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325명을 포함, 475명의 승객을 태운 채 제주로 향하고 있던 ‘세월호’가 침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가 ‘인재’가 부른 참사였다고 지적한다. 사고 발생 직후 나온 “움직이지 말라”는 선내 방송, 그리고 선장의 이른 탈출 등이 겹쳐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인재로 인한 참사였던 경주 리조트 사건이 벌어지고 2개월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로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다. 더불어, ‘해병대 캠프 참사’이후 마련된 교육부의 매뉴얼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움직이지 말라” 방송에 따른 승객들, 선내에 갇혀
승객 대피 유도해야 할 선장은 구명정 ‘1등 탑승’?
경주리조트 참사 2개월만…인재 인한 참사 ‘도돌이’
16일 오전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6852t급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 325명과 교사 14명을 포함, 승객 475명이 탑승했다.
세월호 참사는 인재?
이번 참사가 ‘인재’로 인한 사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배를 책임져야 할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는 점과 “움직이지 말라”는 내용의 선내 방송이 탑승객들의 최초 탈출을 지연시켜 피해 규모를 키운 점 등이 그 이유로 손꼽힌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입을 모아 상황에 맞지 않았던 선내 방송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생존자 유모(57)씨는 “‘쿵’소리가 나더니 배가 갑자기 기울었고 밖으로 나와보니 수직으로 배가 올라가고 있었다”며 “선실 3층 아래는 식당, 매점, 오락실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는데 물이 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밖으로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며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대피하라고 했다면 오히려 더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왜 즉각 대피 안내를 하지 않은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함께 치료를 받고 있는 강모씨는 “선내 방송이 나와 ‘움직이지 말라’고 하더니 구명조끼가 전달됐다. 방에서 일찍 나와서 구조될 수 있었는데 방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16일 CNN은 “한국 세월호 침몰 사고 생존자들: 승객들은 침몰 당시 ‘움직이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제로 심층 취재했다. CNN은 “아이들이 가만히 있기를 강요당했다”며 “그래서 밖으로 빠져나와 생존한 사람의 수가 많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백점기 교수는 17일 YTN라디오 ‘전원책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두 시간 동안 물위에 있었는데 배 안에 그대로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고 한 바람에 피해가 더 커진 것 같다’는 지적에 “1분1초를 다투어야 하는 시간을 잘못 활용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삼열 전 해양심판원장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선박을 오랫동안 승선한 선장이라면 비상훈련시 매번 유보갑판으로 대피시켜야 구조가 원활하다는 것은 알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뭐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모든 승객을 객실에서 나오게 해 유보갑판에서 구조를 기다리게 했어야 했다”고 밝혔다.
즉 배가 침몰하는 다급한 상황에 적절치 않은 방송으로 탑승객들의 탈출기회를 놓치게 했고, 피해 규모를 키웠다는 것이다. 현재 해경은 실종자 대부분이 아직 선실에 갇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고 당시 배를 책임져야 할 선장이 일찌감치 배를 버리고 나온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16일 생존자 김모(60)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제일 먼저 경비정으로 뛰어내려 탑승했는데 당시 뛰어내린 사람들이 더 있었다”며 “경비정 구조대원에게 물으니 선장이 나보다 먼저 경비정에 탑승해 있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강모(58)씨 역시 “배 옆 3층에서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배가)기울어지니까 뛰어내릴 수 없었다”라며 “구명정에 타고 보니 선장과 기관사가 뛰어내려서 타 있었다”고 전했다. 선원 A(58)씨는 “자고 있었는데 배가 갑작스럽게 기울어 놀라서 깼다”며 ”당시 브릿지(함교)로 나가는게 힘들었는데 선장과 선원들이 매달려 있었다”라며 “선장과 선원들이 비교적 빠르게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에 사고 현장에서 승객들을 지도하는 사람이 선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7일 오전 실종자 가족들이 대기하고 있는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한 중년의 남성은 “구명보트가 왔는데 현장에서 선원 누구 하나 지도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선장이고 누구하나 없고 데스크에서 젊은 사람 혼자서 마이크잡고 ‘걱정마라 움직이지 말라’고 만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신없이 빠져나와 구조돼 육지로 나와 보니 기관실 직원 10명 모두가 팽목에 나와 있었다”며 “선장이 나오라고 했다는데 그럴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침몰 사고 발생 직후 세월호의 탑승인원과 구조인원을 두고 혼선을 빚기도 했다. 사고 발생 직후 발표된 승선인원은 승객 477명과 선장 등 승무원 26명, 승무보조원 3명과 행사진행요원 1명이었다. 그러나 승객 숫자는 471명으로 줄어들었다 오후 4시 경에는 457명, 6시에는 462명, 8시에는 475명으로 오락가락했다.
이렇게 다섯 번이나 뒤바뀐 승선인원만큼 구조자 숫자도 혼란을 빚었다. 오전 11시, 경기도교육청은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을 학부모에게 알렸지만 해프닝에 그쳤다. 오후 2시쯤에 안전행정부는 386명이 구조됐다고 서둘러 발표했지만, 오후 4시30분 쯤 해경은 구조인원이 164명이라고 정정했다. 해경과 해군, 민간인 선박까지 가세해 구조작업에 나서면서 구출된 사람의 숫자가 중복 집계됐기 때문이다.
목포해경은 지난 16일 오후 10시부터 선장 이모(69)씨와 승선원 등 11명을 소환해 17일 오전 2~3시까지 조사한 뒤 귀가시켰다. 이씨는 같은 날 오전 10시20분께 해경과 함께 은색 승합차를 타고 다시 경찰서로 들어왔다. 해경은 이씨 등을 상대로 항로 및 안전수칙 준수 여부 등을 집중 조사 중이다.
이씨는 ‘유가족과 승객들에 대해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죄송하다. 면목없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계속되는 인재…대책 없나
인재로 인한 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로 오리엔테이션을 떠난 부산외대 학생 등 10여명이 사망하고 113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들은 신입생 환영식을 위해 리조트 체육관에 모여 공연을 관람하던 중이었으나 갑작스럽게 무너진 지붕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조사를 맡은 경북경찰청 배봉길 수사본부장은 중간 수사 발표 당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은 설계, 시공, 감리상에 문제가 많은 부실 공사로 건립됐고, 리조트 측이 체육관 지붕 제설 작업을 하지 않은 잘못 등이 수사 과정에서 명백히 확인됐다”고 밝혔다.
게다가 경찰조사 중 경주시청 담당 공무원이 사고 4일 전 마우나리조트 측에 전화를 걸어 “같은 방식으로 설계된 울산의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제설을 실시해 달라”는 요청을 했음에도 이를 묵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경찰의 조사 결과 리조트 참사가 부실 공사에 따른 ‘예고된 인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미흡한 안전 관리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두 사고 모두 사고 피해자가 학생이라는 점, 그리고 학교 행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 등으로 인한 공통점으로 안타까움은 배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공통점은 지난해 7월 발생한 ‘해병대 참사’에서도 발견된다. 해병대 참사는 지난해 7월 사설 해병대캠프에 참가했다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사망한 사건 역시 인재로 인한 사고다. 해당 사건은 지난해 7월 태안군 안면읍 백사장 해수욕장에서 교관들이 학생들의 래프팅이 끝난 뒤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은 채 물에 들어가도록 해 5명이 파도에 휩쓸리며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이 캠프엔 실제 해병대 출신이 아닌 강사도 있는 ‘짝퉁 캠프’임이 드러났고, 사고가 난 뒤 자체적으로 일을 해결하려다 사건 발생 20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경찰에 신고하는 등 안전 대책에 미흡한 점이 속속들이 드러나며 범국민적인 비난을 받았다.
해병대 참사가 벌어진지 채 1년도 되지 않았고, 경주 리조트 참사가 발생한 지 2개월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재로 인한 대형 사고가 또 터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허술한 안전 관리와 미흡한 사고 수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매뉴얼’ 있지만 유명무실?
한편, 해병대 참사 이후 교육부가 마련한 매뉴얼이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해병대 사고 이후 교육부는 지난 2월 일선 학교들에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보냈다. 매뉴얼에는 ‘교육 과정과 연계한 계획적인 소규모·테마형 수학여행을 실시할 것을 권장한다’고 돼 있다. 게다가 교육부 매뉴얼에는 수학여행과 체험활동 모두 청소년활동진흥원이 인증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토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사고를 당한 단원고는 325명의 대규모 수학여행을 떠난 길이었다. 게다가 세월호의 운영사인 청해진해운 소속의 또 다른 여객선이 사고일로부터 약 3주 전 어선과 충돌하는 사고를 빚은 것으로 드러나 사실상 매뉴얼이 유명무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8일 청해진해운의 ‘데모크라시호’는 오전 11시 30분경 인천 옹진군 선미도 북서방 3.2㎞ 해상에서 소래선적 어선 E호와 부딪혔다. 이날 사고는 이날 오전 10시45분경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해 백령도로 향하던 데모크라시호가 짙은 안개로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E호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일어났다. 그러나 데모크라시호 선수 우현측 일부가 부서졌으나 여객선과 어선 모두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앞선 2011년에도 데모크라시호는 어선과 충돌한 전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