히 도피성 출국을 했다는 데 있다. 검찰이 허 전 회장에 대해 봐주기를 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해외 출국금지조차도 봐주기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카지노 드나들며 벌금 낼 돈 없다?
우선 허 전 회장 근황을 최초 보도한 <한겨레>에 따르면, 광주지검은 2007년 11월 허 전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며 출국금지 조처를 풀었다. 그리고 검찰은 2008년 징역형과 함께 벌금 2550억원을 구형하며 이례적으로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이에, 광주지법은 1심에서 허 전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는 형이 더 낮아졌다.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한 것.
그런데 이조차 허 전 회장에게는 우스운 일이었다. 재판 결과를 받아들고서도 거리낌 없이 해외로 도피해버렸고, 이후 몇 년이 흘렀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사법부가 허 전 회장 도피를 방조한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다. 광주지검은 2012년 초 벌금 수배와 함께 인터폴 수배까지 요청했지만, 최근 여론이 악화되자 국세청 등과 함께 징수 특별팀까지 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 전 회장의 귀국이 결정되는 과정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측은 허 전 회장이 뉴질랜드 영주권을 취득했다는 이유로 강제 구인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고, 일각에서는 허 전 회장이 영주권을 취득했지만 국적은 여전히 한국이라는 점을 들어 검찰의 적극적 소환의지를 문제 삼기도 했다. 검찰이 허 전 회장의 범죄 기록과 한국 법에 의한 처벌 기준 등을 뉴질랜드 이민청에 공문서로 보내면 영주권 취소 등 추방 절차가 충분히 진행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허 전 회장은 곧 귀국 절차를 밟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귀국 후 그가 벌금 미납액 249억원을 내는 대신 구치소에서 하루 5억원씩 감액되는 노역을 살게 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허 전 회장 측은 “벌금을 낼 형편이 안 돼 노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인데, 그렇다하더라도 하루 5억원씩 감액해준다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노역장에 유치될 경우 환산하는 금액에 대한 규정이 없고, 법관의 재량으로 금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빚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8년 당시 탈세 등의 혐의로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경우, 노역장 하루 유치 환산금이 1억1000만원이었다. 따지고 보면, 허 전 회장에 대한 유치 환산금은 이건희 회장의 5배에 달하는 셈이다. 일반인들과 비교했을 때는 가히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반인들의 유치 환산금은 통상 5만원이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의 허 전 회장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이 같은 봐주기보다 더 큰 문제는 허 전 회장이 그동안 해외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5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에서 호화생활을 하며 카지노 게임장 출입까지 빈번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허 전 회장이 찾는 카지노 게임장은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VIP전용 게임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이 신문이 단독 입수한 동영상을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 전 회장 측근 인사는 “허 전 회장이 바다낚시를 좋아해 한번에 200만원쯤 드는 요트 출조는 간 적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카지노 도박은 하지 않는다”고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전 대주그룹 관계자 또한 “무슨 호화생활이냐”며 “눈으로 봤느냐”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한겨레>가 전했다.

◆검찰도, 법원도 이상하다
한편, 이 같이 허 전 회장에 대한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는데 대해 민변 광주전남지부 부지부장 김상훈 변호사는 ‘검찰도 이상하고 법원도 이상한 사건’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김상훈 변호사는 18일 오후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에서 “제가 어떻게 지엄하신 검찰을 알겠느냐”며 이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김 변호사는 또, 허 전 회장 근황과 관련해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뉴질랜드 북섬에서 최고급 아파트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며 “거기에 있는 노른자위 땅을 팔아서 상당히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밝혔다.
법원이 노역장 유치가 최장 3년임에도 불구하고 허 전 회장에 대해 49일만 선고한데 대해서는 “3년이면 1000일 정도 되는데, 그러면 대부분 250억을 1000일로 나눠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그런데 이 재판만큼은 1심에서 1일 노역을 2억5000으로, 그리고 항소심에서는 다시 5억으로. 그래서 결과적으로 50일정도만 노역장 유치를 물리겠다는 것이 1, 2심의 공통된 견해였다”고 의아스러워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검찰이 당초 1심에서 벌금 1천억을 구형하면서도 선고유예를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해서는 “500억 탈루의 2배에서 5배니까 법이 정한 최하한인 1천억을 구형하면서 이례적으로 선고유예를 구형했다”며 “그러니까 벌금을 일단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검찰은 원래 수사를 개시하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며 “그러니까 범죄의 중대성이나 엄벌의 필요성, 이런 것을 스스로 인정해서 구속영장을 청구했던 검찰이 1심 선고를 앞두고 구형을 하면서는 1천억에 대해서 벌금 선고유예를 구하는 것은 참 기이한 구형”이라고 거듭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