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살아남은 이들은 지금…‘건강 적색등’
세월호 참사, 살아남은 이들은 지금…‘건강 적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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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지켜본 국민들도 정신 건강 ‘위험’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시름에 빠진 가운데, 실종자 가족은 물론 생존자들의 건강 상황에 비상이 걸렸다.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심신을 방치하고 있고, 사고 생존자 일부는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세월호 사고에 집중됨에 따라 광범위한 ‘대리 외상 증후군’ 증상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세월호 참사로 전 국민이 시름에 빠진 가운데,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들의 건강 상황에 비상등이 켜졌다. 더불어 국민들까지 ‘대리 외상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뉴시스

시름에 빠진 실종자 가족, 치료도 제쳐둔 채 심신 방치
생존자들, 극심한 정신적 충격…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국민들은 ‘대리 외상 증후군’…심할 시 전문가 상담해야

지난 20일, 전남재난심리지원센터는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르고 있는 전남 진도체육관에 설치해 두었던 심리상담소를 철거했다. 사고 발생 당일인 지난 16일부터 부스를 운영했지만,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 수가 너무 적었다는 게 이유였다. 실종자 가족들이 나눠 머무르고 있는 진도 팽목항에 설치된 위기상담심리센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종자 가족, 건강 상태 ‘심각’

20일 119 관계자는 “실종자 가족이 쓰러지면 인근의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게 하고 있지만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불안해 한다”며 “병원에서도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고 있어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권유하지만 실종자 가족은 돌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또 “대형 사고로 아들, 딸들의 얼굴을 수일째 보지도 못하고 있는 분들에게 어떤 말이 위로가 되겠느냐”며 “"전문가들의 상담치료가 시급한 상태”라고 밝혔다.

23일 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는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서 “진도체육관에 계시는 가족 분들의 아픔과 안타까움은 곁에서 지원해드리는 저희로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가족 분들 중에서 오랫동안 식사도 못하시고 또 수면도 못 취하시다 보니까 체력이 많이 떨어지시고 계신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치료가 필요하신 분들도 늘고 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같은 평소에 앓고 계신 질환들을 미처 약을 챙기지 못하고 오신 분들이 많이 있다”며 “장시간 긴장 속에 계시다 보니까 온몸에 근육이 긴장하면서 생긴 근육통이나 긴장성 두통, 또 자율신경기능이 떨어지게 되면 기능성 위장장애 같은 증상들을 많이 호소하시면서 오는 분들이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느끼기엔 가족 분들이 워낙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정신건강에 대한 상담을 받으러 오실 그런 여력도 쉽지가 않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지사 최경용 구호복지팀장은 23일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 “날짜가 계속 지나니까 실종자 가족들이 많이 심신이 허약한 상태인 것 같다”며 “저희 같은 경우는 저녁에 전복죽이나 깨죽 같은 것을 쑤어서 저희 봉사원들께서 직접 배식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오랜 기다림에 지쳐 탈진한 실종자 가족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진도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보건복지부 재난의료지원단의 현수엽 응급의료 과장은 “실종자 가족분들이 대부분 식사를 제때 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공황상태에 있다보니 탈진과 두통 증상 등을 겪고 있다”며 “탈진 환자의 경우 포도당 수액등을 처방해 회복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9일에는 실종자 가족이 뇌경색으로 쓰러지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목포 한국병원에 따르면, 실종자 부모 A씨는 전남 진도 팽목항 근처 사고 지점에서 배를 타고 현장을 둘러보던 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진의 진단 결과 A씨는 우측 전신 마비(뇌경색)로 판명됐다. 당시 유재광 목포 한국병원 원장은 “현재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이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부와 의료계는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상태가 우려됨에 따라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건강상태가 우려되는 만큼 의료진을 더욱 보충하라”고 지시했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재정지원 뿐 아니라 심리적‧육체적 안정을 위한 지운에 최선들 다하겠다고 손을 걷어 붙였다. 우려가 줄을 잇는 만큼, 확실한 지원을 약속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 일부는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심신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생존자, 정신적 충격 커

▲ 실종자 가족들은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심신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선 적극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우려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 사고 생존자들 역시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급 동료들의 죽음을 겪은 학생들의 경우 정신적 충격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일 목포한국병원의 정진대 신경정신과 과장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입원 중인 생존자 전원이 급성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으며, 일부 환자에 대해서는 약물치료도 병행 중”이라고 말했다.

정 과장은 “생존자들에 대한 정신치료는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며 “현재 식사나 수면에 많은 장애를 겪고 있어 정신적 안정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끔찍한 재난 사고를 겪은 분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실종된 가족을 기다리는 분들도 우울증과 극도의 불안 증세를 보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18일 고대 안산병원은 내원 당시 심리 검사를 받은 환자 55명의 스트레스 지수를 분석한 결과 대부분 중등도 이상의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스트레스 정도를 1~10점으로 측정했을 때 평균 점수가 7.8~8점에 이를만큼 우울·불안 증세가 뚜렷했다는 것이다.

19일에는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측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입원한 생존자 중 우울상태에 대해 16명, 불안상태에 대해 28명이 위험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후 21일 고려대 안산병원은 입원 중인 세월호 침몰사고 학생 10명 중 2명은 소아청소년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진료자료를 옮기는 방안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차상훈 고대안산병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1:1 심층면담을 완료한 결과 환자 20%는 지속적인 (병원)개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돼 본인 및 보호자에게 동의여부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로 전과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 ‘대리외상 증후군’ 위험

이에 따라,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정신 건강 역시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세월호 생존자와 희생자 유가족, 실종자 가족 등 사건 당사자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에 노출된 것과 마찬가지로, 전 국민이 ‘대리외상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 전문가들은 “현재의 비극적인 상황이 국민을 너무 깊은 애도반응으로 몰아가 트라우마에 계속 노출되고 있다”며 ‘대리 외상 증후군’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도가 심해지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증상이 심해질 시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뉴시스

대리외상 증후군이란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아도 방송을 통해 사고 장면을 목격하고, 비탄에 빠진 피해자의 가족을 지켜보면서 자신과 연관된 듯한 심리적 외상을 겪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2001년 9.11테러 사건을 목격한 맨해튼 거주자들이 집단 공황 상태를 경험한 것이 그 실례다. 즉, 간접경험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을 말한다.

서울시 동대문구에 사는 조모(25‧여)씨는 22일 <시사신문>과의 통화에서 “너무 슬프다. 뉴스만 계속 보게 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길을 걷거나 일을 하다가도 세월호에 갇혀 있을 학생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거나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김영훈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17일 성명서를 통해 “이런 대형참사는 신체적 외상뿐 아니라 정신적 외상까지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학생들을 포함한 피해당사자 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과 친지, 친구, 그리고 구조인력에도 심각한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라며 “대구지하철 참사와 기타 대형 재난사고 이후에 나타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이후로도 오랜 기간 동안 피해자와 가족들의 삶을 힘들게 하기때문에 외상사건 초기부터 적극적인 대처를 통하여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대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의 비극적인 상황이 국민을 너무 깊은 애도반응으로 몰아가 트라우마에 계속 노출되고 있다”며 “일반인은 일터로, 학생들은 학업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침통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황재욱 순천향대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1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국민들이 느끼는 심리 상태는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이 같은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발전할 수 있다”면서 “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경우 대부분 스스로 극복하지만 다른 위험 요소로 한달이 지나도 증상이 계속될 경우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2일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는 ‘정신건강 안내문’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언론보도를 통해 보면서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과거에 받았던 정신적 충격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있다가 이번 사건으로 다시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이런 경우 불안, 스트레스, 예민함, 눈물, 수면 문제가 경미하게 발생할 수 있고, 심해지면 계속 운다거나 짜증, 심한 우울감, 분노 폭발, 허무감, 무기력감 등이 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심할 시 전문가 도움 필요

학회는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규칙적 일상 생활 △해야 할 일에 집중 △운동·신체활동 △믿을 만한 사람과 느낌·생각을 나누는 일 △종교적 기도 △‘고통 또한 정신적 성숙의 과정’이라는 생각 △힘든데 잘 버텨온 자신에 대한 격려·칭찬 △현재 내게 소중한 사람과 가치에 대한 생각 등을 권했다.

이와는 반대로 △세월호 참사 뉴스에 지나친 몰입 △불규칙한 생활 △하는 일 없이 멍한 상태 △과거 잘못한 일 떠올리기 △게임·술 등에 의존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눈물이 계속 남 △수면장애 △이전에는 즐겨 했던 일들이 더 이상 재미가 없다 △우울 혹은 화나는 감정반응이 상당히 심할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 때 △식욕이나 체중에 변화가 있을 시 △모든 생각이 부정적이고 허무하게 느껴지는 등의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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