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통합신당 창당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친노 문재인 의원과 비노 안철수 의원이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며 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 과정에서부터 두 사람은 감정이 틀어졌었고, 최근에도 신당 창당 과정에서 ‘친노 배제론’이 제기되며 두 사람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게 됐다.
여기에 더해 신당의 당권을 놓고도 갈등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노 입장에서는 항간에 떠돌던 ‘친노 배제론’이 현실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당의 당권을 잡아야 할 상황이며, 안 의원 입장에서는 ‘도로 민주당’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당의 당권을 잡아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vs 안철수 의원의 갈등이 단순히 구원에 따른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文 ‘기초선거 무공천’ 흔들기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이슈로 서로에게 한 방씩 펀치를 날렸다.
문재인 의원은 24일 부산지역 언론사 정치부장단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최근 당내 논란으로 다시 부상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문제를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원은 “기초선거 무공천은 정치개혁을 위한 공약이었지만 상대방인 새누리당에서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사가 없는 상태에서 민주당만 무공천을 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 결과가 우려된다”며 “지금 상황에서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확정하는 것은 정치적 결단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문 의원은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공천의 필요성을 당원들에게 설득하고 의견을 묻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기초선거 공천 폐지’는 이미 당론으로 정해진 것은 물론, 새정치연합과 통합의 연결고리 역할까지 했다. 따라서 ‘기초선거 무공천’은 신당 창당의 핵심 명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는 안철수 의원의 야심찬 ‘새정치’ 실험작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 안철수 의원은 지난 21일 무공천 논란과 관련해 “현장에서의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서로 어려움을 나눠서 짊어지고 가기로 이미 약속했던 사안”이라고 재검토 불가 입장을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김한길 대표도 같은 날 “정당공천 폐지는 정당과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라는 국민들의 오랜 명령”이라며 거듭 재검토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에 쐐기를 박았다.
신당의 주축인 안철수-김한길 공동창당추진위원장이 이 같이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음에도 문 의원이 재검토 입장을 시사했다는 점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전면적 반기까지는 아니지만, 비노 창당세력과 견해를 달리하면서 당내 무공천 반대파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아가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명분을 앞세운 신당의 연결고리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신당이 김한길-안철수 중심의 비노계로 쏠리는 것을 견제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당장 문 의원 측 인사들은 “무공천을 재검토하자는 것이 아니다”며 “당내 논란이 커지고 있어 명확한 당론 절차를 통해 소모적 논쟁을 막자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라고 논란을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당내에서는 무공천으로 인해 지방선거에 패배한다면 안철수 의원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 상황이다. 앞서 정동영 상임고문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이 과연 안 의원이 얘기했던 새 정치인지 회의적”이라며 “무공천 결정으로 서울시 현역 구청장 20명이 대부분 낙선하고, 그 여파로 서울시장까지 놓치게 되면 안철수 의원 역시 그 정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재인 의원은 ‘무공천을 재검토하자’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무공천’에 따른 문제성은 지적해 놓은 셈이다. 야권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정동영 고문의 지적처럼 문재인 의원도 할 말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안철수 의원에게 직격탄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난 4일,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번 합당은 안철수세력을 섞어 민주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세력을 오그라뜨리려는 물타기”라며 “하지만 친노세력들은 이번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음이 입증되는 그때를 기다리고 그때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의원에 대한 대대적 반격에 나서 당권 재장악을 시도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지금 문재인 의원의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재검토 시사 발언이 지방선거 이후 ‘대대적 반격’을 위한 포석 쌓기로 해석되고 있는 이유다.
◆安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잊혀 지지 않아”
공교롭게 같은 날 안철수 의원도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슈를 두고 문재인 의원을 겨냥한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안 의원 측에서는 기존의 발언을 되풀이한 것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최근 ‘친노 배제론’ 등이 불거지며 문재인 의원과의 관계에 시선이 집중돼 있던 터라 해석의 깊이가 남달랐다.
안 의원은 24일 제주도당 창당대회에 앞서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지난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위해 국회 표결까지 갔던 상황을 지적했다.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안 의원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분을 토해내기도 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게 된 최초 제안자가 문재인 의원이었다는 점에서 안 의원의 이 같은 분은 문 의원을 정면으로 향했다.
이와 관련, 안 의원은 “제가 등원한 지 1년이 안 된 상황에서 지금도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며 “6월 초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NLL 관련 발언을 했는지 안했는지 정상회담록 원본을 공개해서 살펴보자는 국회 본회의 표결이 붙여졌었다”며 “저는 그때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일은 근본적으로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것을 제대로 규명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우선 그것부터 해결한 다음에 다른 이슈로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는 두고두고 국익을 해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만약 이것이 통과된다면 앞으로 외국 정상들이 우리나라 대통령과 비공개로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반대표를 던졌는데 어처구니없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그 당시 양당에서 강제당론으로 통과되는 모습들을 보았다. 국회 본회의장 보면 전광판이 있는데 그때 반대하는 사람은 몇 명 안 됐다”며 “그 순간이 정치하면서 매일매일 잊혀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이에, “국민들도 원하지 않고,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데 통과되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없구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이런 일들이 안 생기게 막을 수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고 깨닫는 순간이었다”며 “그때 순간이 정말로 잊혀 지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해 말했다.
안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문재인 의원을 겨냥한 비판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시각이었고, 일부에서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발언으로 미루어 친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당시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친노 의원들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주도했고, 이들과 생각이 달랐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을 앞두고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갈등이 지방선거까지 봉합된 채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지 신당을 향한 불안한 시선들이 늘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