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C 제품의 최강자로 꼽히는 고려은단이 최근 여러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마트와 손을 잡고 이른바 ‘반값 비타민’ 제품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약사계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동안 ‘영국산 원료’를 내세우다가 갑자기 ‘중국산 원료’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어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마트 반값 비타민, 중국산 원산지 기재 ‘누락’ 혼란 줘
대한약사회 “국민과 약사를 기만하는 행위” 성명서 발표
고려은단 “원만한 해결 위해 대한약사회측과 대화할 것”
비타민C 매출 1위인 고려은단이 굴지의 대형마트인 이마트를 통해 가격을 크게 낮춘 이른바 ‘반값 비타민’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약사회가 “국민과 약사를 기만하는 행위”라며 성명서까지 발표하는 등 격렬하게 반발하며 나서고 있어 이를 두고 제약업계는 무척 뒤숭숭하다.
‘이마트 반값 비타민C’ 돌풍 일으켜
이렇게 현재 고려은단과 약사계 사이에 일어난 갈등 상황은 대형마트까지 얽히는 바람에, 지난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골목 상권 침범’의 차원으로까지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갈등 상황이 당분간 그리 쉽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여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더욱 모으고 있다. 이렇게 돌연 ‘말썽’이 일어나게 된 데에는 지난 3월 고려은단이 이마트와 제휴해 ‘이마트 비타민C 1000’과 ‘이마트 프리미엄 비타민C’를 전격 출시한 데서 비롯됐다. 이들 제품의 가격은 이마트 비타민C 1000의 경우는 9,900원(200정), 이마트 프리미엄 비타민C는 15,900원 선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시중 약국에서 판매되는 고려은단의 비타민C 제품이 300정 기준 2만5,000원 선에 판매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마트에서 팔리는 제품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비타민C 1000’ 제품의 경우 그동안 약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되어 오던 기존 고려은단의 제품에 비해 약 30% 정도나 싼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싼 가격에 그동안 고려은단이 구축한 이미지가 더해지는 바람에 ‘이마트 반값 비타민’은 출시되자 마자 소비자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약국에서 파는 고려은단 비타민C 제품은 다소 비싼 편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마트에서 반값 비타민C 제품을 판매하니 고객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출시 2주 만에 5만 2,000개를 훨씬 넘게 팔려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마트 측은 “‘비타민C 1000’ 가격이 이렇게 저렴한 것은 출시 당시 중간 유통비용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입장을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가장 큰 가격 인하 요인으로 원산지를 꼽는다.
즉 기존 고려은단 비타민C 제품의 경우 영국산 원료를 쓰고 있지만, 이마트에서 파는 비타민C 100은 중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다. 고려은단 측은 “영국산 원료와 중국산 원료의 가격 차이는 4배 가까이 난다”고 밝혔다. 고려은단 측은 “그렇기 때문에 영국산 원료를 사용하는 약국 판매용 비타민C 제품이 이마트 판매용 반값 비타민 제품보다 가격이 더 비싼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한약사회 “불매 운동도 불사”
하지만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게 된 계기는 바로 고려은단 측이 이마트에서 파는 중국산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 별도로 원산지 표기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마트에서 파는 반값 비타민C가 얼핏 약국에서 판매하는 제품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에 지난 4월 14일 대한약사회(회장 조찬휘)는 성명서를 내고 “고려은단이 보이는 이윤매몰적인 경영 행태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대한약사회는 “고려은단이 대형마트에 판매하기 위해 중국산 원료로 제품을 제조했다”며 “그럼에도 중국산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는 따로 원산지 표기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한약사회는 “고려은단이 값싼 저질의 원료를 사용해 약국의 반값으로 비타민을 대형유통마트에 공급한 것은, 결국 약국을 자사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대한약사회는 “그동안 고려은단은 ‘화학적 합성원료가 아닌 천연원료를 사용하는 차별화된 비타민’이라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며 성장해왔다”며 “이런 이미지를 이용해 마치 동일한 원료의 제품을 훨씬 저렴하게 대형마트에 제공하는 것처럼 꾸민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대한약사회는 “이는 고려은단이 국민건강 증진을 기업의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할 제약회사로서의 위치를 스스로 버린 것”이라며 “이런 행태를 계속 이어나가다가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채 제약업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영원히 퇴출될 것”이라는 상당히 과격한 비난의 표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어 대한약사회는 “향후 모든 약국은 고려은단 비타민 제제를 취급하지 않는 것은 물론 국민이 이 회사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도록 권유하고 계도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또한 대한약사회는 “이에 대한약사회와 7만 약사회원은 국민건강수호자의 이름으로 고려은단의 비타민 제제에 관련된 모든 인허가 사항을 철저히 재검토해 줄 것을 관계당국에 강력히 요청한다”고 일갈했다. 이어 대한약사회는 “우리 대한약사회는 이번에 불거진 고려은단 사태를 계기로 전체 제약기업이 다른 분야와는 달리 고도의 도덕성과 윤리성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거듭 깨닫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대한약사회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제약기업은 국민건강을 미끼로 그 어떤 부당한 이익이나 이윤을 추구하지 않도록 향후 철저한 기업정신과 철학을 갖춰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성명서를 마무리했다.
대한약사회의 성명서가 나온 직후 전국 16개 시도약사회장은 각 지부 차원에서 고려은단 제품의 반품·불매 운동을 적극 독려하기로 하는 등, 실력 행사에 전격적으로 돌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한약사회가 이보다 더 격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적인 표현을 불사하며 고려은단을 맹비난하고 나선 데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이와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한약사회 측의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영국산 원료 강조하다 돌연 중국산 옹호?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일부 제약사를 중심으로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건강기능식품의 유통망을 대형마트 등으로 확장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약사 입장에서 보면 강력한 경쟁 유통채널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위기의식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그럼에도 현재 약사들은 일반의약품 판매 및 마케팅과 관련하여 여전히 강력한 권한을 비니고 있다”며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최근 대한약사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고려은단 제품 불매운동 움직임은 향후 약사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다른 제약사의 마케팅 전략에 대한 일종의 강력한 경고성 메시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약사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고려은단은 4월 15일부터 중국산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원산지를 표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고려은단은 “향후 약사회 측과 원만한 해결을 이루기 위해 대화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혀 과연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지난 4월 16일 고려은단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기존 제품의 절반 수준 가격에 내놓은 반값 비타민의 품질 시비와 관련해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비타민C 제품은 사실 중국산 원료를 사용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혀 앞으로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고려은단 측은 “전 세계적으로 비타민C 원료를 생산하는 나라는 영국과 중국 뿐”이라며 “현재 전 세계 비타민C 원료의 90%는 중국이 점유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영국의 비타민C 원료 생산업체인 DSM사가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려은단 측은 가격과 관련하여 “영국산 원료는 중국산에 비해 많게는 4배 정도 비싸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고려은단 측은 “중국산 원료는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상황이라 일부 중국산 비타민C 원료의 경우 원가 이하로 판매되기도 한다”며 “반면 영국산 비타민C 원료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항상 부족해 가격도 높게 책정되어 공급되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고려은단 측은 특히 불거진 ‘원산지 미표시 논란’에 대해서는 “비타민C의 원산지를 표기하는 것은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다. 기업의 자율에 의해 표시하고 있다”며 “대부분은 원산지 표기를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려은단 측이 이렇게 자칫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고려은단 측이 ‘중국산 원료라고 해서 ’저질‘ 또는 ‘싸구려’라는 색안경을 쓰면 곤란하다‘는 의도를 드러내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이와 더불어 고려은단 측은 “현재까지 불매운동으로 인해 반품 등의 결정적인 타격은 아직 없는 상태”라며 “앞으로 원만한 해결을 위해 대한약사회 측과 지속적·적극적으로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고려은단 측의 입장에 대해 한 경제평론가는 “그동안 고려은단은 자사 비타민C 제품을 마케팅하며 ‘우리 제품은 영국산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타사 제품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라는 뉘앙스로 판매 전략을 지속해 온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그런데 반값 비타민 판매를 계기로 중국산 원료를 옹호하는 듯한 입장을 밝히고 나서고 있으니 다소 아이러니하다”고 비판했다. [시사포커스 / 하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