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동성애를 위한 인권개선방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9일 발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인권 NAP) 권고안에는 중요성으로 보나 시급성으로 보나 우리 사회가 오래 전에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지만 그동안 공론화가 미흡했던 사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인권위가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인권정책 방향의 청사진을 그렸다"고 설명한 것이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권고안 중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를 다룬 내용이 눈길을 끈다. 국가기관에서 이런 이들의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의 인권 개선방안
성적 소수자를 다룬 권고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권고안은 성적 소수자의 인권 개선을 위해 7가지 핵심 추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성적 소수자가 재화, 용역, 시설을 이용하는 경우나 정보이용권 및 정보 접근권 등에서 차별을 해소하고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내포하고 있는 군형법,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군인사법 시행규칙 등 관련 법령의 폐지 또는 개정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권고안은 △성전환자 및 동성 간 성폭력 피해자를 강간 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강간죄의 구성요건 중 객체와 범죄행위의 내용을 보다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방향으로 형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법제도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커녕 명시적으로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정하고 있는 형법 조항(제297조)과 성적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이 담긴 군형법(제92조)이 그 대표적인 예다.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 구성요건으로 객체는 부녀로, 범죄행위는 성교행위로만 한정하고 있어 사실상 동성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에 대해서는 강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고 있다.
군형법에서는 동성 간 성행위를 '계간(鷄姦)'이라고 표현함으로써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권고안은 지적하고 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는 국제기준이나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적 고려에서 우리나라는 매우 뒤처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지난 1997년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암스테르담 조약' 을 체결했고, 특히 프랑스는 2004년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가장 강력하게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유럽 인권재판소도 2003년에 영국 공군이 동성애자의 장교 임용을 거부한 사건에 대해 동성애자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결했고, 그 후 영국 공군은 동성애자도 장교로 임용하기 시작했다.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성적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하면 이번에 인권위원회가 인권 NAP 권고안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 보호방안을 제시한 것은 오히려 다소 뒤늦은 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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