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 가르침의 교리를 전한다. 해월정사 천제스님
일찍이 붓다는 모든 존재가 무상(無常)함을 설(說)한 바 있다. 또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도 “어떤 사람이든 동일한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모두 변모하는 세상을 두고 한 말이다.
이처럼 사바 세계는 인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변하는 속성을 갖는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겨레의 얼과 문화에 이바지 해 온지 일천 육백년이 지났다. 한국 불교문화는 민족문화의 근간을 형성했다고 해도 하등 지나침이 없다.
억불(抑佛)로 인해 산중에 은거하면서도 그 문화의 맥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으며, 일제강점기 아래에서도 선교양종 또는 조계종의 정통성을 끝까지 지켜왔다. 이후 해방은 불교계에도 무한한 비약을 기약하는 자유를 누리게는 하였으나, 그에 따른 많은 과제와 문제성을 드러내게 되었다.
오늘의 한국 불교는 그러한 과제와 문제성을 극복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인류가 화합하여 참된 인간을 완성하려는 불교의 목적과 승가(僧伽)의 참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곧 한국 불교의 과제이며 바람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구절로 유명한 고(故) 성철스님(1912~1993)의 돈오사상, 즉 ‘찰나의 깨달음’이 열반 10년 이상의 세월에도 우리들 뇌리에 남아 있는 건 종교와 민족을 넘어 인류를 향한 평화의 기원이었기에 그 의미가 더욱 자명한 건 아닐까?
해월정사(부산시 해운대구 청사포 소재)는 30년 전부터 그러한 성철스님의 메시지를 위한, 가르침의 전앙으로 가꾸고 승화하는 뜻을 전하고 그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성철스님의 맏상좌로 생전(生前)에 40년 이상을 보필한 천제스님을 만나 그 가르침의 뜻을 들어 보았다.
◇ 한국불교 조계종의 맥
성철스님은 서기 1912년 임자년 4월에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합천 이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명민하고 상호가 수특(殊特)하여 3세에 글을 깨우치고 5세에는 김시습처럼 시를 지을 만큼 총명하였는데, 청소년기에 이르자
그 명민한 두뇌는 더 이상 고리타분하고 낡은 세계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의 나이에 가야산 해인사 동산 스님에게로 출가해서, 출가 삼 년 만에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견성을 이루어 깨달음을 얻는다.
성철스님은 불교의 목표를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바로 깨우쳐서 본래 자신이 무량 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했다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설(說)했다. 모든 처소시방법계 전체가 다 불생불멸이며 이것이 곧 정토이며 불국토라고 하였다.
즉 모든 존재가 전부다 부처라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열반 후에도 꾸준히 회자(膾炙)되면서 후세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천제스님은 해월정사에서 성철스님의 거룩한 가르침을 전하며 한국 불교 조계종의 그 맥을 이어간다.
◇ ‘색은 질량이고 공은 에너지다.’
천제스님의 성철스님과의 인연은 멀리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쳐있던 15살 소년에게 감로에 젖은 성철스님의 말씀은 한줄기 성스러운 빛과도 같았다.
전생에 큰 연(緣)이라고 생각하며 성철스님을 모시기로 마음먹은 소년은 43년 동안 열반하는 그 순간까지 초심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천제스님은 본인의 말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언 할 만큼 성철스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일관한다.
“성철스님께서는 ‘자기를 바로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을 바라보고 근본을 알 때 불성을 볼 수 있다고 하셨죠.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든 가치를 가지고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마음가짐을 바로 한다는 것이 그 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示空空卽是色)에서 색(色)이란 형태가 있고 대상을 이루는 물질적인 것인데, 넓게는 대상 전반을 의미하죠. ‘색은 질량이고 공은 에너지다’라는 것이 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밑바탕은 불멸한 것입니다.”라며 그 뜻을 전했다.
◇ 합리적인 교리를 주창하는 것이 불교다.
천제스님은 “종교란 같은 목적을 가진 가르침의 형태를 가진 학문입니다.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배타적인 종교는 부정적 이면의 형태를 띄고, 이는 곧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종교의 갈등은 지상의 지옥이나 마찬가지죠.
소유의 욕심을 뻗친다면 악의 집단보다 나은게 없습니다. 배타적 행위를 자제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종교는 자비롭고 평화로워야 합니다. 불교는 종교와 학문사이에 존재하지만 불교 자체가 철학적이고 논리적입니다.
학문이란 시대에 따라 그 논리 전개를 달리 할 필요가 있고, 불교는 가장 깊은 영역에 존재합니다. 모든 게 불생불멸하며 그것이 불교의 근간이기도 하지요.”라며 불교의 교리를 말하며 “부처님을 모신다는 것은 그 어른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계합 ․ 체득하는 것인데,
성철스님의 가르침이 특별한 것이 아닐지라도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은 참된 부처님의 마음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불합리한 것을 믿는 것은 허구요, 합리적인 교리를 주창하는 것이 불교다’라는 것이 또한 스님의 가르침입니다.”라며 다시 한 번 성철스님의 큰 뜻을 피력했다.
◇ “종교이념의 뿌리가 없으면 그것은 허세다.”
해월정사는 몇 년 전부터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받든다는 뜻의 봉훈관(奉訓館)이라는 성철스님 기념관 건립에 한창이다. 봉훈관은 합천의 해인사를 제외한 경남 최대의 규모에 맞먹는 데, 이에 맞쳐 삼 년 전부터는 해인사와 함께 성철스님 제사를 올리는 등 그 역할에 충실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변 땅값을 올려 받으려는 땅주인 때문에 부지매입에만 3년, 허가 과정과 주차장 확보에 각각 1년씩 걸리는 등 그간의 숱한 어려움과 말 못할 고초가 있었다는 것이 해월정사 전융길(법명 해우, 천제스님 작명) 사무장의 설명이다.
일상에 있어서 성철스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하라는 천제스님의 엄명에 전융길 사무장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태어나서 살아온 지역이라 그 애정도 남달랐었고, 30여 년간의 공직생활과 절의 살림살이와 행정업무에 봉사해 온 그로서는 그 감회가 더욱 깊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해월정사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일면이다.
종교란 일반적으로 인간의 정신 자세와 인간으로서 삶의 가치를 추구하게 함에 그 근본이 된다. 또한 그 사회의 문화와 가치는 종교정신에 입각하여 영향을 받는다. 전근대적 교리로는 과학 정보 시대에 생존하기 어려우며, 종교 이념의 뿌리가 없으면 그것은 허세다고 천제스님은 말한다.
시대가 변하고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가치 영역 역시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종교 정신은 변하지 않는 성스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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