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인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주로 남성인 상대방이 이별을 인정하지 못한 채 앙심을 품고 폭행·살인·강간 등 다양한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남녀 사이서 벌어지던 이별 범죄, 갈수록 ‘조직화’ 양상
“이별범죄자, 충동조절장애·간헐적 폭발성 장애 앓는다”
“‘싫다’ 의사 표명하고 이별 통보 받으면 마음 다스려야”
최근 들어 연인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강력 범죄가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경찰청에서 집계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5대 강력범죄자’ 가운데에는 범행을 당한 피해자와 애인 관계인 경우가 무려 9,912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어지자’는 말에 ‘청부 폭행’
요즘 들어 이 중에서 특히 이른바 ‘이별 범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별 범죄란 애인으로부터 ‘헤어지자’고 통보받은 이가 이러한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과정에서 이성을 잃고 애인을 상대로 물리적 폭행이나 성범죄,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는 끔찍한 경우를 의미한다.
최근 들어 이 같은 ‘이별 범죄’의 양상은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 주로 남녀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던 이별 범죄가, 요즘 들어서는 청부 폭력 등 ‘조직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일산에서 구속된 자영업자 A씨의 경우가 바로 이 같은 사례에 해당된다. 일산경찰서는 ‘헤어지자’는 내연녀에게 앙심을 품고 동네 후배에게 거액의 돈을 건네어 폭력을 행사토록 한 사주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A(59)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와 아울러 경찰은 A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뒤 A씨의 내연녀에게 폭력을 저지르라고 지시하고 실제로 폭력을 행사한 B(42)씨와 C(41)씨를 동일한 혐의로 구속했다. 또한 경찰은 달아난 공범 D씨의 행방을 뒤쫓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B씨 등 일당은 이별 통보를 받고 앙심을 품은 A씨의 부탁으로 지난 2013년 9월 25일 오전 8시 25분 무렵 일산동구 중산동 길거리 한복판에서 A씨의 내연녀 E(42)씨를 마구 폭행하고 흉기로 엉덩이 부위를 두어 차례 찌른 뒤 달아난 혐의가 드러나 세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또한 경찰 조사 결과 이번에 일어난 폭행 사건은 동네 선후배 사이에 이루어진 이른바 ‘다단계’로 이루어진 청부 폭행으로 드러났다. 특히 A씨에게 부탁 받은 B씨 등은 청부 범행을 완료한 뒤 약 8천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A씨로부터 지급 받아 서로 나누어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사귀던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앙심을 품고 납치를 저지른 20대 남성이 범행 1시간 20여분 만에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 1월 10일 대구 동부경찰서는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폭행하고 강제로 차에 탑승시킨 다음 끌고 다닌 혐의로 A(2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 11시 59분 무렵 대구시 동구 율하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여자친구 B(24)씨를 만나 본인의 승용차에 억지로 태운 뒤 달성군 논공읍 부근으로 끌고 간 혐의를 받고 있다.
이별 통보 애인 납치해 ‘추격전’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당시 B씨와 두 달 동안 교제를 해온 사이였는데, 사건 발생 3일전 결별 통보를 받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납치 과정에서 B씨에게 흉기로 위협을 가하고 폭력까지 휘두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A씨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통해 추격을 해오자 도주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A씨와 경찰은 무려 15분 동안 위험천만한 도심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달아나던 A씨는 달성보 인근 네거리에서 경찰이 차단막 용도로 배치한 순찰차와 1톤 트럭을 잇달아 들이받고 결국 붙잡혔다. 납치를 목격한 주민 신고가 들어온 지 1시간 26분 만이었다.
이때 A씨의 승용차는 앞부분이 크게 파손되었으며 경찰차에 탑승했던 경찰 세 명도 부상을 입었다. 피해자 B씨도 타박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만약 시민의 신속한 신고가 없었다면 자칫 우려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처럼 이별 관련 범죄는 수그러들 기미 없이 날로 흉악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최근 들어 법원에서는 끔찍한 이별 범죄를 저지른 피고인에게 엄한 형량을 선고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지난 2월 6일 청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부장판사 이관용)는 함께 살던 애인이 이별을 통보하자 앙심을 품고 살해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 된 L(35·여)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여 징역 5년을 선고했다.

L씨는 지난해 8월 16일 오전 2시 경 충북 청주시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에서 동거남 B(43)씨가 “헤어지자”고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하자 이에 화를 참지 못하고 전깃줄로 애인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피고인 L씨의 범행은 B씨의 유족이 받았을 충격과 고통을 고려하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그러나 피고인이 우울증 및 알코올 의존증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감안해 형량을 정하는 데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난 2월 19일 울산지방법원은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살인죄 등)로 기소된 A(22)씨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의심했으며 이 와중에 여자 친구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각하게 다투었다.
이에 견디지 못한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통보하자 A씨는 이를 참지 못하고 흉기를 휘두르고 목을 졸라 살해한 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울러 A씨는 구치소 변호인 접견대기실에서 변호사를 기다리던 중 옆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재소자와 말다툼을 벌이다가 마구 폭행해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힌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간 점에서 피해자의 유족이 엄벌을 탄원하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다만 A씨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점과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애인의 동료까지 피해 입기도

또한 이별 통보에 격분해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여자친구의 동료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한 20대 남성이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전원 유죄 의견을 받고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1월 24일 춘천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정문성)는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뒤 여자친구의 동료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기소된 이모(20)씨에 대해 징역 2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 방식으로 열린 이 씨에 대한 공판에서 배심원 9명은 한명도 빠짐없이 유죄 의견을 내놨다. 한편 양형에 대해서는 징역 15년 2명·징역 20년 6명·징역 25년 1명으로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이 씨는 한국전력공사 입사 동기인 김모(여·당시 20세)씨와 지난해 3월부터 연인 사이로 발전해 교제했다. 그런데 이 씨는 김 씨로부터 성격 차이 등의 이유로 이별 통보를 받자 범행을 결심했다.
이 씨는 같은 해 9월 16일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에 위치한 한전 사택 앞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로 김 씨를 서른다섯 차례나 찔러 살해했다. 아울러 범행 현장을 목격한 김 씨의 동료인 임모(23·여)씨에게도 흉기를 휘둘렀지만 임 씨가 방문을 굳게 잠그는 바람에 미수에 그쳤다. 이 씨는 이 두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찰은 최종 변론을 통해 “피고인은 미리 범행을 계획했으며 피해자를 만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살인미수’와 관련된 단어를 검색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은 “임 씨가 김 씨를 계속해 찌르는 피고인 이 씨를 말렸으며, 현관 밖에서 한전 직원들이 여러 차례 문을 두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35차례에 걸쳐 김 씨를 흉기로 찔렀기 때문에 도저히 우발적인 범행이라고 볼 수 없다”고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범행 후 정황과 행태 등을 종합하면 죄질이 매우 나쁘다”라며 “피고인은 피해자를 만나러 가던 중 ‘살인미수’를 인터넷에 검색하고 흉기를 미리 준비했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 동료들이 피해자들을 도와주려던 과정에서도 35회에 걸쳐 피해자 김 씨를 찔렀으며 임 씨 또한 목소리가 정상적으로 나오지 않아 향후 수술이 필요한 점, 피해자들이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죄질은 나쁘지만, 피고인이 만 19세 미만의 어린 나이인 점과 다섯 살 때 부모를 잃었으며 중국인인 계모 밑에서 성장한 배경, 아울러 범행 사실을 모두 자백한 점 등에 비추어 형량을 정했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이별 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상당수 범죄심리학자들은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를 비난하며 반사회적 수준의 공격성을 표출한다는 점이 이별 범죄의 주된 특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 범죄 심리 전문가들은 “이별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충동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 정도에 비해 과다한 분노를 표출하는 간헐적 폭발성 장애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한다.
이들 전문가는 “이별 범죄가 발생할 위험을 근본적으로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애인이 유독 폭력적 성향을 보이거나 지나치게 집착을 보이는 경우 ‘싫다’는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해야 하며 연인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확실히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이별을 통보 받은 입장에서는 치솟는 화를 폭력이 아닌 생산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가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