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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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리공생 착시에 빠지면 유취만년(遺臭萬年) 될 수 있어

정권과 기업, 특히 재벌과의 관계는 어찌 보면 상리공생(相利共生) 사이다. 특히 우리나라 정경유착의 역사를 보면 그렇다.

정권이 들어서면 기업을 길들인다. 무기는 돈줄과 세금이다. 돈줄을 죄면 기업은 고사(枯死)한다. 물을 대주지 않으면 나무가 말라 죽듯이 그렇게 스러져 간다. 세금폭탄을 맞아도 배겨날 수 없다.

여기에다 기업들은 정권에 불경죄를 져선 안 된다. 이게 최고로 강력하다. 불경죄를 지으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의 비운을 맞게 된다.

오래 전일이고, 많이 알려진 사례지만 모 재벌 회장이 VIP의 호출 시간에 대지 못했다. 바로 그 기업집단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세상이 많이 깨이면서 불경죄 항목은 사라졌다. 그러나 돈줄 죄기와 조세권은 여전히 기업 길들이기 도구로 유용한 듯하다.

돈줄, 즉 금융은 아직도 관치형태의 흔적이 남았다. 지난 시절엔 관치금융을 통해 고우면 자금줄을 대주고 미우면 막아 버린다. 자금에 목마른 기업들은 정권에 밉보일 수 없다. 그래서 비자금 등을 조성해서 알아서 기어야 했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 재벌들이 전적으로 자기 잘나서 큰 것이 아니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큰돈을 정부가 특혜성으로 많이 지원해 준 덕도 있다. ‘불균형 성장론’이란 그럴 듯한 경제발전정책의 바람을 타고 지원을 많이 받았다. 그러다 사업이 잘 안되면 ‘대마불사’라고 해서 또 구제금융으로 막아줬다.

다음으로 조세정책이다. 기업들이 잘 보이면 세제 혜택을 많이 준다. ‘조세특례제한법’을 교묘히 피해 가면서 조세도 감면해주고 거둔 세금을 다시 환급도 해준다.

밀월관계는 불안하다. 잘 나가다 자칫 정권이 열 받으면 칼자루를 잡고 엄청난 위력의 검을 뺀다. 세무조사다. 세무조사 대상이란 소문만으로도 기업은 치명상을 입는다. 기업이미지, 신인도가 일조일석에 곤두박질친다.

세무당국이 검을 빼들었다. 이번엔 칼끝이 연예기획업계라고 한다. 수위 업체가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이 되자 다른 연예기획사들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조사에는 기업과 거물자산가의 역외탈세를 조사하는 국제거래조사국과 특별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조사4국이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근래 몇 년 동안 한류 훈풍을 타고 연예기획사들이 사세를 확장하는데 주안을 두고 당국이 본격적으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빼든 셈이다.

이번 국세청 세무조사 소식을 접하고 정권과 기업, 특히 재벌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정권은 5년으로 유한하다. 그러나 기업(going-concern)은 계속된다. 많은 정권이 흘러갔지만 재벌들은 3대, 4대까지 유장히 이어지고 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그래서 정권은 기업과 상리공생을 추구할 때 정권이기주의를 염두에 둬선 안 된다. 국민경제를 항상 유념해야 한다. 세월을 등에 업은 측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나고 보면 기업에게만 유리한 편리공생(片利共生)관계가 돼 버리기 십상이다. 정권이기주의만 추구하다 정권이 끝나면 자칫 유취만년(遺臭萬年)이 될 수 있음을 명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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