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뽑히지 않는 ‘보이스피싱’, 여전히 기승
뿌리 뽑히지 않는 ‘보이스피싱’, 여전히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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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사소한 분야로 침투...‘악질화’

경찰의 강력한 단속이 지속되는데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는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수법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어 피해건수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에 집단으로 합숙 생활을 하면서 경찰의 단속을 피하고 대출사기를 일삼아온 일당이 경찰에 붙들렸다. 특히 이들 일당은 최근 은행권이 고객 편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이른바 ‘무매체 계좌’를 악용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세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가 새로운 제도 도입에 발맞춰 ‘진화’하고 있는 사례로 꼽힐만하다.

▲ 경찰의 강력한 단속 및 수사 의지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 범죄는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뉴시스

보이스피싱, 나날이 ‘진화’ 세간에 충격 줘
범죄로 들어온 돈을 중간에서 갈취하기도
사소하고 세세한 곳까지 침투 교묘한 수법

지난 4월 8일 경기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대출을 빙자해 돈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로 보이스피싱 사기단 총책 곽모(35)씨 등 모두 일곱 명을 구속하고 전화유인책 이모(33)씨 등 두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곽 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씨티캐피탈입니다. 신용불량자도 2천만 원까지 대출 가능합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허위 메시지였다.

‘무매체 계좌’ 등 최신 금융 서비스 악용

이후 이 문자메시지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온 함모(44·여)씨 등 243명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면 보증보험료 등을 먼저 입금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한 사람 당 200~300만원을 받아 총 6억5,000만 원 상당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이들 일당은 고향 선후배 사이로 주로 해외에 콜센터와 서버 등을 둔 기존 대출사기 조직과는 달리,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광주광역시 신도시 한복판에 위치한 한 아파트를 보증금 1천만 원에 월 120만 원을 내고 임차해 함께 지내며 달리 피해자들을 끌어 모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 일당은 주변 의심을 적극적으로 피하기 위해 아파트 현관문을 이중 철제문으로 설치하고 가정집으로 위장하기 위해 낮에도 커튼을 치고 지내며 절대 바깥에서 두 사람 이상 같이 다니지 않는 등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행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 때문에 이들 일당은 이웃으로부터 전혀 의심을 받지 않고 지금까지 마음껏 사기행각을 벌여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대포통장을 활용하는 대신 피해자에게 통장이나 현금인출카드가 필요 없는 ‘무매체 계좌’를 개설하도록 한 뒤 계좌번호·비밀번호·거래실행번호 등을 넘겨받아 돈을 인출하는 신종 수법을 적극 활용했다.

▲ 불법으로 대량 유출된 고객 개인정보를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한 실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어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뉴시스

이 때문에 이들 일당은 기존 보이스피싱 범죄에 주로 사용되어온 대포통장 없이도 그동안 물증을 거의 남기지 않고 거액을 갈취할 수 있었다. 여기서 무매체 계좌란 통장이나 카드가 없어도 ATM/CD기에서 입·출금 및 송금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들 일당을 검거한 경기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최근 들어 금융기관의 무매체 계좌 거래가 각종 신종 범죄에 이용되고 있다”며 “더 이상의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보이스피싱 범죄로 들어온 돈 갈취하기도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심지어 보이스피싱 사기 범죄 집단을 속이고 따돌려 금품을 갈취한, 이른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속담이 절묘하게 들어맞는 사건도 발생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지난 4월 7일 안양만안경찰서는 범행에 이용될 줄 미리 파악하고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통장을 판매한 뒤 피해자들로부터 입금된 돈을 중간에서 가로챈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로 이모(20)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2월 15일부터 3월 10일까지 시중 은행에서 범행에 사용할 본인 명의의 계좌 세 개를 사전에 개설한 뒤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통장 양도' ‘통장 매입’ 등을 검색하거나 본인이 직접 “통장을 팝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 씨는 이 글을 보고 접근한 여러 보이스피싱 사기단에게 통장 세 개를 판매했다. 그 뒤 이 씨는 11차례에 걸쳐 사기단이 범행을 통해 거둬들인 1,400여만 원을 중간에서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미리 통장에 미리 입·출금 알림 서비스를 신청한 뒤 보이스피싱 사기단들에게 통장을 양도한 다음 보이스피싱에 속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입금된 피해 금액을 중간에서 먼저 잽싸게 가로챈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경찰은 “이 씨가 판매한 대포통장에 보이스피싱으로 입금된 돈은 원래 총 2,000여만 원이지만 이 씨가 가로챈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600만원의 경우는 사기단이 먼저 인출하는 바람에 이 씨가 전액을 가로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4월 4일 부산 사상경찰서는 음란 화상채팅을 몰래 녹화한 다음 이를 미끼로 협박하는 이른바 ‘몸캠 피싱’ 등의 수법을 적극 활용해 수십 억 원을 가로챈 혐의(성폭력특례법 위반)로 중국인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유모(34)씨를 구속하고 일당 한 명을 불구속 입건시켰다.
경찰에 따르며 유 씨 등은 지난해 4월부터 약 10개월 동안 화상채팅 중 확보한 음란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거나 허위로 조건만남 등을 시켜주겠다는 미끼를 내걸어 이에 속은 남성들이 보낸 예약금을 송금 받자마자 달아나는 등, 지금까지 총 9,000여 명으로부터 무려 53억 원 상당을 받아 챙긴 혐의다.

▲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행에 동원된 통장 명의자 등 32명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전자금융거래법위반으로 입건하기 위해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뉴시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미리 녹화된 미모의 조선족 여성의 나체사진이나 음란 동영상 등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보여주며 다수의 남성들에게 “일대일 화상채팅을 하자”고 신청했다.
이들 일당은 이러한 유혹에 넘어간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에게 옷을 벗고 음란한 행동을 하도록 요구해 유도한 다음 동영상을 녹화했다. 그런 다음 이들 일당은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이들 일당은 ‘몸캠 피싱’뿐만 아니라 조건만남 등을 미끼로 내세우며 남성을 속여 돈을 가로채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피해를 입은 남성들이 쉽게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점을 적극 악용했다.

한편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과 연계해 송금책 역할을 맡았던 국내 폭력조직 세 곳을 적발해 검거했으며, 이후 유 씨 일당을 추적해 결국 붙잡는데 성공했다. 경찰은 지난 3월 26일 자신에게 인터폴 수배가 내려진 사실을 모른 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던 유 씨를 검거했다.

불법 유출된 개인정보 활용한 범죄 사례도 나타나

또한 최근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불법으로 대량 유출된 고객 개인정보를 보이스피싱 범죄에 악용한 실제 사례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어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1일 경기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무사증 관광비자 등으로 국내에 머물며 내국인 개인정보를 이용해 보이스피싱 사기를 저지르고 입금 받은 돈을 중국 총책에게 송금한 혐의(사기)로 김모(21·중국 국적)씨 등 네 명을 구속하고 현금 약 1,164만 원과 대포통장 및 대포카드 30개를 압수했다.

김 씨 일당은 지난 3월 중순 서울 강남구 및 관악구 일대에 설치된 ATM기에서 최모(46)씨 등 국내 피해자 22명이 보이스피싱에 속아 대포통장에 입금한 4,400여만 원을 인출해 중국에 있는 총책의 계좌로 돈을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일당은 인출책,·송금책·통장모집책 등으로 역할을 체계적으로 분담한 다음,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쉽지 않은 저신용자들에게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등급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수수료를 송금해라”고 속였다.

여기에 혹한 피해자들은 수수료 명목으로 일인당 20~500만여 원을 대포통장으로 송금했다. 이들 일당은 입금되자마자 돈을 가로챘다. 이들 일당은 일단 돈이 입금되면 국내에 있는 김 씨 등에게 곧장 알려 대포통장과 연결된 대포카드로 재빠르게 인출하도록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이 같은 수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로 서울 강남구 코엑스나 관악구 서울대입구 전철역 주변의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왔던 것으로 드러나 세간의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이들 일당은 ATM기에서 현금카드로 송금할 경우 한번에 100만 원 밖에 보낼 수 없는 것을 미리 알고 불법으로 취득한 내국인 340여명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활용해 ‘무통장 입금’ 수법을 적극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경찰은 이들 일당으로부터 압수한 은행통장과 카드 등을 확인한 결과, 이들이 소지하고 있던 카드 및 은행통장이 타인 명의의 계좌인 것을 확인했다. 이에 경찰은 보이스피싱 범행에 동원된 통장 명의자 등 32명의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전자금융거래법위반으로 입건하기 위해 수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경찰의 강력한 단속 및 수사 의지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 범죄는 쉽게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특히 최근 보이스피싱 사기단 조직은 변화하는 각종 제도나 정책, 정치 이슈나 사건·사고 등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피해자들을 상대로 범행을 저지르는 등 갈수록 지능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부고·돌잔치·예비군이나 민방위훈련 미참 등을 미끼로 내걸어 이를 보고 방심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송금 받아 가로채는 등 수법이 갈수록 정교하고 악질화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범죄심리 전문가는 “최근 보이스피싱 범죄는 일반인이 ‘설마 이것까지 사기수법은 아니겠지’라고 여기는 일상의 사소하고 세세한 분야까지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며 “문자 메시지 내용을 보고 무심코 연결하기 전에, 혹시 ‘이것이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확실하게 가지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시사포커스 / 최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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