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관련 범죄자들이 전자발찌를 끊거나 송수신기를 버리고 달아나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자발찌 제도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전자발찌 제도의 문제점은 두 가지로, 하나는 끊어지지 않는 발찌를 만들 수가 없다는 것과 관련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전자발찌 제 이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발찌 끊기 쉬운데 ‘인권’ 문제 탓 재질 강화 어려워
전자발찌 착용자 12배 늘고 관찰직원은 1.5배 그쳐
전문가 “전자발찌 과신…근본적 문제 해결이 우선”
전자발찌 제도는 특정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 착용을 강제하는 법안이 2005년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2008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전자발찌는 발목에 차는 부착장치와 GPS가 내장된 휴대용 위치추적장치, 집에 거치하는 재택감독장치 등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발목의 부착장치에서 발신되는 전자파를 위치추적장치가 지속적으로 감지해 재택감독장치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구조다. 이 구조를 통해 중앙관제센터에서 전자발찌 착용자의 신원 및 현재 위치, 부착장치 및 위치추적장치 휴대 여부를 곧장 확인할 수 있다.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는 항상 위치추적장치를 휴대해야 하는데, 만약 위치추적장치에서 약 1미터 이상 떨어지거나 발찌를 절단하면 경보음이 발생하고 관제센터에 이 사실이 전달된다. 그리고 해당 감시 대상자를 감독하던 보호관찰소나 보호관찰관에게도 문자 메시지가 전송, 감시 대상자의 신변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전자발찌’ 성범죄자, 연일 ‘도주’
그러나 최근 전자발찌를 자르고 달아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사는 정모(31)씨는 자택에서 전자발찌를 자르고 달아났다가 이틀 뒤인 지난 4일 오전 6시 경 시민의 제보로 강북구 송중동 한 모텔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정 씨는 전과 16범으로 특수강간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복역한 뒤 2009년 출소했다. 이후 전자발찌 관련법에 따라 작년 8월부터 전자발찌 부착을 명령받았다. 기간은 5년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경찰 조서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갑자기 발찌가 울려 여자가 도망갔고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 뒤로는 아무 생각이 안 나서 발찌를 잘랐다”고 진술했다.
닷새 뒤인 7일에는 서울 광진구에서 전자발찌 착용자 박모(39)씨가 휴대용 위치추적장치를 버린 채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광진경찰서에 따르면, 성폭행 등 전과 13범인 박씨는 자양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송수신기를 버린 채 도주했다.
이날 새벽 순찰을 하고 관리사무실로 돌아온 경비원 A씨는 관리사무실에서 잠에 빠져 있는 박씨를 발견하고 “왜 여기서 자느냐”며 실랑이를 벌였다. 이후 박씨는 위치추적장치가 들어 있는 겉옷을 관리사무실에 그대로 둔 채 도주했다. 박 씨는 지난 2006년 미성년자 강간 드응로 징역 1년 8개월을 복역한 뒤 작년 8월 3년동안의 전자발찌 착용 명령을 받았다.
이처럼 연이어 전자발찌 착용 성범죄자들이 감시망을 뚫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성범죄자 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자발찌를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잘라낼 수 있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2일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정 씨가 사용한 도구는 주방용 가위였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쉽게 구입해 사용하고 있는 가위로 전자발찌를 어려움 없이 끊어낸 것이다. 지난해 10월 법무부에 따르면, 성범죄자 전자발찌 착용 제도가 도입된 2008년 이후 전자발찌 훼손 사례는 총 50회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착용 인원의 1% 안팎이 절단을 시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법무부는 초기 실리콘 재질로 만들어졌던 전자발찌를 내부는 철심, 외부는 플라스틱으로 바꿔 내구성을 강화했다. 2012년에는 스테인레스 스틸 강판을 적용했다. 그러나 계속된 재질 강화에도 불구하고 주방용 가위에 맥없이 끊어진 것이다.
전자발찌제, 두 가지 문제점
8일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도에 처음 이 제도가 시행을 한 이후에 사실은 내구성은 점점 강화되는 추세였다”며 “처음에는 단순히 실리콘 등으로 만들었다가 빈발하기 때문에 안에는 철심을 두고 바깥에는 플라스틱을 두어서 내구성이 좀더 강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보다는 안에 철심이 있어서 조금 내구성이 강화됐고 작년에는 아예 더 강도를 높여서 스테인리스 스틸로 더 강하게 만들었지만 결국은 내구성 문제가 성범죄 경력자 생활에 일반적인 생활은 어느 정도는 보장이 돼야 되지 않느냐라고 하는 인권 문제와 같은 고려 때문에 아주 강력한 수갑과 같은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그런 한계점이 분명히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는 보전을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중간 영역에서의 내구성을 찾다보니까(현재의 재질이 된 것)”이라며 “그 전자발찌보다 더 강한 재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절단을 하게 된다면 사실은 주방용 칼로도 사실은 가능하게 되는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즉, 수갑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 훼손 자체를 하지 못하게끔 만들 수 있지만 인권 문제 등이 있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법무부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법무부는 전자발찌 제도의 도입 목적이 성범죄자의 재범방지와 사회복귀에 있기 때문에 전자발찌 착용자의 생활을 무리하게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는 성범죄자 4명 중 1명은 전자발찌 훼손 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나 관련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8일 새정치민주연합 이찬열 의원에 따르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18개의 보호관찰소에서 관리하고 있는 전자장치 부착 성폭력범죄자와 전자감독 담당직원 등 909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8~9월까지 설문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전자발찌를 자르거나 훼손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5.2%가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저 그렇다’는 16.2%, ‘느끼지 않았다’는 58.5%였다.
이 의원은 “전자발찌 착용이 범죄를 온전히 억제해준다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전자발찌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자발찌와 위치추적 장치를 일체형으로 만들어 크기를 소형화하고 나아가 GPS 기능까지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문제는 보호관찰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8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은 전과자는 지난해 2555명이었다. 2008년 전자발찌가 처음 도입됐을 때 205명에 불과했던 점과 비교해보면 12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반면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보호관찰 직원 수는 2008년 971명에서 2013년 1409명으로 1.5배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해 전자발찌 착용자를 비롯한 전체 보호관찰 대상자는 17만 5321명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보호관찰 직원 1명 당 124명을 담당해야 한다. 보호관찰 담당자들은 전자발찌 착용자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업무를 담당하는데 경보가 울리면 전화로 확인한 뒤 현장에 출동해야 한다. 또 월 4회 이상 면담을 통해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주거지와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맡은 바 업무가 적지 않은데 담당 인력조차 부족한 것이다.
전문가 “근본적 문제 해결해야”
한편, 전문가들은 전자발찌 제도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9일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사신문>과의 통화에서 “전자발찌를 자를 수 있고 없고를 따지기 전에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자발찌를 아무리 자를 수 없는 재질로 만든다 하더라도, 기대한 만큼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면서 “전자발찌라는 것은 그 사람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고, 그 위치에서 벗어났는지 아닌지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행위나 행동을 감시하는 기능은 아예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폭력은 위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위치 내에서 성폭력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감시하는 게 중요한데 지금은 그런 기능이 없어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전자발찌는 성폭력 범죄 방지를 위해 생긴게 아니고, 미결구금자들의 도주나 감시를 위해 생긴 것”이라며 “성폭력범죄 방지와 전자발찌는 잘못된 만남”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자발찌는 병원으로 얘기하면 입원기간 끝나고 통원치료 받는 기간에 나쁜 짓을 할 수가 있으니까 감시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보호관찰관의 수가 부족해 1:1 감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자적인 기계로 감시를 해보자는 것”이라며 “보조적인 수단으로는 물론 오케이지만 지금은 전자발찌를 채워놓고 성폭력 방지할 수 있는 것처럼 과신하고 있고 호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범죄자를 치료하는 기능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자발찌를 채우면 그 외에 추가적으로 성충동, 충동 조절 능력 등 부족한 부분에 관한 정신적인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전자발찌를 이용한 감시가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보호관찰관 인력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치료를 위한 인력 확충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보호관찰기구와 경찰 간 공조 체계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미국 같은 선진국의 경우엔 보호관찰관과 경찰관이 합동 순찰을 나선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보호관찰관의 수가 단순히 늘어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만약 범죄자가 위험지역에 서성대고 있다고 한다면, 보호관찰관이 거기까지 달려가는 게 빠르겠나, 아니면 가까이 있는 순찰차와 순찰 도는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하는 것이 빠르겠나”라며 “보호관찰관의 수를 경찰관의 수만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조체계를 공고히 하는게 중요하다. 기존에 있는 기관끼리 공조가 되어서 정보를 철저하게 공유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며 “예방활동은 물론이고, 비상 시 제압도 더 빨리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치료가 우선이고, 보조적 장치로 전자발찌를 사용하면서 감시감독과 예방을 위해 경찰과 공조체계를 꾸리자는 것”이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