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장애인이 피해자·가해자로 관련된 여러 유형의 성범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장애인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된 이후 범죄 사실에 대한 신고 건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그렇지만 막상 기소율은 그다지 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자 범행 전후 진술 어려워 신고율 比 기소율↓
피해 사실 드러나도 ‘쉬쉬’하며 묵인하는 경우 많아
가해자, ‘합의하에 한 것’…경찰 수사 진행 어려워
장애인 대상 성범죄의 경우 아동 관련 성범죄와 더불어 특히 죄질이 나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가 범행 전후에 저항 의사를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설령 범죄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피해 사실을 정확하게 진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애인 대상 성폭력 건수 급격히 증가
이에 대해 한 성상담 관련 전문가는 “장애인을 성범죄 대상으로 노리는 가해자들은 바로 이런 근원적 취약점을 십분 이용해 본인의 비뚤어진 성욕을 채우려하기 때문에 더욱 악질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가는 “아울러 이러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바람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다른 사례에 비해 유독 여러 남성이 연루되어 조직적으로 자행되는 끔찍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전문가는 “또한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심신미약 등의 이유로 일반인에 비해 가해자가 범행을 목적으로 꼬드기는 금품이나 물건 등의 유혹에 의심이나 심각한 고려의 과정 없이 바로 응하는 경향이 많은 편이라 그만큼 성범죄 피해 사례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최근 경찰청이 집계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발생 건수를 연도별로 보면 △2010년 321건 △2011년 494건 △2012년 656건 △2013년 852건으로 나타나 가히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성폭행 등 성범죄를 당한 장애인 피해자 가운데에는 지적장애인인 경우가 약 70%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부쩍 향상된 시민의 신고 의식과 경찰의 검거 의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신고 건수와 검거율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향상된 의식 덕분에 가해자가 검거되더라도 실제로 가해자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는 그리 녹록치 않은 난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게 외면하기 힘든 현실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장애인 대상 성범죄는 신고가 원활하고 신속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도 피해자들의 의사 표현이 일반인에 비해 서투르고 논리성이 약하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 관계자는 “가해자는 바로 이런 점을 십분 악용하여 ‘서로 합의한 뒤에 한 일’이라고 무조건 우기는 경우가 다반사라 경찰 수사 진행이 만만치 않다”고 개탄했다. 바로 이러한 애로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과자 사준다’며 유인해 성폭행
지난 3월 24일 대검찰청은 ‘아동 및 장애인 대상 성폭력범죄 진술분석 강화 방안’을 한 달 동안 시범 실시하기로 했다. 이 방안은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있어 진술의 신빙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장애인이나 아동 대상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진술분석관이 즉시 현장을 찾아가사건 초기부터 적극 참여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렇게 공권력 차원에서 사건 방지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이기 때문에 장애인 대상 성범죄에 대한 법정 선고 형량도 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지적장애여성을 고의적으로 유인한 뒤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이 징역 3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3월 21일 서울남부지법 제12형사부(부장판사 박종택)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모(40)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울러 재판부는 오 씨에 대한 정보를 4년 동안 공개·고지하도록 했다.
오 씨는 지난 2010년 6월 14일 오전 7시 30분 경 서울 성동구 지하철 5호선 신금호역 부근에서 강남구에 위치한 한 복지관으로 가고 있던 지적장애 2급인 최모(23·여)씨에게 접근했다. 최 씨의 목에 걸린 장애인 명찰을 본 오 씨는 최 씨를 불러 세운 다음 과자와 우유 등을 사주며 환심을 산 후 근처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저질렀다.
결국 오 씨는 경찰에 붙잡혔지만 재판에 이르기까지 검찰 조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오 씨 또한 장애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항변, 즉 “합의 아래 성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다.
여기에 수사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피해자 최 씨의 진술 내용이었다. 최 씨 역시 검찰 조사 및 재판 과정에서 누가 먼저 모텔로 가자고 제의했는지 분명치 않은 진술을 했다. 심지어 최 씨는 오 씨에게 친밀감을 계속 보이기도 해 성폭행 혐의를 적용시키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이처럼 논쟁의 여지가 다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재판부는 “오 씨가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최 씨가 성에 대한 관심으로 피고인에 대한 호의를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정상적인 의미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오 씨는 ‘최 씨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성관계 후에야 알게 됐다’고 주장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초기에 최 씨가 장애인이라는 점을 명시한 복지관 명찰을 차고 있었으며 겉으로도 지적 상태가 떨어진다는 점이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에 주장에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이 때문에 오 씨는 최 씨가 정상적 판단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며 “이 점과 더불어 오 씨는 정신장애를 가진 최 씨가 자기 자신을 보호할 힘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악용해 성폭행을 저질렀으므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오 씨는 이미 여러 건의 실형 전과가 있는데다 누범기간 중이었는데도 자중하지 않고 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며 “이와 아울러 오 씨는 피해자를 위한 회복조치 등을 취하지 않았기에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유죄 선고 이유를 판시했다.
장애인이 성범죄 가해자인 경우도 빈발
또한 지난 2월 2일 광주에서는 가출한 정신지체 장애인을 모텔로 유인해 한 달 동안 무려 열다섯 차례나 성폭행 및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로 정모(36)씨가 경찰에 붙잡히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 씨는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광주 북구 중흥동에 위치한 어느 모텔에서 정신지체 2급 장애인 A씨를 성폭행하고 본인 소유 차량 등지에서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씨는 가출한 뒤 갈 곳이 없는 A씨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겠다”며 모텔로 유인한 다음 추악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이 가해자로 성범죄에 연루되는 경우도 점차 증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울산시 울주군에 위치한 장애인 작업장에서 남성 장애인들이 여성 장애인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해온 혐의가 드러나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2일 울산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울산의 한 장애인 작업장 내 전·현직 여성 근로자 네 명으로부터 “남성 작업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가해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2월 25일 “이 작업장에서 일하는 여성 장애인들을 상대로 성추행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수사에 돌입했다. 수사 결과 피해 여성들은 모두 지적장애인이며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의 경우는 지적장애인 두 명과 지체장애인 세 명 등 모두 다섯 명으로 드러났다.
이들 남성 장애인은 연령이 3~40대이며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 장애인 작업자 네 명을 성추행했으며 심지어 한 명을 때린 것으로 밝혀졌다.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2006년부터 2012년 사이에 걸쳐 성추행을 지속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으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 수사를 통해 정식으로 확인된 성추행은 피해 여성마다 한 건씩으로 밝혀졌다. 성추행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동료들과 함께 사업장이 마련한 야유회를 다녀오다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등 1~2차례씩 성추행 피해를 겪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경찰은 “가해 남성들이 피해 여성들의 신체 부위를 만지는 방법으로 성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곧 남성 혐의자들을 불러 추가 조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또한 경찰은 현재까지 조사를 통해 밝혀진 사례 말고도 성추행이나 성폭행 사실이 더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모을 계획으로 알려져 사태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아울러 경찰은 작업장 시설관리자들이 성추행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적절한 보호 조처를 했는지, 또한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피해자나 보호자들을 상대로 회유한 사실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집중적으로 수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지난 2012년 사업장 측에서 작성한 상담일지 내용에 한 여성이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가해자가 견책 징계를 받은 사실로 미루어보아 관리자들도 이미 성추행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시사포커스 / 최효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