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증거조작’ 수사 종결…불씨 여전
‘국정원 증거조작’ 수사 종결…불씨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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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책임론’ 두고 여야 공방 격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한 검찰 조사 결과, 국정원이 문서를 조작한 점이 드러나며 연루된 5명이 사법처리 됐다. 그러나 사법처리된 5명은 3급 이하의 국정원 직원 4명, 중국 국적의 협조자 1명에 불과하고 사법처리 여부가 관심을 모았던 남재준 국정원장과 서천호 국정원 2차장 등 ‘윗선’은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이에 야권에서는 날선 비난을 쏟아내고 있고, 여당은 재판을 지켜보자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해당 사건이 6.4지방선거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엿보이는 가운데, 여당 일각에서도 ‘남재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한 검찰 조사 결과, 국정원이 문서를 조작한 점이 드러나며 연루된 5명이 사법처리 됐다. 그러나 남재준 국정원장 등 ‘윗선’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와 관련해 여야는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뉴시스

검찰, 증거조작 연루 5명 사법처리…‘윗선’은 무혐의
野 “특검‧남재준 책임론” 與 “재판 지켜봐야” 온도차
여당 내부에서도 “국정원장은 물러나야”…내홍 조짐?

14일,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 과장과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를 재판에 넘기고 대공수사국 이모 처장과 주선양총영사관 이인철 영사를 불구속 기소, 주선양총영사관에 파견된 국정원 소속 권모 과장을 시한부 기소중지하는 등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된 5명을 사법처리했다. 그러나 사법처리 여부가 관심을 모았던 남재준 국정원장과 서천호 국정원 2차장 등 ‘윗선’은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수사결과 발표 이후,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은 사의를 표명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바로 수리했다. 다음 날인 15일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에 허점이 드러나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돼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또다시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같은 날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최근 중국화교 유가강 간첩사건과 관련하여 증거서류 조작 혐의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된 것을 머리숙여 사과드린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남 국정원장은 “이 위중한 시기에 국정원이 환골탈태해서 새로운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기회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야당, 특검‧남재준 책임론 들고 나와

야당은 즉각 총공세를 폈다. 새정치연합 안철수 공동대표는 15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열린 첫 고위전략회의에서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환골탈태’, 낡은 제도를 고쳐서 새롭게 바꾸는 것을 뜻한다”며 “마치 나비가 고치를 뚫고 날아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그러면서 “나비 애벌레가 번데기가 될 때, 스스로 실을 풀어서 자신을 보호하는 집을 만든다”며 “그리고 그 집을 뚫고 밖으로 나갈 때 비로소 나비가 된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집을 스스로 뚫고 나갈 때 환골탈태가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따라서 환골탈태는 사즉생이다. 죽어야 사는 것”이라며 “대통령께서는 말씀하셨던 대로 환골탈태 하셔야 한다. 국정원장을 해임하고 전면적인 국정원 개혁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국민적 합의는 이미 이뤄져 있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국정원 개혁의 결단을 촉구한다”며 “지금 국정원의 인사쇄신과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대통령께 무거운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한길 대표도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국민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하면서도 계속 국정원장의 자리를 유지하겠다는 것에 대해 어떤 국민도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대표는 이어, “국정원은 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에서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는 ‘리바이어던’(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면서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대통령이 이번에도 국정원장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대통령 스스로가 기어코 그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김 대표는 “간첩증거조작사건은 헌정질서를 농락한 명백한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그런데 검찰은 면죄부 수사에 머무르고 말았다. 이제는 마땅히 특검을 통해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고 특검 도입을 강하게 촉구했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몸통은 손도 못 대고 깃털만 뽑았다. 면죄부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더는 특검을 미룰 수 없다. 특검만이 답”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남 원장 해임촉구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 야당은 특검과 ‘남재준 책임론’을 들고 나와 거센 맹공을 퍼붓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대표는 “몸통은 손도 못 대고 깃털만 뽑았다”며 “특검만이 답”이라고 강조했고, 안철수 대표는 “정원장을 해임하고 전면적인 국정원 개혁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뉴시스

새정치연합 이윤석 수석대변인은 14일 국회 브리핑에서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 부끄러운 수사 결과”라며 “특검의 필요성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 수석대변인은 “검찰은 국정원의 윗선은 수사조차 못하는 비굴함을 보였다. 국정원은 털끝하나 건드리지 못한다고 자백한 셈”이라며 “조작된 증거를 활용한 담당검사에게 면죄부를 줘,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도 성명을 내고 “검찰이 꼬리자르기 수사로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며 “정치적 중립과 직무상 독립을 포기하고 권력의 시녀임을 드러낸 날”이라고 주장했다.

새정치연합 박범계 의원은 15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이것은 꼬리가 몸통으로 바뀐 수사”라며 “이것을 조사한 검사들도 스스로 부끄러운 수사라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즉,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과 국정원 개혁을 촉구하면서 특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與 “재판 지켜봐야”

반면, 여당은 야당과 온도차를 보였다. 더는 정쟁을 벌이지 말고 차분히 재판을 지켜보자며 검찰의 수사 결과를 수용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또 국정원 개혁에는 동의하면서도 ‘남재준 책임론’과 관련해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검찰 수사결과, 중국 공문서 조작에 국정원 직원이 직접 가담했고 검사들이 증거가 조작됐는지 몰랐다고 한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라며 “국정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오각성하고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원내대표는 1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남재준 원장 책임론’과 관련해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미 사과를 했고, 국정원 개혁을 이뤄내야 하는 만큼 사퇴는 안된다”며 “국정원장은 국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해임안을 낼 수 없다. 정쟁의 소재로 삼으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14일 새누리당 함진규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지금은 여야 모두 객관적으로 재판 과정을 지켜볼 때”라며 “특검 운운하며 이번 사건을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고, 나아가 사건의 본질을 훼손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함 대변인은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권은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는 속담을 깊이 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15일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 김재원 의원은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제가 판단하기로는 검찰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실체적 진실에 완벽하게 접근한 것”이라며 “검찰수사 자체가 실체적 진실에 부합하는 결과가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은 공정한 판결로 더 이상의 국정 혼란을 막고 정치권이 민생에 매진할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정원도 협조할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자정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또 “여당이 선거에 불리한 상황이므로 정보기관의 수장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는 전혀 수긍할 수 없다”며 “선거용 국면돌파나 정치적 책임을 묻는 상황에서 남재준 원장을 활용하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재준 책임론’ 두고 여권 내홍?

한편, 새누리당 지도부까지 나서 남재준 원장을 감싸는 것과는 다르게 여권 안팎에서 ‘남재준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남재준 사퇴 파문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 내홍으로 번지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여당은 ‘남재준 지키기’에 나서 책임론에 선을 그었지만, 여권 안팎으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남재준 사퇴 파문으로 여권 내홍으로 번지게 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뉴시스

이재오 의원은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국정원장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책임을 통감하는 것은 물러나는 것이다. 국민에게 송구한 것은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고 즉각적 사퇴를 촉구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환골탈태는 국정원장이 물러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어떻게 집권당 154명 의원 중에 한 명도 국정원장은 물러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을 하지 않는지, 내 생각이 틀린 것인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의원은 이어, “도대체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눈치를 봐야지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다”며 “울고 싶다”고까지 덧붙여 말했다.

이 의원은 트위터에 연이어 올린 글에서도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된다. 잘못된 관행이라면 국정원이 지금까지 한 사건은 모두 증거를 조작했다는 것”이라며 “이 잘못된 관행을 뿌리 뽑으려면 이번 기회에 책임자는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덧붙여 “나는 이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국정원장의 사퇴를 주장하는 것도 잘못된 관행을 이 기회에 뿌리 뽑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비대위원을 지낸 이상돈 교수는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관행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쭉 해 왔다는 것 아니냐”면서 “우리가 아는 건 이번의 한 건이 그야말로 굉장한 중대 일탈 아니냐. 그래서 국민들이 분개했는데 이것이 그냥 관행처럼 있어왔다면 문제 또한 심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정원과 남 원장에 대한 신뢰는 이미 다 무너진 것 아닌가”라며 “이런 경우에는 기관장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교체해야 그 기관의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이 교수는 남 원장이 개혁 의지를 밝힌 데 대해서도 “국정원이 사과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더 이상 깎아낼 뼈가 있는지도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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