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한지 보름여 기간이 지나면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국내외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IMF·세계은행 춘계 회의에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른바 ‘찰떡 궁합’의 긴밀한 팀플레이를 펼쳤다.
또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2일 미국 현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통일 문제와 관련해 중앙은행도 할 역할이 크다”며 “한은 내 통일과 관련한 화폐통합과 경제통합 등 다양한 경제 이슈를 연구하는 전담부서를 신설할 것”이라고 밝혀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취임한지 불과 보름여밖에 되지 않은 이상 이주열 한은 총재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속단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통화금리정책의 수장으로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앞으로 우리 경제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물가가 안정되고, 취업 창출을 위한 경제성장도 실현되는 그런 좋은 정책 조합이 그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할 것이다.

“재정·통화정책 조화 속 목표 추구”
외환시장선 강경한 대응자세 보여
한은의 다양한 개혁조치 지속 천명
지난 1일 통화정책의 수장으로 취임한 이주열 신임 한은 총재는 취임식사를 통해 한은의 다양한 개혁조치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총재는 ‘오랜 기간에 걸쳐 쌓아온 평판과 성과’를 인사에서 중시하겠다는 입장을 재천명함에 따라 파격적 인사는 배제하겠다는 보수적인 뜻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내부경영 부문에서 이뤄진 다양한 개혁조치 가운데 긍정적인 면은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전임자인 김중수 전 총재가 외부 출신으로 한은에 개혁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대립각을 세운 인물로 평가됨에 따라 개혁 중단 전망을 일단 불식시키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김 전 총재는 퇴임식에서 “기존 조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그 조직을 변화시킬 유인을 갖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며 “몸에 익은 손쉬운 일에서 벗어나는 것을 대다수가 반길 리 없으므로 개혁이 구성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시도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같은 발언과 관련 이 총재는 “오랜 기간 쌓아 온 실적과 평판이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 돼야만 직원들이 긴 안목에서 자기를 연마하고 진정으로 은행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인사원칙을 바탕으로 조직의 안정을 도모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성과 개방성도 꾸준히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금까지 한은이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사고체계나 업무처리 방식이 적절한 것인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자기성찰의 취지를 강조했다.
그는 “한은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며 “다른 조직과 구분되는 사고와 행동유형이 있기 마련이지만 밖에서 볼 때는 이런 것이 환경변화를 애써 외면하는 ‘조직 이기주의’의 한 형태로 비쳐질 수 있다”고 조직의 폐쇄성과 한계성을 경계했다.
“아직 금리 인하는 기대난”
한국은행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분야는 역시 금리와 물가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방미 중에 이 총재는 “지금 시장에서 금리를 내릴 것이라 기대하기는 힘들다”며 한은의 향후 통화 정책 방향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지난 14일 전해졌다.
이 총재는 전날에 있었던 기자단 간담회에서 “정책금리가 오를지 내릴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중앙은행과 시장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금리라는 것은 경제 전 분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책 방향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금리 조정 시기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방향은 시장에서 짐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물가 수준이 예상보다 낮다는 일부 지적에는 “물가 목표는 중앙은행에서 3년에 걸쳐 달성 가능하고 바람직한 수준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지금 물가가 낮다고 해서 금리로 대응하면 효과는 1년 후에 나오는데 그 때는 물가가 다시 원상태가 되기 때문에 경기 진폭이 커진다”고 정책의 시차(time lag)를 거론하며 설명했다.
한은이 성장이나 고용 등을 정책 목표에 추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성장과 물가 안정 등 2~3개의 목표를 두면 목표 간에 상충이 생길 수 있다”며 “목표를 복수로 하는 것과 단수로 하는 것의 장단점이 있는데 한은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사항은 아니다”라고 말해 이른바 조화로운 정책 조합(policy mix)의 지난(至難)함을 시사했다.
그는 기재부와 한은의 정책 공조 방향에 대해서는 “통화정책은 재정정책에, 재정정책은 통화정책에 서로 영향을 준다”며 “반드시 찰떡같이 같이 가자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 상황 인식과 전망에 있어서 격차를 줄일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을 염두에 둘 때 이 총재가 향후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경제전문가들이 많다.
이 총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 및 IMF·세계은행 춘계 회의에서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언급한 것 이외에 여러 의미 있는 행보를 보여줬다.

이 총재는 지난 11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G20 회의장 한국 대표석에 나란히 앉았다. 현 부총리와 이 총재가 공식 회의 석상에 함께 참석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현 부총리와 이 총재는 회의 기간 내내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현 부총리는 이 총재를 회원국 경제 수장들에게 일일이 소개하며 이 총재의 성공적인 국제 무대 데뷔를 도왔다.
현 부총리는 지난 12일 “김 전 총재는 좀 적극적인 성격이었지만 나나 이 총재는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 것 같다”며 “이 총재가 회원국 재무장관들과 얼굴을 익히도록 일일이 소개시켜줬다”고 말했다.
회원국 경제 수장들은 이 총재에게 “어려울 때 중책을 맡았다”, “어깨가 무거울 것이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다” 등과 같은 격려성 화답 인사를 건넸다.
이 총재는 회의 기간 동안 눈에 띄는 튀는 활동보다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IMF 쿼터 개혁, GCF 재원 조성, 역파급 효과'(신흥공업국의 경제불안이 다시 선진국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현상) 공론화 등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맡았다.
현 부총리는 12일 오전 동행취재진과 이 총재가 조찬간담회를 갖는 자리에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조화이뤄야”
조찬장에 이 총재와 함께 들어선 현 부총리는 기자들을 이 총재에게 소개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 총재는 조찬간담회에서 정부와 한은 간 공조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재정정책이 먼저 나설 것이냐 통화정책이 먼저 나설 것이냐를 판단하기 위한 정보 교환이 중요하고, 경제상황 인식과 전망에 대해서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거듭 말했다.
현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 총재가 만난 것은 지난 2일이었다. 쌍방은 한 목소리로 “기재부와 한은이 경제에 대한 상황인식을 같이하고 정책 조화를 이루는데 앞장서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현 부총리는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을 찾아 이 신임 총재와 정책 협조 의지를 다졌다.
현 부총리는 “이 총재는 한은의 신망이 두텁고 한국 경제에 대한 통찰력도 있으신 분”이라며 덕담하며 “물가·고용·지속성장·위기관리 분야에 모두 능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한국경제에 대해 고민하는 총재의 역할을 잘 하실 것으로 기대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본관에서 진행된 두 사람의 만남은 40분가량 지속 되었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은을 직접 찾은 것은 지난 2009년 윤중현 전 장관의 방문 이후 5년만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지난해 현 부총리는 김중수 전 총재와 회동한 적이 있었으나 한국은행이 아닌 서울 시내의 곰탕집에서였다.
이주열 신임 총재는 회동 후 “경제를 보는 시각을 공유하자는 얘기를 주로 나눴다”며 “두 수장 간 협의체를 정례화 하겠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만나겠다는 수준으로 해석하면 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외환, 채권시장에서는 매파로 인식되어가고 있다.
지난 10일 이 총재가 구두 개입을 통해 외환시장 안정을 이끌어냈다. 원·달러 환율이 추락하다가 이 총재의 말 한마디에 반등세로 돌아섰다. 이 총재가 외환시장에서 확실한 '군기(軍氣) 반장'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라고 경제전문가들은 평했다.
이 총재는 이날 “환율 쏠림을 경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의 발언이 전해지자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033원까지 떨어진 원·달러 환율이 반등하면서 1040선을 회복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1041.4원보다 6.4원 내린 1035.0원으로 출발했다. 2008년 8월 이후 5년 8개월 만에 가장 낮은 가격을 보인 전일의 기록을 다시 경신한 것이다.
이에 앞서서 기획재정부에서 환율 방어를 위한 포문을 열었다. 최희남 기재부 국제금융정책국장은 “이날 외환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쏠리든 단기간 변동성이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외환 흐름을 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외환시장에선 확실한 ‘군기반장’
더불어 이주열 총재의 발언은 환율 불안에 쐐기를 박았다. 이 총재는 “환율변동성이 커져 쏠림현상이 생긴다면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발언 이후 환율은 반등했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40.2원으로 마감했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장 초반 기재부의 구두 개입에 더해 한은 총재가 환율 쏠림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시장이 낙폭을 줄였다”고 해석했다.
채권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매파적 성향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통위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는 물가가 상승하면 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하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김지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금통위 직후 낸 보고서에서 “이 총재의 첫 금통위는 '매파적'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며 “수정 경제전망에 따르면 GDP 마이너스 갭이 올 연말 사라져 내년 초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근거로 4분기에 접어들면 통화정책 정상화 측면에서 금리인상 가능성이 논의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총재는 간담회서 “경기 회복 지속으로 GDP 마이너스 갭 축소와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 발생시 선제적으로 대응할 여지가 있다”며 사실상 금리인상 시점을 제시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은 “'실질금리는 높은 수준이 아니다', '기준금리 인상은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 등 매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발언을 했다”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답은 금리 인하 기대에 일말의 여지도 제거한 듯한 답변이었다”고 말했다.
박혁수 현대증권 채권전략팀장은 “금리 인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제시한데다 경기에 대한 판단도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 인상 시 가장 우려되는 측면이 가계부채와 구조조정 문제인데 이 총재는 이 부분을 금리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고 하면서 역시 이 총재의 매파적 성향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때 우리 경제의 3대 문제점을 ▲성장잠재력 저하 ▲산업 부문 간 양극화 발생 ▲경제 수준에 비해 과도한 부채로 꼽았다.
청문회 당시 이 후보자는 첫 질문부터 시장과의 소통과 정책 공조가 어긋난 점을 시인했다. 그는 2010년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쳐 가계 부채의 원인이 되지 않았느냐는 지적은 결과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4월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금리가 동결되고 5월이 돼서야 인하가 이뤄진 점에 대해서는 “시장에 금리 인하 기대가 형성된 것은 중앙은행이 시그널을 줬기 때문”이라며 “시장이 기대와 어긋났다고 평가한 것은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에서는 2012년 4월 부총재를 지내고 퇴임할 당시의 발언도 단골 질문거리로 떠올랐다. 그는 “한은이 물가 안정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외부의 냉엄한 평가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2010년 금리 정책 실기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며 “이것이 중앙은행의 신뢰 문제로 이어진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사에 대해서는 “매우 중요한 일인 만큼 원칙을 지키는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취임한지 불과 보름 밖에 되지 않은 이상 이주열 한은 총재에 대해 평가한다는 것은 속단일 수밖에 없다. 아무튼 통화금리정책의 수장으로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앞으로 우리 경제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물가가 안정되고, 취업 창출을 위한 경제성장도 실현되는 그런 좋은 정책 조합이 그에게서 나오기를 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