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선사, 청해진해운 문제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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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고질적 병폐, 하나 둘 드러나

역사에 유래 없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세월호 침몰 사건’, 수학여행을 떠나던 어린 학생들을 포함 수백 명의 실종자와 수십 명의 인명피해를 끼친 사건 뒤에는 선사 ‘청해진해운’이 존재한다. 승객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배에서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이들이 소속된 청해진해운의 경영과 관리감독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자.

▲ 지난 17일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청해진해운은 20억 원 가깝게 영업이익을 냈지만 급격히 사정이 안 좋아지며 2011년과 2013년에는 영업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뉴시스

무리한 투자로 100억 대출 받아 일본 중고 선박 사들여
경영난, 인건비 줄이기 위해 무리한 운행해온 정황 포착
사과한 청해진 해운 사장, 그러나 ‘오너일가’ 따로 있다?

청해진해운의 여객선 사고는 ‘세월호’가 처음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여객선들도 과거 사고가 잦았던 것이다. ‘사고뭉치’ 청해진해운이 지금까지 버젓이 여객선을 운영하며 정부로부터 4차례나 우수 선사로 선정돼 상까지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청해진해운 소속 여객선은 2011년 4월 승객 6백 명을 태운 채 제주도로 향하던 중 기관 고장으로 바다 한가운데 멈추고 말았다. 탑승객들은 5시간 넘게 불안에 떨며 배 안에 있어야 했다. 2009년에도 고장이 나 망망대해에서 표류한 바 있다. 또한 쾌속선은 역 추진센서 고장으로 운항이 일시 중단된바 있다.

 사고가 끊이질 않는 선사에 해수부의 우수상 시상은 아이러니하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만든 것은 ‘안전항목’이 빠진 고객만족도 평가지에 있다. 평가표에는 선원의 복장이 단정한지를 묻는 란과 화장실은 깨끗한지, 출·도착 시간 안내방송의 유무 등 전체 26개 질문 중 안전관련 항목은 고작 4개뿐이었다. 평가지가 여객선이 수백 명을 태운 채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정부 또한 이러한 선사 안전 불감증에 일조한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청해진해운 ‘경영난’ 허덕이다

청해진해운은 경영난에 허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청해진해운은 20억 원 가깝게 영업이익을 냈지만 급격히 사정이 안 좋아지며 2011년과 2013년에는 영업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영업적자와 흑자를 오가며 연평균 1억 원의 영업 손실을 냈으며 특히 지난해 손실액은 7억8500만원으로 2003년 이래 가장 큰 적자폭을 기록했다. 이 같은 적자는 매출액이 59억 원에 달하는 것에 비해 매출원가가 70억 원을 넘기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2000년대에 접어들면 전반적인 해운업이 쇠퇴기를 맞아 청해진해운 또한 시대의 역풍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1999년에 설립되어 부산본사와 인천, 제주지점에서 운영했으나 2011년 부산 본사를 폐쇄, 제주도로 옮겼다.

청해진해운의 은행권 차입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단기차입금은 산업·국민·하나·신한은행 등 4곳에 95억2700만원이며 장기차입금은 산업·국민·외환은행에 112억800만원규모이다. 이중 침몰한 세월호의 담보 금액이 120억 원으로 가장 높다. 해당 은행 중 한 곳의 관계자는 21일 “사고로 청해진해운의 사정이 더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하며 “회사 측은 세월호 등 배 5척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아갔다”고 전했다. 이에 청해진해운에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일단 관련 사항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경영난에 고심하던 청해진해운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무리한 운행을 한 정황 또한 포착되었다. 지난 20일 청해진해운 측은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씨가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임을 밝혔다. 그는 청해진해운과 1년 단위로 계약을 맺어 온 것이다.  그는 또한 세월호 뿐만 아니라 인천-제주 선박 오하마나호의 교대선장으로도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 한 척당 두 명의 담당선장이 할당돼 교대로 운행해야하지만 청해진해운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한사람을 두 배의 교대 선장으로 등록한 것이다. 해양업계에서는 이러한 열악한 고용조건이 세월호 침몰사고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또한 청해진해운은 해운 법령을 따르지 않은 점도 검찰과 경찰에 의해 포착됐다. 청해진해운 소속 오가고호의 출항 사진 승인을 지난 3월8일에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오후에 갑자기 승객이 많아지자 예정되지 않았던 오전 시간에 같은 항로의 여객선을 추가 운행했다. 이는 해운법 19조1항의 변경이나 증선 할 경우 일주일 전 인사 신청서를 팩스로 제출해야하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이미 선박이 출항하고 나서야 인가 신청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사고가 났다면 당국의 대응 자체가 늦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을 조장한 것이다.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발한 2014년 4월15일 오후 9시, 애초 오후 6시 30분에 출발예정이었던 배는 그날은 짙은 안개로 2시간 넘게 출발이 지연되다, 다른 여객선들이 모두 출항을 취소할 때 세월호 홀로 무리한 출항을 한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는 수천만만원의 손실을 우려해 무리한 운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 운임과 화물운임 등 만약 결항했다면 가뜩이나 적자로 허덕이는 해운사가 손실을 매우기 힘들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18년 된 일본 중고선박 수리해 수명10년 연장

청해진해운이 무리한 여객선 운행을 한 이유는 결국 경영난이며 경영난에 세월호 도입이 일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자본금 50억의 청해진해운이 150억 원이 넘는 여객선을 사들여 무리한 공격적인 투자를 했고 은행에 세월호를 담보로 120억 원의 차입금까지 받아, 회수 자본을 위해 부족한 인력으로 무리한 항해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온 것이다.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 동안 운항된 중고 선박을 수입해 몇 개월간의 수리 및 보수공사를 거쳐 세월호로 탈바꿈시켰다. 노후화된 선박은 보수로 인해 수명을 8~10정도 연장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세월호는 처음 일본에서 1994년 5997t으로 진수된 뒤 589t에 해당하는 시설물을 증설한 이후 2012년 수입돼 다시 5층 증축과 더불어 239t 분량의 객실이 추가 되었다. 선박 상단의 무게가 상당히 증가해 무게 중심도 올라갔다. 이 같은 수직 증축은 무게 중심 원상회복 능력 또한 떨어뜨리게 한다. 큰 선박의 경우 방향전환 시 자연적으로 무게 중심이 회복되나 세월호의 경우 중심을 못 잡고 침몰한 것이다.

▲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 동안 운항된 중고 선박을 수입해 몇 개월간의 수리 및 보수공사를 거쳐 세월호로 탈바꿈시켰다ⓒ뉴시스
 

세월호 침몰이 배 자체의 결함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오래된 중고 선박을 개조해 무리하게 여객선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개조된 세월호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현재 가장 지배적인 의견은 항로를 변경하는 ‘변침점’에서 급격한 방향전환을 해 선체에 결박한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며 중심을 잃고 순간적으로 기울어졌다고 보는 시각이다. 침몰당시 조타실에서 조타키를 잡은 조모(55)씨는 “내가 실수한 부분도 있지만 방향타가 유난히 빨리 돌았다”고 밝혔다.

중간 수사 결과 조타기는 보통 5도 이내인 것과 달리 115도로 크게 회전했다. 조타기는 이미 보름전 이상을 보여 지난 1일 전원 접속불량 수리 신청서를 작성했지만 수리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상을 감지하도고 5백여 명에 가까운 승객을 태운 것이다. 또한 조류가 심해 노련한 항해사도 집중해서 운행한다는 ‘맹골수도’ 구간을 근무한지 4개월 된 초보 항해사인 3등 항해사 박모(25)씨가 지휘를 맡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2명의 항해사가 함께 조타실에 있어야 했지만 그 규율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선사의 고질적 병폐가 하나 둘 쌓여 세월호 참사라는 인재를 만든 것이다.

지난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이 제출한 보고서에 2012년 세월호를 ‘건설 중인 자산’에서 지난해 ‘유형 자산’으로 대체했다고 전했다. 이는 영업에 활용 가능한 자산으로의 승격을 뜻한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 매입 후 전남 목표에서 객실 증설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개보수를 통해 여객선으로 다시 태어난 세월호의 서류상 가치를 높여 이를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120억 원의 차입금까지 받았다. 산업은행 측은 세월호 대출 과정의 특혜는 없었다고 전하며 “은행의 여신 취급 지침에 따라 계약서 등을 검토한 뒤 소요자금의 68.5%를 대출해줬다”고 설명했다.

청해진해운, 오너일가 따로 있다?

세월호 사고 후 눈물의 대국민 사과를 했던 청해진해운 김한식 사장 뒤로 실소유주가 따로 있었다. 실소유주는 과거 한강 세모유람선을 운영했던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두 아들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난으로 허덕이던 청해진해운 배후에 막대한 부를 지닌 오너일가가 존재했다. 형제는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로 자회사인 선박 부품업체 ‘천해지’를 통해 사실상 청해진해운을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경우 1987년 종말론을 믿던 특정교파 신도 32명이 집단 자살한 사건인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검찰의 수사를 받기도 했다.

▲ 세월호 사고 후 눈물의 대국민 사과를 했던 청해진해운 김한식 사장 뒤로 실소유주가 따로 있었다. 실소유주는 과거 한강 세모유람선을 운영했던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두 아들들인 것으로 알려졌다ⓒ뉴시스

세모해운이 경영난으로 1997년 부도가 난 후 2년 뒤 유씨 형제는 1999년 청해진해운을 설립했다. 경영승계가 이뤄진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 후 청해진해운의 오너일가는 검찰에 출국금지를 당했으며 현재 인천지검 특별수팀이 횡령, 배임, 탈세, 국외재산 도피, 강요, 뇌물 공여 등 6가지 혐의를 두고 전 방위에 걸쳐 수사 중이다. 검찰은 유씨 일가가 국내외 2400억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했으나 청해진해운 운영 안전관리에 소홀해 사고의 간접 원인이 됐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수사팀은 또한 유씨 일가가 계열사를 거느리며 불법적인 회사 자금을 유용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포착해 금융정보분석원에 자금 흐름과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유씨 일가는 막대한 자본을 가졌음에도 세월호 선박 안전에 일 년에 50만원 남짓의 초라한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공분 또한 사고 있다.

국세청은 유씨 일가의 탈세 혐의 조사에 착수해 불법 외환거래 여부를 집중 조사 중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역외 탈세 혐의와 은닉 재산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23일 1등 항해사 강모, 신모씨와 2등 항해사 김모씨, 기관장 박모씨 등 4명을 유기치사·수난구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21일 세월호 침몰 사건의 여파로 청해진해운은 자사 소속 여객선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앞서 인천-제주간 여객선은 운행이 중단됐으나 다른 노선은 정상 운항을 해왔으나 인천-백령도 간 여객선과 여수-거문도간 여객선도 추가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포커스 / 이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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